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빚 권하는 세상, 서민만 아프다
박용 경제부장
입력 2021-10-20 03:00 수정 2021-10-20 16:22
뛰는 집값에 가을마다 ‘대출 보릿고개’
대통령 ‘대출 진통제’, 근본 처방 아냐
금융당국이 대출을 갑자기 조인다고 난리인데, 올해만 그런 건 아니다. 가을마다 연례행사처럼 관제 ‘대출 보릿고개’가 닥친다. 연말 관리목표에 쫓긴 금융당국이 밀린 숙제하듯 대출 수도꼭지를 잠그기 때문이다. 은행을 찾은 서민들은 막막해지고, 단수 전 욕조에 물을 받아두듯 ‘막차 대출 수요’도 한꺼번에 몰린다. 대출은 다시 급증한다. 관리목표도 물 건너간다. 1800조 원 넘는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 금융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대출 규제로 촉발된 지난해 11월 가계대출 증가세는 최악이었다. 전년 11월의 갑절에 가까운 13조6000억 원이 한 달 만에 불어났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였다. 빚을 내 집을 사거나 주식 투자를 하려는 수요가 몰린 상황에서 당국이 대출 규제를 예고하자 ‘막차 수요’가 분출한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결국 한국 민간부채 위험 수준을 10년여 만에 가장 높은 ‘경보’ 단계로 올렸다.
올해도 ‘집값 급등-대출 증가-대출 규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달라진 건 사나워진 민심에 대통령이 나섰다는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가계부채 관리는 불가피하지만 실수요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고, 금융당국은 14일 전세대출은 대출 총량 관리에서 제외하겠다며 물러섰다. 이를 두고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민주연구원에서 여론조사도 하고 긴급 토론회도 하면서 강하게 서민들 목소리를 전달한 결과이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고 공치사했다. 그러더니 “집 없는 설움도 모르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모피아들의 탁상행정”이라며 관료 탓도 했다. 부동산 실정부터 반성할 일을 공치사로 돌리고, 책임질 일을 전가하는 게 올바른 정치는 아니다.
관제 ‘대출 보릿고개’는 한국 금융이 후진적이라는 증거지만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제도나 시장에 ‘기저질환’이 없는지 따져보는 게 정석이다. 한국경제학회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8일까지 소속 경제학자 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9%는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에 대해 ‘주택담보대출 등 주거비 자금 수요에서 비롯했다’고 답했다. 가계부채의 기저질환이 집값 급등이라는 건데, 대출만 조이면 대통령이 언급한 실수요자의 고통으로 전가된다.
문제는 집값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의 9억 원 초과 아파트 비중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월 15.7%에서 올해 6월 56.8%로 늘었다. 소득은 그만큼 늘지 않았으니 집값의 상당 부분은 누군가가 이자를 물고 마련한 빚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집값이 급등하면 전세금도 따라 오른다. 전세대출 수요도 는다. 전세금과 집값 격차가 줄면 전세 안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고개를 든다. 집값은 다시 오르고 가계대출은 또 불어난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춤을 춰야 하는 ‘빚 권하는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빚은 언젠가 갚아야 한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 이자 부담은 12조5000억 원 증가한다.
대출을 잠시 풀어주는 건 진통제를 놔주고 골치 아픈 문제를 카펫 밑으로 밀어 넣어 감추는 것이다. 집값이 뛰면 내년에도 ‘대출 보릿고개’는 되풀이될 것이다. 서민에게 절실한 건 기존 주택이든 신규 주택이든 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을 안정시키는 일이다. 무주택 서민들에게 큰 빚을 내지 않고 열심히 일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돌려줄 때 ‘대출 난민’도, 대출 보릿고개도 사라질 것이다. 빚 권하고 공치사할 때가 아니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대통령 ‘대출 진통제’, 근본 처방 아냐
박용 경제부장
금융당국이 대출을 갑자기 조인다고 난리인데, 올해만 그런 건 아니다. 가을마다 연례행사처럼 관제 ‘대출 보릿고개’가 닥친다. 연말 관리목표에 쫓긴 금융당국이 밀린 숙제하듯 대출 수도꼭지를 잠그기 때문이다. 은행을 찾은 서민들은 막막해지고, 단수 전 욕조에 물을 받아두듯 ‘막차 대출 수요’도 한꺼번에 몰린다. 대출은 다시 급증한다. 관리목표도 물 건너간다. 1800조 원 넘는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 금융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대출 규제로 촉발된 지난해 11월 가계대출 증가세는 최악이었다. 전년 11월의 갑절에 가까운 13조6000억 원이 한 달 만에 불어났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였다. 빚을 내 집을 사거나 주식 투자를 하려는 수요가 몰린 상황에서 당국이 대출 규제를 예고하자 ‘막차 수요’가 분출한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결국 한국 민간부채 위험 수준을 10년여 만에 가장 높은 ‘경보’ 단계로 올렸다.
올해도 ‘집값 급등-대출 증가-대출 규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달라진 건 사나워진 민심에 대통령이 나섰다는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가계부채 관리는 불가피하지만 실수요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고, 금융당국은 14일 전세대출은 대출 총량 관리에서 제외하겠다며 물러섰다. 이를 두고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민주연구원에서 여론조사도 하고 긴급 토론회도 하면서 강하게 서민들 목소리를 전달한 결과이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고 공치사했다. 그러더니 “집 없는 설움도 모르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모피아들의 탁상행정”이라며 관료 탓도 했다. 부동산 실정부터 반성할 일을 공치사로 돌리고, 책임질 일을 전가하는 게 올바른 정치는 아니다.
관제 ‘대출 보릿고개’는 한국 금융이 후진적이라는 증거지만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제도나 시장에 ‘기저질환’이 없는지 따져보는 게 정석이다. 한국경제학회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8일까지 소속 경제학자 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9%는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에 대해 ‘주택담보대출 등 주거비 자금 수요에서 비롯했다’고 답했다. 가계부채의 기저질환이 집값 급등이라는 건데, 대출만 조이면 대통령이 언급한 실수요자의 고통으로 전가된다.
문제는 집값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의 9억 원 초과 아파트 비중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월 15.7%에서 올해 6월 56.8%로 늘었다. 소득은 그만큼 늘지 않았으니 집값의 상당 부분은 누군가가 이자를 물고 마련한 빚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집값이 급등하면 전세금도 따라 오른다. 전세대출 수요도 는다. 전세금과 집값 격차가 줄면 전세 안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고개를 든다. 집값은 다시 오르고 가계대출은 또 불어난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춤을 춰야 하는 ‘빚 권하는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빚은 언젠가 갚아야 한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 이자 부담은 12조5000억 원 증가한다.
대출을 잠시 풀어주는 건 진통제를 놔주고 골치 아픈 문제를 카펫 밑으로 밀어 넣어 감추는 것이다. 집값이 뛰면 내년에도 ‘대출 보릿고개’는 되풀이될 것이다. 서민에게 절실한 건 기존 주택이든 신규 주택이든 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을 안정시키는 일이다. 무주택 서민들에게 큰 빚을 내지 않고 열심히 일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돌려줄 때 ‘대출 난민’도, 대출 보릿고개도 사라질 것이다. 빚 권하고 공치사할 때가 아니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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