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아파 휴직계 냈더니… “돌아올 자리는 보장 못하네”
동아일보
입력 2014-03-11 03:00 수정 2014-03-11 09:05
[육아고민 없는 사회로]<上>육아휴직 왜 못쓰나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육아휴직을 택했습니다.”(대기업 직원 지모 씨)
가족이 아빠를 필요로 하는 순간, 잠시 회사를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체 육아휴직의 3%에도 못 미치는 남성 육아휴직은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장벽이다. 취재진은 남성 육아휴직의 실태와 대안을 찾기 위해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성 직장인 18명을 만났다.
○ 사표 쓰는 심정으로 휴직계 내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 씨(40)는 지난해 7월부터 연말까지 6개월간 육아휴직을 냈다. 작년 4월, 둘째 아들을 낳고 난 뒤 아내의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다. 갑상샘 질환을 앓고 있던 아내는 쉽게 피곤해했고 출산 후 우울증까지 생기는 듯했다. 양가 부모님도 양육을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
고민 끝에 박 씨는 휴직계를 냈다. 평소 고민을 알던 팀장은 승낙했지만 돌아왔을 때 자리에 대한 보장은 해 주지 못했다. 박 씨는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뒤 별다른 보직 없이 두세 달 있다 자연스럽게 퇴사하는 경우도 있다”며 “휴직계가 사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김모 씨(38)는 휴직을 신청한 지 한 달이 지난 뒤까지도 회사로부터 확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서로 얼굴을 붉힌 채 휴직에 들어갔다. 김 씨는 “10년 동안 잘 지냈던 지점장님에게 휴직 얘기를 꺼내는 순간 사람이 달라지더라”며 “그런 게 너무 보기 싫어서 복직할 땐 저 사람 밑으론 다시 안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토로했다. 회사는 복직하려는 김 씨에게 집에서 먼 영업소 근무를 권했다. 김 씨는 아직도 복직을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18명 가운데 11명은 아내나 아이가 많이 아프거나 아내 혼자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한계 상황이 돼서야 육아휴직을 선택했다. 육아휴직계가 자칫하면 사표가 되는 환경 때문이다.
○ 중소기업에선 생존의 문제
최근 사회의 인식이 바뀌며 그나마 인력 운영에 여유가 있는 일부 대기업에선 남성 육아휴직이 과거보다 쉬워지기도 했다. 여성 간부나 동료가 늘어나 이해의 폭이 넓어진 영향도 크다.
하지만 인력 운영이 빠듯한 중소기업에서 남성 육아휴직은 ‘조직의 해악’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0월까지 6개월간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회사로 복귀한 중소기업 직원 송모 씨(38)는 매일매일이 가시방석이다. 아내의 우울증 때문에 어렵게 휴직을 냈다가 복귀한 송 씨의 자리는 생산직에서 영업직으로 바뀌어 있었다. 송 씨는 “보복 인사인 것 같다”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 곳으로 보냈으니 알아서 회사를 나가라는 메시지로 보인다”며 괴로워했다.
회사 측의 생각은 달랐다. 송 씨가 회사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휴직을 선택한 데 대해 ‘동료와 회사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회사의 사장 김모 씨(59)는 “직원 30명의 작은 회사에서 사람이 빠지면 대체인력을 채용하기도, 다른 사람이 일을 분담하기도 어렵다”며 “그런 이유로 (출산·육아 휴가가 잦은) 여직원을 정직원으로 뽑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몇 달 임금을 보전해준다고 해도 결국 사람 한 명 더 뽑는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며 “(송 씨의) 사정이 딱한 줄은 알지만 인력난과 그로 인해 험악해진 회사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 사람만 배려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휴직을 가로막은 벽, 극복하려면
육아휴직 경험자 18명 중 11명은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과 곱지 않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괴로웠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걱정은 예상보다 적은 4명뿐이었다.
대기업 직원인 김모 씨(37)는 “이제 여성 육아휴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남자가 쓴다고 하면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없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식의 태도 문제로 바라본다”고 전했다. 육아휴직에 대한 이해도에 개인차가 큰 것도 문제다. 남성도 여성과 동일한 육아휴직이 보장되지만 기업 내엔 의외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한 기업은 인사팀에서도 어떤 서류를 써야 하는지 헷갈려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취재진이 만난 육아휴직 경험자들은 정부가 최근 내놓은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방안(부모 중 두 번째 육아휴직자에게 첫달 통상임금 100% 지급)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분위기를 바꾸기엔 부족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휴직 경험자들은 “금전적 지원보다는 회사의 인식을 바꿀 제도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휴직 기간에 업무평가는 무조건 중간 점수를 보장하거나 인사상의 페널티 금지를 제도화하고 육아휴직에 대한 사내 교육을 늘려 ‘회사가 육아휴직을 꺼리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보다는 필요할 때 일주일씩 쉴 수 있는 ‘예고 휴가제’ 등을 도입하고 그 실적에 대해 정부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웨덴은 최대 8회로 나눠 480일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며 “무조건 의무화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시점에 맞춰서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은지 kej09@donga.com·김용석 기자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육아휴직을 택했습니다.”(대기업 직원 지모 씨)
가족이 아빠를 필요로 하는 순간, 잠시 회사를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체 육아휴직의 3%에도 못 미치는 남성 육아휴직은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장벽이다. 취재진은 남성 육아휴직의 실태와 대안을 찾기 위해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성 직장인 18명을 만났다.
