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헌혈한다고요? 번호표 뽑고 기다리셔야해요"

노트펫

입력 2017-09-21 15:07 수정 2017-09-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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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은 대형견의 특권이다" 헌혈 나선 대형견들

[노트펫] 대형견주를 주축으로 한 반려견 보호자들 사이에서 헌혈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대 동물병원 관계자들은 지난 7월부터 갑자기 없던 일이 생겼다. 요새는 문의하는 이들에게 대기자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게 일상이 됐다.

바로 헌혈이다. 개와 고양이 역시 수혈을 필요로 한다. 개의 피를 구하는 현재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피를 사오거나 자체적으로 공혈견을 운용하는 것이다.

서울대 동물병원은 수혈 수요에 맞추기 위해 자체적으로 4, 5마리의 공혈견을 운용하고 있다. 지난 2015년 공혈견 문제가 이슈로 부상한 뒤 병원 수의진들은 고민 끝에 헌혈 프로그램을 도입키로 했다.

"우리만이라도 공혈견을 쓰지 말도록 해보자"는 취지 아래 개를 키우는 일반보호자들로부터 헌혈을 하게끔 해보자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은 2015년 말 만들어졌지만 올 여름까지는 가물에 콩나듯 했다. 건강검진과 함께 일부 용품도 제공키로 했지만 자신의 개에게 피를 뽑도록 하는 것이 꺼려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헌혈을 위해 동물병원에 직접 오가는 수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 7월말부터 헌혈 문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황철용 서울대 동물병원 부원장은 "특이하게도 헌혈 프로그램에 지원한 개들의 건강검진비 감면 서류 결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알아봤더니 어떤 반려견 팟캐스트 방송에서 헌혈 프로그램에 동참하기로 하고, 헌혈 릴레이 운동을 하고 있더군요."라고 말했다.

"헌혈은 대형견의 자격이자 자부심이고 또 건강함의 상징이자 특권입니다."

실제로 그랬다. 반려견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부 견주들이 공혈견 문제를 안타깝게 여기고 자발적으로 헌혈 참여를 독려하고 있었다.

사실상 국내 유일의 반려동물 팟캐스트

'개소리'

운영자 로빈맘도 헌혈 운동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로빈이를 키우는 로빈맘. 로빈맘은 "저희 방송에서 게스트로 나온 래브라도 리트리버 남매 심이와 쿵이를 키우시는 심쿵아빠가 공혈견과 헌혈견을 여러 회차에 걸쳐서 방송에서 다뤘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헌혈견 모집을 한번 해보자 제안을 했구요. 이에 공감하는 반려견 보호자들이 우리 아이들부터 헌혈에 참여하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들이 나왔죠."라고 말했다.

지난 7월24일 첫번째로 경기도 양주에 사는 라떼가 헌혈에 나섰다. 라떼는 2011년 9월7일생 래브라도 리트리버 여아로 올해 초까지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다가 완치됐고, 당당히 헌혈까지 하게 됐다.

8월2일엔 서울 서초구에 사는 2012년 3월3일생 래브라도 리트리버 하이가 나섰다. 하이는 그동안 요양병원, 자선행사장 등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아이다.

하이의 견주는 "좋은 일 하겠다고 예약 다 잡았지만 전날밤에는 괜히 고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잠도 못잤다"며 하지만 "결론은 하길 잘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에는 2015년 3월생 말라뮤트 남아 꼼데가 서울대 동물병원을 찾았다. 견주는 반려견놀이터에 갔다가 심쿵아빠로부터 헌혈견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헌혈에 동참키로 했다.

이렇게 헌혈 릴레이가 일어나면서 래브라도 리트리버 봄(2015년 5월1일생 여아), 골든 리트리버 두부(2015년 3월18일생 여아), 래브라도 리트리버 코코(2011년 9월7일생 남아), 골든 리트리버 리베(2014년 12월14일생 여아), 골든 리트리버 두부(2015년 7월14일생 여아), 래브라도 리트리버 레오(2015년 3월28일생 여아)까지 총 9마리의 대형견들이 서울대 동물병원이 헌혈견에게 수여하는 빨간스카프를 매게 됐다.

서울대 동문이 된 셈이다.

특히 이중에서는 한 번의 실패 끝에 헌혈에 참여한 개도 있다. 골든 리트리버 리베는 첫번째 방문 때 검사에서 빈혈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와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두번째 찾아갔을때 정상수치였고 헌혈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날 동물병원에는 혈소판이 필요한 응급환견이 들어왔고, 리베의 피가 환견에게 긴급 수혈됐다.

로빈맘 역시 조만간 서울대 동물병원에 들러 로빈이를 헌혈 운동에 동참케 할 예정이다.

로빈맘은 "공혈견하면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만 들잖아요. 저희는 그것보다는 즐겁게 피가 필요한 개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예요"라며 "대형견 만이 누릴 수 있는 이 특권을 더 많은 대형견들이 누렸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서울대 동물병원의 헌혈프로그램은 몸무게 25킬로그램이 넘는 두살이상인 대형견들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실제로는 30킬로그램 이상이면 최적이다. 그러니 헌혈은 대형견의 특권이자 자부심이라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로빈만은 "헌혈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서울대 동물병원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나머지 전국의 9개 수의대 부속 동물병원들도 동참, 가까운 곳에서 헌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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