남성 호르몬 수치가 남성성을 나타내는 ‘성적표’?

김호경기자

입력 2017-03-13 03:00 수정 2017-03-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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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행 남성 호르몬 검사 체험해보니

6일 서울성모병원 비뇨기과 김세웅 교수(왼쪽)가 기자에게 1주일 전 측정한 남성 호르몬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호르몬 수치가 ‘남성성’을 모두 반영하는 건 아니지만 최근 남성 사이에서 이 검사가 유행하고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설마, 난 아직 젊잖아. 괜찮을 거야.’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비뇨기과에서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 초조함을 떨칠 수 없었다. 수능 성적표를 받기 직전 스트레스가 10이었다면 이날은 100쯤 되는 듯했다. 30대 초반인 기자가 비뇨기과를 찾은 건 1주일 전 측정한 남성 호르몬(테스토스테론) 검사 결과를 받아보기 위해서였다.


○ 신동엽 웃게 한 검사 결과는 7점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는 남성 호르몬 수치가 자신의 남성성을 나타내는 ‘성적표’처럼 여겨지고 있다. 얼마 전 남성 호르몬 검사를 받은 공중파,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이 잇달아 화제가 됐다. 남성 호르몬 수치 결과 ‘7점’대가 나온 개그맨 신동엽과 박수홍은 웃었고, 이들보다 젊은 방송인 허지웅과 오상진은 ‘3점’대가 나와 고개를 떨궜다.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으면 건강한 남성이고, 낮으면 고개를 숙여야 할까. 그 답을 찾고자 남성 갱년기 분야 권위자인 서울성모병원 비뇨기과 김세웅 교수(대한남성건강갱년기학회장)를 찾았다.

우선 남성 호르몬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채혈실에서 3mL의 혈액을 뽑는 게 전부였다. 고환에서 생성된 남성 호르몬은 혈액으로 분비되기 때문에 이 정도 양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아직 갱년기를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만 ‘수치가 낮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잦은 음주에 운동과 담쌓고 지낸 지난날이 후회스러웠다. 김 교수는 기자에게 “남성 호르몬 수치가 낮다고 갱년기로 진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남성 호르몬은 20대 초반에 정점을 찍은 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떨어진다. 정상 범위는 혈액 1mL당 3∼9ng(나노그램·1ng은 10억 분의 1g)이다. 하지만 남성 호르몬은 운동, 음주나 흡연, 식습관 등 생활습관과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때문에 나이가 들면 폐경하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70, 80대에도 20대의 호르몬 수치를 유지할 수도 있다. 반대로 젊어도 과로, 과음을 자주 하면 호르몬 수치가 떨어진다.


○ 호르몬 수치 낮으면 정력 감퇴 신호?

남성 호르몬이 낮으면 ‘정력’이 약할까. 남성 호르몬 감소는 정자 생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호르몬 수치가 낮으면 불임, 난임 등 생식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호르몬 수치 자체가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불임 검사를 받아야 한다. 발기 부전, 성욕 감퇴 등 성기능은 남성 호르몬보다는 심리적 원인이 더 크다고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남성 호르몬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낮고 남성 갱년기 증상이 있을 때에만 갱년기로 진단한다”고 답했다. 남성 갱년기 증상에는 성욕 및 성기능 감퇴, 발기 부전, 피로감, 우울감, 근육량 감소 및 체지방 증가, 수면장애 등이 있다.

증상 여부는 설문조사로 확인한다. 17개 문항을 증상에 따라 ‘없음’(1점)부터 ‘매우 심함’(5점)까지 답하면 된다. 나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총점이 26점 미만이면 정상, 27∼36점 경증, 37∼49점 중증, 50점 이상을 심한 단계로 구분한다.

김 교수는 “남성 갱년기는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어 무조건 약을 처방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음주, 흡연을 피하고 1주일에 3회 이상으로 30분 이상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달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콩 등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면 남성 호르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호르몬제 보충 치료를 한다. 전 수영 국가대표였던 박태환 선수가 맞았다가 도핑 논란에 휩싸인 ‘네비도’가 대표적인 호르몬제다. 호르몬제를 먹거나 맞으면 ‘골프 비거리가 20m는 늘었다’고 할 정도로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단, 전립샘암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있어 반드시 전문의 진단 후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주일 만에 다시 만난 김 교수로부터 기자의 호르몬 검사 결과지와 함께 “문제없네”라는 말을 듣고 나니 대학 합격 소식만큼 기뻤다. 기자의 남성 호르몬 수치는 6.9점이었다. 합격 이후 공부가 더 중요한 것처럼 취재수첩에 ‘월, 수, 금, 일 1시간 달리기’라는 문구를 크게 적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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