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말 잘 들은 친구의 노후[오늘과 내일/김광현]

김광현 논설위원

입력 2020-10-22 03:00 수정 2020-10-2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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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안정 당위만 믿다가 무주택 처지
“정부 말 들으면 손해만 본다”는 통설 깨야


김광현 논설위원
친구 A는 공무원 생활 30년에 은퇴를 몇 년 앞두고 있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친구들 모임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실적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승진은 항상 최선두였다. 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 몇 번의 승진 심사에서 탈락한 이후 더 이상의 기대를 접었다. 더욱 딱해 보이는 것은 그의 살림살이다. 무주택인 채로 지방 근무를 나갔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오니 도심은 물론이고 서울 주변에 집 사는 것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 혹은 제주도에 내려갈 것이라고 한다.

이 친구의 무주택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이 청와대나 경제부처가 하는 말을 너무 믿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집값이 한창 들썩일 때였다. 불안해진 친구 아내가 재건축 아파트 입주권이라도 사야겠다고 부동산중개업소에 다녀왔다. 그랬더니 친구가 “공무원이 아파트 딱지나 사서야 되겠느냐. 어차피 집값은 반드시 잡는다고 하니 그때 사도 늦지 않다”면서 면박을 줬다고 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집 이야기만 나오면 아내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당시 꽤 이름을 날리던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논리도 한몫했다. 국민소득, 성장률, 인구구조 등을 종합해서 보면 서울의 집값이 턱없이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부동산 버블이 터지듯 오래지 않아 서울 집값도 폭락한다는 거품붕괴론을 열심히 전파했다. 친구 A도 그 거품붕괴론을 들먹이면서 반드시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당위를 현실로 믿고 싶었던 것이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히 맞는다고 하는데 20년 넘은 최근에도 미친 집값론은 반복되고 있으니 그 말 듣고 집 안 산 사람들은 미칠 노릇일 게다.

요즘 전세시장이 불안하다. 그런데 최근 열린 고위 당정청 비공개 회의에서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전세 거래 물량이 늘었고 전세시장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전세를 구하러 직접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아마 홍 부총리의 말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3600가구 단지에 전세로 나온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서 5500가구 옆 단지로 갔더니 사정이 낫다는 게 겨우 2, 3채였다. 10명이 줄을 선 끝에 제비뽑기해서 전세계약자를 결정했다는 말이 결코 소설이 아니었다. 전국 10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 총 1798개 단지 중 72%가 전세 매물이 5건 이하라는 전수조사 결과가 일반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과 가깝다. 아무리 경제는 심리이고, 정책담당자의 사기가 중요하고, 윗분의 의중을 살펴야 한다고 하지만 홍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현실과 너무 멀다.

앞으로는 나아질까. 전세 품귀와 전셋값 인상과 가장 관련이 많은 변수 중 하나가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다.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을 보면 7월 4만1154가구에서 점점 줄어 이달에 2만1987가구로 감소한다. 내년에는 총 26만5594가구로 올해보다 26.5% 더 줄어든다. 서울만 보면 2만6940가구로 올해 4만8758가구에 비해 거의 반 토막 수준으로 급감한다. 주택임대차 3법 개정에 따른 일시적 혼란은 몇 개월 지나면 안정될 것이라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을 선뜻 믿기 어려운 이유다.

어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재로 홍 부총리, 김 장관 등이 참석한 경제상황 점검회의가 열렸다. 언제부턴가 청와대, 국회에서 경제 관련 회의가 열린다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주장과 대책들이 나올까 싶어 겁부터 난다. 정부가 하는 말만 믿고 따라하기만 하면 노후에 손해 보는 일이 없다는 믿음을 주려면 무엇보다 정치적 목적이 아닌 현실적인 기반에서 출발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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