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추진 단지들 “재건축 더 쉬워진다는데…” 갈팡질팡[인사이드&인사이트]

이축복 산업2부 기자

입력 2023-04-11 03:00 수정 2023-04-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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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갈등에 표류하는 리모델링
공사비 상승-재건축 규제 완화로 ‘재건축 대체재’로서 매력 떨어져
시공사 수주 포기-조합 해산까지… 사업 여건 따라 재건축 여부 불투명
리모델링 단지 “희망고문” 반발… 정부 “리모델링도 인센티브 검토”


이축복 산업2부 기자

인천에서 리모델링 추진 1호 단지로 꼽히는 부평구 부개주공3단지는 현재 리모델링 반대 주민 비율이 18%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 1724채 규모로 300채 안팎의 집주인이 반대로 돌아선 것. 리모델링 조합 설립까지 마치고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할 건설사까지 선정했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원자재 등 각종 비용이 치솟으며 공사비가 높아지고 재건축 규제도 완화되며 리모델링 신중론자들이 늘었다. 반대 비율이 25%가 되면 리모델링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리모델링에 반대하는 한 부개주공3단지 소유주는 “원자재 등 비용 상승으로 추가 분담금이 예상되는데 굳이 리스크를 감당하며 사업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주택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던 아파트 단지에서 이를 철회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주택 시장 침체와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으로 사업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건축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재건축 대체재’로서의 매력도 떨어지면서 인기가 시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모델링 사업이 진척된 단지나 재건축이 어려운 단지가 있는 만큼, 리모델링에도 재건축 규제 완화에 준하는 혜택(인센티브)이 주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리모델링 사업 추진 여부를 놓고 갈등이 크게 나타나는 단지는 아직 리모델링 초기 단계인 단지가 많다. 올해 3월 서울 강서구 염창동 무학아파트에서는 리모델링 사업 찬반으로 갈등이 커지면서 아파트로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리모델링 조합이 조합 설립 다음 단계인 안전진단을 진행하기 위해 점검 차량을 호출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단지 내로 차가 진입하는 것을 막아섰다.


● 건설사·조합 모두 손떼기 시작해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의 구조를 유지한 채 수평·수직으로 증축해 주택을 다시 짓는 사업이다. 준공 후 15년이면 추진할 수 있어 30년을 넘어야 하는 재건축보다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 또 정밀안전진단 결과가 B등급이기만 해도 돼 D등급 이하를 받아야 하는 재건축보다 문턱이 낮다. 초과이익환수제와 전매제한을 적용받지 않아 그동안은 재건축의 대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집값 하락과 고금리,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사업성이 낮아진 데다 미분양 물량까지 늘어나면서 리모델링의 인기는 크게 꺾인 상태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전국 리모델링 사업 추진 단지는 140곳, 11만2417채다. 2021년 12월 94곳에서 6개월 만인 지난해 6월 131곳까지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주춤한 것이다.

공사비 인상 등으로 수익이 불투명해지자 건설사부터 손을 떼기 시작했다. 올해 2월 말 쌍용건설은 경기 군포시 산본동 설악주공8단지 리모델링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포기했다. 삼성물산은 서울 송파구 오금동 가락상아2차 리모델링 사업을 경쟁 없이 따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커져 리모델링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업장 여건에 따라 시행 여부를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업을 아예 철회하고 조합을 해산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여1단지는 조합 설립 3개월 만에 사업성·조합 운영비 등을 이유로 조합을 해산했다.


● ‘재건축 쉬워진다는데’…주민 갈등 증폭

리모델링에 쏠렸던 관심은 재건축으로 옮겨가고 있다. 재건축 규제가 완화되면서 서울에서는 올해 들어 약 6만 채 규모의 아파트가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한 상태다.

그동안 안전진단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규제가 덜한 리모델링을 추진했던 단지들은 재건축 전환 여부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강선마을 14단지는 1월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지만 일부 주민이 리모델링 반대동의서를 걷기 시작했다.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특별법(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발표에 따른 기대감도 높아지며 기존 리모델링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있다. 특별법을 적용받으면 재건축 시 단지 용적률이 기존 250∼300%에서 최대 500%까지 높아져 수익성이 높아진다. 현행 리모델링은 기존 채수에서 15% 이내 증가, 3개 층만 더 지을 수 있어 재건축에 비해 사업성이 낮다.

다만 용적률 상향에 따른 기부채납 등 특별법 주요 세부 사항이 결정되려면 아직 2년가량이 남았다는 점이다. 경기 안양·고양시는 노후 주거지역의 개발 방향을 결정하는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했는데 용역 결과는 21개월 뒤에 나올 예정이다. 리모델링과 재건축의 사업성을 따져 더 나은 쪽으로 결정하려는 단지는 그동안 주민 갈등을 감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형욱 평촌리모델링연합회장은 “논의만 무성한 특별법으로 오히려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은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 “리모델링 인센티브도 필요”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하고 최근 리모델링 단지에 대한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주민을 만난 자리에서 “리모델링도 기여할 부분은 기여하고 일산 전체의 그림에 맞게 요청하면 재건축 못지않은 혜택을 열어주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리모델링과 재건축이 함께 활성화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준공 연한 등 여건에 따라 재건축으로 전환하기 힘든 리모델링 단지도 있는 만큼 수직증축, 내력벽 철거 등 리모델링 매력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현행 리모델링은 안전 문제상 아파트 하중을 지탱하는 ‘내력벽’ 철거를 제한해 평형 다양화가 어렵다. 하중 문제로 가구 수 증가를 위한 수직증축도 엄격하게 규제한다. 박용석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직증축을 허용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높인다면 주민들의 분담금이 줄어든다”며 “다양한 공간 구조를 제시하는 것 역시 아파트 리모델링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안전진단·건축심의 등 행정 문턱을 넘긴 리모델링 단지는 현재까지 들인 시간과 비용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결정을 번복하기 어렵다”며 “안전을 지키는 한도에서 주민들이 불필요한 갈등을 겪지 않도록 재건축과의 형평성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축복 산업2부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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