○ 사표 쓰는 심정으로 휴직계 내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 씨(40)는 지난해 7월부터 연말까지 6개월간 육아휴직을 냈다. 작년 4월, 둘째 아들을 낳고 난 뒤 아내의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다. 갑상샘 질환을 앓고 있던 아내는 쉽게 피곤해했고 출산 후 우울증까지 생기는 듯했다. 양가 부모님도 양육을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
고민 끝에 박 씨는 휴직계를 냈다. 평소 고민을 알던 팀장은 승낙했지만 돌아왔을 때 자리에 대한 보장은 해 주지 못했다. 박 씨는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뒤 별다른 보직 없이 두세 달 있다 자연스럽게 퇴사하는 경우도 있다”며 “휴직계가 사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김모 씨(38)는 휴직을 신청한 지 한 달이 지난 뒤까지도 회사로부터 확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서로 얼굴을 붉힌 채 휴직에 들어갔다. 김 씨는 “10년 동안 잘 지냈던 지점장님에게 휴직 얘기를 꺼내는 순간 사람이 달라지더라”며 “그런 게 너무 보기 싫어서 복직할 땐 저 사람 밑으론 다시 안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토로했다. 회사는 복직하려는 김 씨에게 집에서 먼 영업소 근무를 권했다. 김 씨는 아직도 복직을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18명 가운데 11명은 아내나 아이가 많이 아프거나 아내 혼자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한계 상황이 돼서야 육아휴직을 선택했다. 육아휴직계가 자칫하면 사표가 되는 환경 때문이다.
○ 중소기업에선 생존의 문제
최근 사회의 인식이 바뀌며 그나마 인력 운영에 여유가 있는 일부 대기업에선 남성 육아휴직이 과거보다 쉬워지기도 했다. 여성 간부나 동료가 늘어나 이해의 폭이 넓어진 영향도 크다.
하지만 인력 운영이 빠듯한 중소기업에서 남성 육아휴직은 ‘조직의 해악’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0월까지 6개월간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회사로 복귀한 중소기업 직원 송모 씨(38)는 매일매일이 가시방석이다. 아내의 우울증 때문에 어렵게 휴직을 냈다가 복귀한 송 씨의 자리는 생산직에서 영업직으로 바뀌어 있었다. 송 씨는 “보복 인사인 것 같다”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 곳으로 보냈으니 알아서 회사를 나가라는 메시지로 보인다”며 괴로워했다.
회사 측의 생각은 달랐다. 송 씨가 회사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휴직을 선택한 데 대해 ‘동료와 회사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회사의 사장 김모 씨(59)는 “직원 30명의 작은 회사에서 사람이 빠지면 대체인력을 채용하기도, 다른 사람이 일을 분담하기도 어렵다”며 “그런 이유로 (출산·육아 휴가가 잦은) 여직원을 정직원으로 뽑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몇 달 임금을 보전해준다고 해도 결국 사람 한 명 더 뽑는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며 “(송 씨의) 사정이 딱한 줄은 알지만 인력난과 그로 인해 험악해진 회사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 사람만 배려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휴직을 가로막은 벽, 극복하려면
육아휴직 경험자 18명 중 11명은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과 곱지 않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괴로웠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걱정은 예상보다 적은 4명뿐이었다.
대기업 직원인 김모 씨(37)는 “이제 여성 육아휴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남자가 쓴다고 하면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없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식의 태도 문제로 바라본다”고 전했다. 육아휴직에 대한 이해도에 개인차가 큰 것도 문제다. 남성도 여성과 동일한 육아휴직이 보장되지만 기업 내엔 의외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한 기업은 인사팀에서도 어떤 서류를 써야 하는지 헷갈려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취재진이 만난 육아휴직 경험자들은 정부가 최근 내놓은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방안(부모 중 두 번째 육아휴직자에게 첫달 통상임금 100% 지급)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분위기를 바꾸기엔 부족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휴직 경험자들은 “금전적 지원보다는 회사의 인식을 바꿀 제도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휴직 기간에 업무평가는 무조건 중간 점수를 보장하거나 인사상의 페널티 금지를 제도화하고 육아휴직에 대한 사내 교육을 늘려 ‘회사가 육아휴직을 꺼리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보다는 필요할 때 일주일씩 쉴 수 있는 ‘예고 휴가제’ 등을 도입하고 그 실적에 대해 정부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웨덴은 최대 8회로 나눠 480일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며 “무조건 의무화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시점에 맞춰서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은지 kej09@donga.com·김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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