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랜드마크‘ 타령에 해안가는 골병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입력 2016-07-12 08:00 수정 2016-07-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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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해운대 해수욕장 중심으로 양옆에 바다 조망을 확보한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주변 자연경관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제 해운대는 부산 아닙니다.”

부산에서 24년째 택시를 운행 중인 박정원 씨(59·가명)는 해운대 너머로 보이는 ‘아이파크’를 힐끔 쳐다보곤 혀를 내둘렀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09년 청약 당시 3.3㎡당 최고 4500만 원에 달했을 정도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분양가를 자랑했던 곳. 박 씨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해운대를 끼고 신축 건물과 함께 아파트가 상당히 많아졌다”며 “이전에 알던 해운대와는 완전히 달라 타지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기준 부산 해운대구 개별공시지가는 지난해보다 17.75% 올랐다. 제주시(28.79%)와 서귀포시(26.19%)에 이어 전국 252개 기초자치단체 중 상승률 3위다. 해운대 한 공인중개사는 “2011년 아이파크 흥행과 함께 해운대 엘시티 더샵 분양 호조, 동부산관광단지 개발 효과를 누리고 있다”며 “해운대구 센텀시티 상권 활성화와 수영구 신규 아파트 분양 활황, 중구 광복로 재단장 사업 등도 땅값 상승폭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호재에 힘입어 사업자들은 해운대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해운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신축공사 현장은 포스코건설의 해운대 관광리조트. 이곳은 민영주택 ‘엘시티 더 샵’과 ‘랜드마크타워’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엘시티는 편리한 도심 인프라와 바다조망으로 고급아파트가 들어설 최적지로 꼽히면서 3.3㎡당 최고 7008만3000원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11일 부산시 해운대구 바닷가 바로 옆에서 해운대관광리조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자리에는 ‘엘시티 더 샵(85층)’ 고급아파트와 101층짜리 ‘엘시티 더 레지던스’와 ‘롯데호텔(3~19층)’로 구성된다.
바로 옆 101층짜리 랜드마크타워는 ‘엘시티 더 레지던스(22~94층)’와 ‘롯데호텔(3~19층)’로 구성된다. 이달 분양을 앞둔 레지던스의 경우 분양가는 엘시티 아파트 평균분양가인 2750만 원보다 조금 더 높은 3000만 원 초반 대에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엘시티 더 레지던스의 경우 외국인부동산투자이민제까지 적용하면서 노골적으로 목적을 드러냈다. 외국인이 7억원 이상 계약금과 중도금을 납부하면 거주자격(F-2)을 받고, 5년이 지나면 영주권(F-5)까지 취득할 수 있게 한 것.

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엘시티 외에도 7월 현재까지 해운대 일대에서 분양을 마치고 공사가 진행 중인 45층 이상 아파트는 동백 두산 위브더제니스(우동, 48층)·동원아파트(우동, 45층)·마린시티자이(우동, 49층) 등 2014년 이후 급증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초고층건물이 해운대 해안경관을 해치고,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부산 해안가 개발 초기 시점인 지난 2005년부터 줄 곧 해안경관보전 대책 수립을 촉구해 왔지만 번번이 지자체에 가로 막히기 일쑤였다. 이와 관련해 2011년 부산지법에 낸 행정소송도 기각됐다.

최수영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부산시와 해운대구의 무분별한 건축허가가 해운대 바다의 본래 특수성을 해치고 있다”며 “새로운 초고층 건물만이 해운대를 빛낼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시의 입장은 다르다. 해운대를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는 큰 그림을 밑바탕에 두고 있는 것.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 관계자는 “해운대는 랜드마크 조성이라는 목표로 특별계획구역에 포함됐다”며 “초고층 건물로 인해 일부 조망권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애초에 해운대해수욕장 일대 약 46%는 공동주택을 지을 수 없는 중심지미관지구였다. 또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건물 높이도 60m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부산시는 지난 2009년 12월 해운대관광리조트 전체 터(엘시티 자리)를 일반미관지구로 변경했다. 또 해안경관 개선 지침은 해안과 접한 남쪽 60m, 북쪽 21m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아 백사장 바로 앞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된 것.

최 사무처장은 “부산의 자랑인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 바로 옆에 108층 초고층건물이 지어지면 천혜의 자연경관이 일거에 무너진다”며 “주변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물은 오히려 해운대를 망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아파트와 상업시설에 몰릴 차량들로 교통난이 심해지고, 초고층 건물이 풍향을 바꿔 조류 방향에 영향을 주면 백사장 모래 유실 등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특히 바닷가라 태풍 등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할 수 있고, 화재사고에도 불리한 구조”라고 덧붙였다.
해운대 바닷가 앞에는 현재 대규모 주거단지 마린시티가 조성돼 있다.

실제로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는 그동안 2003년 매미, 2010년 뎬무, 2012년 볼라벤·산바 등 태풍 내습 때마다 해안도로가 부서지고 인근 주거·상업시설 지하가 침수되는 등 큰 피해를 봤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지난해 마린시티 방파제와 해안 사이 일부 바다를 매립해 친수호안을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키로 하면서 예산 655억 원을 쏟아 부어야할 처지에 놓였다.

또한 엄청난 양의 모래가 유실되는 상황도 벌어지면서 해운대구는 매년 모래를 사다가 투입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16년말까지 계획된 이 해운대복원 사업에는 국비 484억 원과 시비 8억 원을 들여 15톤 트럭 2만대 분량의 모래를 쏟아 붇는 실정이다. 해운대 백사장 모래유실은 인근 마린시티 매립과 지나친 개발에 따른 후유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지자체가 막대한 이익 보다는 현재 해운대가 지닌 문화적·관광적 자원 가치에 중심에 두고 개발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짜야한다”며 “두바이·상해·홍콩 등을 롤모델로 삼지말고 시드니처럼 자연을 지키면서 특화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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