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부동산정책은 어떻게 離婚을 줄였을까[오늘과 내일/박중현]

박중현 논설위원

입력 2020-12-31 03:00 수정 2020-12-3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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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생애 전반 영향 미치는 집값
수요자 속마음 읽는 정책 필요하다


박중현 논설위원
서구 여러 나라에서 이혼이 급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삶을 헤집어놓은 코로나19 탓이다.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외출까지 줄어 가족 간 대면접촉 시간이 길어졌다. 부부가 오래 집에 함께 있다 보면 ‘음식물 쓰레기를 누가 버릴 건가’ 같은 작은 문제도 큰 충돌로 번지기 쉽다.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 ‘코로나 블루’가 분노조절이 안 되는 ‘코로나 레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면 “그럼 이혼해”란 말이 튀어나올 수 있다. 그래서 ‘코비디보스(Covid+divorce)’란 말까지 생겼다.

좁은 공간에 갇힌 동물들이 스트레스가 높아져 서로 공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인의 1인당 주거면적은 서구 선진국은 물론이고 일본에 비해서도 좁은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가정 격리’ 스트레스도 더 높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방문해 “부부와 어린아이 같은 경우엔 2명도 가능하겠다”고 한 공공임대아파트 넓이는 44m²(전용면적 기준)로 주거기본법 4인 가족 최저주거기준 43m²가 넘지만 2011년 만든 이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돼 왔다. 좁은 공간과 스트레스가 문제라면 한국은 이혼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아야 한다.

집값 급등도 이혼을 부추기는 동인이다. 최석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3년 전 ‘전세 및 매매 가격 변동이 이혼율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냈다. 1997∼2014년 주택 실거래가와 이혼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 논문의 결론은 ‘한국인은 집값이 오를 때 이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집값이 상승하면 이혼해 나눠 가질 재산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지면 자기 몫이 줄어 이혼을 늦추거나 보류하게 된다. 자산의 76%를 부동산, 특히 집으로 갖고 있는 한국인의 특성이다. “전처와 살던 강남 아파트 값이 20억 원을 넘은 뒤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지인의 얘기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집값이 크게 오른 올해 한국에서 이혼이 줄고 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이혼사건 건수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 넘게 감소했다고 한다. 성장률이 높은 시기엔 이혼이 줄고,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 ‘불황(不況) 이혼’이 증가한다는 통계와도 정반대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9만1160건이던 이혼 건수가 경제 충격이 본격화한 1998년 11만6294건으로 28%나 폭증했다. 밖으로부터 위협이 닥치면 가족끼리 똘똘 뭉치는 한국인의 품성이 발현돼 이혼이 줄었다는 해석은 신빙성이 높지 않다.

2년 연속 증가하던 이혼 건수가 올해 줄어든 이유가 ‘전세대란’ 탓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집값 상승기엔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집값과 전세가율이 동시에 높아지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임대차 2법 등의 영향으로 전세 매물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12월 수도권 전세가율은 67.1%로 치솟았고, 전셋값이 집값을 뛰어넘은 곳까지 나왔다. 집값이 올랐어도 이혼하면서 둘로 쪼개면 비슷한 수준의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혼 결정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집은 이렇게 한국인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긴밀히 얽혀 있다. 청년들이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일자리와 집 문제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란 구호만으로 국민의 생활 방식이 금세 바뀌진 않는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년 설 연휴 전 내놓겠다는 현 정부 25번째 부동산대책은 이런 복잡한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까.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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