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유영] ‘영끌’한 집값이 올라도 마냥 좋지 않은 사람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21-08-12 03:00 수정 2021-08-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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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회사원 서모 씨(34)는 지난해 서울 외곽에 아파트를 마련했다. 회사 동기들이 잇달아 집 사는 걸 보고 ‘더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절박감에 서둘렀다. 은행 대출은 물론 회사 대출까지 끌어다 산 아파트는 1년 사이 1억 원 넘게 올랐다. 아직도 오르는 집값을 보며 안도는 하지만 마냥 좋지만도 않다.

그의 집은 방 2개짜리 복도식 낡은 아파트. 회사까지 1시간 넘게 걸린다.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가 크면 학군 좋고 회사에서 가까운 동네의 30평대 대단지 신축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그런 아파트들은 이제 로또에 당첨되어도 못 살 만큼 아득하게 올라버렸다. 그는 “지금 집에 평생 눌러앉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젊은층의 패닉바잉 행렬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영끌’해서 집을 사도 웃을 수만은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종국에 살고 싶고 사고 싶은 아파트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요새 중개업소에 나와 있는 매물들은 대체로 직전 실거래가보다 1억∼2억 원 높고 이런 매물조차 사겠다고 하면 집주인이 더 비싸게 팔려고 거둬들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죽하면 집 보러 다닐 때 일회용 비밀번호(OTP) 생성기를 휴대하라는 말까지 나온다. 집주인 마음이 바뀌기 전에 바로 계약금을 쏘라는 것이다. 이렇게 무리해서라도 집 사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에 ‘배짱 호가’로 나온 매물이 실제 계약되며 신고가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집값이 크게 올라 전체 수요가 줄기는 했지만 공급이 더 부족해지면서 시장이 철저하게 집주인 우위로 바뀐 영향이 크다. 실제 8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한국부동산원)는 올해 3월 첫째 주 이후 최고치를 달리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민간 재건축 재개발이 막혔고 공공 개발을 통한 공급도 더딘 상황에서 양도세제가 강화되면서 매물이 거의 실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다주택자가 매물을 토해 내게 하려고 양도세를 중과해 ‘징벌적 양도세’ 체계로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2023년부터는 다주택자가 1주택자가 되는 시점부터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해주기로 했다. 장기 보유에 따른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빨리 집을 팔고 ‘1가구 1주택자’가 되라는 압박이다. 하지만 이들은 매매보다 증여를 택하며 매물은 시장에 나오지 않고 ‘똘똘한 한 채’로 정리하는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결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 집값은 더 많이 오르게 됐다.

더 나은 동네, 더 좋은 집에서 더 잘살고 싶은 욕구는 시장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다. 다주택자를 죄악시하고 ‘1가구 1주택’을 강요하는 지금의 부동산정책은 ‘땡 없는’ 얼음 땡 놀이를 하라는 것과 같다.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말고 현 자리에 눌러앉아 살라는 것이다. 살아보고 싶은 주택의 대출 길은 막혔고 이런 집을 전세 끼고 미리 사두는 일도 사실상 힘들어졌다. 주거 상향 이동 욕구(upward mobility)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성실한 시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 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책의 실패가 그래서 더 무섭다. 망가진 시장에서 누가 땡을 외쳐 줄 수 있을까.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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