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불안 불만… 30대가 ‘영끌’에 나선 이유[광화문에서/신수정]

신수정 디지털뉴스팀 차장

입력 2020-10-28 03:00 수정 2020-10-2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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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디지털뉴스팀 차장
“오늘도 대출금을 떠올리며 외식하고 싶은 거 참고, 짜장면 시켜 먹고 싶은 거 참고 짜파게티 끓여 먹고, 가을에 어울릴 만한 립스틱 하나 집어 들고 한참 고민하다 ‘에이 마스크 쓰는데 이 돈으로 대출이나 한 푼 더 갚지’ 하며 결국은 내려놓는 여러분께 진심 어린 응원과 박수를 보냅니다.”

‘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 시리즈로 유명해진 39세 주부 논객 ‘삼호어묵’이 이달 중순 회원 수 100만 명을 넘는 한 유명 부동산 카페에 올려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은 글 ‘30대 영끌족들에게’의 마지막 문장이다.

삼호어묵은 이 글에서 “일부러 어렵고 힘들고 불안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30대 영끌족들”이라며 “30대 영끌족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하지 않은 30대는 집값 상승의 주범 따위가 아니라 인생을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주역들”이라고 했다.

1000개가 넘는 댓글 중 상당수는 30대 흙수저 영끌족들이 썼다. 이들은 집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투기꾼, 적폐로 몰리는 답답한 현실 속에서 우리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진심이 담긴 글에 눈물이 났다고 고백했다.

최근 신용대출을 비롯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해 내 집 마련에 나서는 30대가 늘고 있다. 21일 한국감정원의 아파트 매입자 연령대별 현황에 따르면 9월 30대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790건으로 전체 거래량(4795)의 37.3%나 됐다. 작년 1월 연령대별로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 수치다.

영끌해서 집을 장만한 30대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불안해서 샀다는 이들이 많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를 믿고 기다렸는데 집값이 떨어지기는커녕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무섭게 오르는 집값을 보며 매매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꺼내든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요구권으로 전세 물량이 부족해진 것도 30대를 영끌하게 했다. 자칫하면 전세마저 구하지 못해 월세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매매 시장으로 이끌었다.

높은 청약 문턱도 30대가 영끌로 집을 사는 이유다. 최근 발표되는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 청약 가점 커트라인은 50, 60점을 훌쩍 넘는다. 40, 50대 무주택 고가점자도 많은 상황에서 30대가 청약 가점 경쟁에서 이들을 이기기는 어렵다.

청약 당첨 가능성은 희박하고, 연일 아파트 값은 오르고, 무리한 법 시행으로 전세는 씨가 말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지 않겠는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올 8월 국회에서 “법인과 다주택자 등이 보유한 주택 매물이 많이 거래됐는데, 이 물건을 30대가 영끌로 받아주는 양상이다.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정부는 30대를 영끌하게 한 이유가 잘못된 부동산 정책 때문이라는 사실부터 인정했으면 한다. 30대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비싼 집을 사는 게 진심으로 안타깝다면 지금이라도 부동산 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받아들이고 시장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바꾸길 바란다.

신수정 디지털뉴스팀 차장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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