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봄나물은 햇볕이 아니라 바람이 키웁니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글·사진 울릉도=전승훈 기자
입력 2025-04-12 01:40 수정 2025-04-12 01:40

울릉도에서는 4∼5월 ‘봄걷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육지에서는 가을에 수확하는 가을걷이지만, 울릉도에서는 참고비 명이 부지깽이 전호 삼나물 섬엉겅퀴 미역취 등 지천에서 돋아나는 봄나물을 채취하느라 온 섬이 떠들썩해진다. 경남 통영에서는 도다리쑥국이 봄의 대표 음식이라면, 울릉도에서는 삼겹살 한 점 넣고 싸 먹는 갓 캔 전호나물이 향긋한 봄 내음을 전한다.
● 부지깽이와 명이가 돋아난 나리분지
지난달 마지막 주말. 울릉도 천북면 추산 부근에 있는 문자조각공원 예림원(藝林園)에는 붉은색 애기동백이 탐스럽게 피었고 홍매화와 수선화, 개나리와 벚꽃까지 만개했다. 해양성 기후인 울릉도 바닷가 주변엔 이렇게 일찍 봄이 온다.

동백 숲을 나오니 제주 산굼부리를 연상케 하는 황금빛 억새밭 너머로 죽도와 삼선암 절경이 펼쳐진다.

봄꽃 구경왔다가 눈바람에 차가워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나리촌 식당을 찾았다. 산채나물정식을 시키니 봄나물이 뷔페처럼 식탁을 가득 채운다. 우선 ‘산에서 나는 쇠고기’로 불리는 삼나물(눈개승마)을 입에 넣으니 쇠고기의 쫄깃한 식감과 두릅, 인삼 등 세 가지 맛이 느껴졌다. 명이와 전호, 부지깽이, 미역취, 참고비까지 넣은 비빔밥과 봄나물전까지 먹고 나니 비로소 울릉도 봄 향기가 내 몸을 감싼다.
30년째 나리촌 식당을 운영 중인 김두순 대표(60)는 울릉도가 고향인 친구와 여행왔다가 남편을 소개받아 울릉도로 시집왔다고 한다. 김 대표는 남편과 함께 나리분지에서 명이와 삼나물, 더덕 농사를 짓고 있다.
“울릉도에서는 햇볕이 아니라 바람에 눈이 녹아요. 나리분지에 눈이 엄청 많이 쌓여 있었는데, 어느덧 갈바람(남서풍)이 불면 누가 퍼간 것처럼 눈이 녹아요. 자고 일어나면 없고, 자고 일어나면 없어지죠. 나물도 그렇게 바람이 키웁니다. 따뜻한 바람이 2∼3일만 불면 나물이 팍팍 크는 게 눈에 보여요.”
봄나물을 채취하는 기간에는 밭둑에 대형 솥을 걸어 놓고 나물을 삶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4∼5월 울릉도 들판엔 육지에서 온 일꾼들로 가득 찬다. 울릉군 인력센터에서 사람들을 모아 일손이 부족한 농가로 보내 준다.
“봄나물 채취는 시간 다툼이예요. 나리분지에서는 4월 20일 쯤부터 보름 정도에 다 채취해야 합니다. 부드러운 새순을 먹어야 하는데, 조금만 지체하면 억세져서 못 먹어요. 특히 고비하고 삼나물은 금방 엄청나게 커 버리죠. 나물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도 한두달 사이에 나물 캐는 작업에 육지 사람 약 250명이 몰려들었다. 삼시세끼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일당은 11만 원 수준. 무척 고된 일이지만 육지에서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이른 봄에 할 수 있는 짭짤한 아르바이트다. 명이, 부지깽이 등은 장아찌와 김치로 만들어 비싼 가격에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봄날 울릉도는 고로쇠 물을 맛보고, 나물 채취 체험을 즐기려는 관광객까지 몰려들어 북적댄다.
“울릉도 이주 초기에 요즘 같은 봄날이면 먹을 게 뭐 있었겠어요?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물고기라도 잡아 먹겠지만, 나리분지 같은 산지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지요. 그럴 때 곳곳에 솟아나는 것이 명이였어요. 울릉도 사람들 ‘명(命·목숨)을 이어가게 한 나물’이란 뜻에서 명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절박하면 지혜가 나오는 법입니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100일간 먹고 사람이 됐다는 마늘도 바로 ‘산마늘(명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후 울릉도 명이는 전국적으로 성가를 높였다. 돈이 된다는 소문에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산속에서 명이를 뿌리채 캐 가면서 멸종 위기에 몰렸다. 1990년대부터 울릉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자연산 명이 씨를 받아 나리분지 밭에서도 명이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요즘엔 성인봉 주변에 헬기로 씨를 뿌려 재배하는 자연산 명이 복원 사업도 진행 중이다.
나리분지에 명이밭이 몰려 있다면 현포와 학포, 남양 같은 해안가 비탈밭은 부지깽이(섬쑥부쟁이)와 전호나물이 새파랗게 수놓고 있다. 울릉도 공항 건설 공사가 한창인 사동 비탈길 언덕에서 전호나물을 캐고 있는 이경주 씨(신비섬횟집 운영)를 만났다.

섬엉겅퀴는 육지 엉겅퀴와 달리 가시가 없다. 그래서 시래기처럼 넣어 끓인 엉겅퀴 쇠고기국은 별미다. 엉겅퀴는 고등어 지짐에 넣기도 하고, ‘오징어 누런창 찌개’에도 들어간다. 스물한 살에 울릉도로 시집와 이제 30년 가까이 됐다는 이 씨에게 울릉도 여자들이 젊어 보이는 비결을 물었다.
“울릉도에서는 하루 2만4000t씩 솟아나는 용출수를 수돗물로 써요. 용출수는 겨울에 엄청나게 내리는 눈이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31년간 자연 정화를 거쳐 다시 솟아나는 물입니다. 수질이 무척 좋아 피부가 매끈매끈해집니다. 밥상에 밑반찬으로 오르는 수많은 봄나물도 건강의 비결이죠.”
● 해안에 불끈 솟은 ‘기운생동’ 봉우리, 추산
울릉도 북면에 있는 추산은 독보적인 울릉도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바위다. 화산 폭발로 생겨난 바위들이 성인봉에서 시작해 나리분지를 거쳐 깃대봉까지 달려오다가 해안에서 불끈 솟아 오른 추산은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겨서 ‘송곳봉’이라고도 불린다. 추산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고릴라가 바나나를 먹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봉우리 사이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도 울릉도 여행사진을 찍는 재미다. 송곳봉 앞바다에는 코끼리 형상 바위섬이 고릴라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렇듯 추산리 일대는 울릉도에서도 웅장하고 수려한 대자연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경험할 수 있는 힐링 장소로 꼽힌다.

추산마을에 있는 울릉도 최초의 수제맥주 양조장 울릉브루어리(Ulleung Brewery)도 젊은이들 발길을 모은다.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나리 용출수를 이용한 4가지 맛 수제맥주를 시음할 수 있다. 송곳봉 뒤편 마을로 가면 1970년대 포크 가수 이장희 씨의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있다. 아트센터 실내에는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 윤형주 김민기 양희은 같은 대한민국 대표 포크 가수들과 함께 활동하던 이 씨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호젓한 연못이 있는 아트센터 마당에서 올려다보는 기운찬 추산 모습도 볼 만하다.
글·사진 울릉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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