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비 부담 커지는 월세살이… 내집마련 목돈 모으기도 힘들어져[인사이드&인사이트]

김호경 산업2부 기자

입력 2020-08-12 03:00 수정 2020-08-12 17: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임대차법 이후 전월세 시장 변화

동아일보DB
김호경 산업2부 기자
내 집 마련의 ‘징검다리’이자 집값을 상승시킨 주범.
한국 특유의 전세 제도가 가진 두 얼굴이다. 지난달 31일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요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촉발된 전세-월세 전환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해외처럼 전세 없는 ‘월세 시대’가 언제 올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초저금리인 데다 임대료 규제까지 더해지며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전세 제도는 그동안 세입자에게는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집주인에게는 내 집을 마련하는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갭 투자(전세 보증금 끼고 매매)를 활성화시켜서 집값을 끌어올렸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전세가 사라져 월세가 늘면 일단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그 대신 갭 투자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전셋값과 집값이 안정될 여지가 있다. 월세 전환에 따른 주거비 부담 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와 여당은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하는 비율(전월세 전환율)을 현행 4%에서 2%대 초반으로 낮추고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격변을 겪고 있는 전월세 시장을 둘러싼 쟁점을 살펴본다.

○ 시세대로 월세 전환하면 세입자 불리

최대 쟁점은 세입자에게 월세가 정말 불리한 제도냐는 것이다. 서울 2000채 이상 대단지 아파트 단지 5곳의 전월세 주거비를 한국감정원 시세대로 비교해 보니 월세가 전세보다 1.3∼2배가량 높았다. 이는 세입자가 전세와 월세 보증금 차액을 금리 연 2.5%의 전세 대출로 마련한다고 가정한 결과다.

전월세 부담 격차가 가장 큰 곳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7단지’였다. 전용면적 45m²의 전세 보증금은 1억7000만 원이다. 월세는 보증금 2000만 원에 62만 원이다. 전세로 살 때 매달 내는 비용인 대출 이자는 31만 원이다. 월세 62만 원의 절반 수준이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정한 전월세 전환율(연 4%)을 적용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전월세 전환율은 기존 전세를 월세로 재계약할 때에만 적용되는 권고 사항이다. 실제 서울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은 단지마다 3∼5% 선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보니 전월세 전환율을 4%로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월세 부담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면적 84m²의 전세 보증금은 9억 원이다. 현재 보증금 1억 원짜리 월세 시세는 220만 원으로 전세 보증금에 대한 대출 이자(월 167만 원)의 약 1.3배다. 하지만 전월세 전환율 4%를 적용하면 월세는 매달 267만 원으로 시세보다 늘어난다.

○ 전월세 전환율 2%대 초반 강제하면 세입자 유리

정부와 민주당이 이달 안에 전월세 전환율을 2%대 초반으로 낮추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월세 전환율과 전세 대출 금리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월세 전환에 따른 세입자의 주거비 상승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전월세 전환율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서민전월세대출 최저 금리(연 2.28%)를 고려해 2.2% 안팎으로 낮추고 강제력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전용면적 76m²의 경우 보증금 5000만 원짜리 월세 시세는 142만 원, 전세 시세는 5억 원이다. 민주당 구상대로 실제 전월세 전환율 2.2%를 강제한다면 월세는 전세와 월세 보증금 차액(4억5000만 원)에 전월세 전환율 2.2%를 곱한 뒤 12개월로 나눈 83만 원을 초과할 수 없다. 보증금 차액에 대한 전세 대출 이자(94만 원)보다 11만 원가량 저렴해지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은 15.2%로 37개 회원국 중 가장 낮다. 하지만 시세대로 월세가 전환되면 주거비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전월세 전환율을 2%대 초반으로 강제한다면 이런 상황을 막을 수 있겠지만 주거 품질 저하 등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 장기적으론 월세 확산 불가피

전월세 논란의 또 다른 쟁점은 전세를 월세로 돌릴 수 있는 집주인이 과연 얼마냐 되겠냐는 점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달 4일 한 방송에 출연해 “서울 임대가구는 갭 투자로 집을 구입한 경우가 많다”며 “임대인의 자금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라 월세 전환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을 지렛대로 삼아 매입한 집주인은 당장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갭 투자 비율은 자금조달계획서에 ‘임대보증금으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응답한 비율로 추정한다. 미래통합당 윤두현 의원에 따르면 서울의 갭 투자 추정 비율은 2018년 52.6%, 지난해 43.8%, 올해 1∼7월 기준 44.8%다.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이 의무화된 2017년 9월 이후 서울에서 주택을 구입한 집주인의 절반이 갭투자로 집을 사들였다고 볼 순 있어도 서울 전체 주택으로 확대 해석할 순 없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점차 월세가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가장 큰 요인은 금리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올해 6월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0.88%로 ‘제로(0) 금리’로 접어들면서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넣고 이자를 받는 것보다 월세가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전용면적 76m²를 가진 집주인이 시세대로 전세 보증금 5억 원을 받아 은행에 넣어두면 연간 이자는 440만 원, 월 37만 원이다. 그 대신 반전세로 돌려 보증금을 5000만 원으로 낮추면 월세를 시세대로라면 142만 원을 받는다. 전월세 전환율 2.2%를 적용해도 이자 수익의 약 2.4배인 83만 원을 월세로 받을 수 있다.

초저금리 시대에 월세 전환은 집주인에겐 매우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게다가 내년부터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부담이 더 늘어나는 만큼 이를 월세로 충당하려는 집주인들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간은 걸릴 테지만 집주인에게 월세가 유리한 방향으로 모든 시장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전부터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면서도 선뜻 전환하지 못한 건 전세 공급이 꽤 넉넉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월세 전환을 요구하면 세입자는 다른 집을 구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동향은 지난해 1월 78.9에서 지난해 10월 100을 넘었다. 이후 계속 올라 올해 7월 112.9를 찍었다. 100을 넘으면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이다. 전세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집주인들은 마음껏 월세 전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기존 세입자들은 계약갱신요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로 월세 전환, 임대료 인상에 제동을 걸 수 있지만 새로 집을 구하는 세입자들은 집주인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 “충분한 주택 공급 뒷받침돼야”

향후 월세가 보편화되면 임대료 외 추가 비용이 생길 수 있다. 한국보다 앞서 임대 시장을 규제하는 유럽과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보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는 게 점차 어려워질 수 있다. 임대료 인상에 제동이 걸린 집주인들은 각종 수리비와 청소비 등을 깐깐하게 따져 보증금에서 차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의 3년 이상 거주가 보장되고 정부가 정한 기준 이상으로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는 프랑스에선 통상 2, 3개월 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내는데, 이사 나갈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꽤 빈번하다. 공급이 수요보다 적은 파리에서는 세입자를 받을 때 각종 신용, 소득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거나 경우에 따라 면접까지 보는 경우도 있다. 스웨덴 다음으로 임대료 규제가 엄격한 네덜란드 역시 이런 부작용이 적지 않다. 공통적으로 임대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돌다 보니 집주인들의 비(非)가격적인 ‘갑질’ 등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충분한 양질의 임대 공급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면 월세에서 전세, 이후 목돈을 마련해 자가를 구입하는 ‘내 집 마련 사다리’의 중간이 사라지는 셈”이라며 “당장 임대료 부담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 주택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면 집값은 더욱 올라 세입자들의 내 집 마련은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논란을 전세 제도의 명암을 따져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진미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가 내 집 마련의 징검다리라는 순기능도 분명 있지만, 세입자가 대출로 마련한 전세 보증금이 전셋값을 떠받치면서 전셋값과 집값 거품이 유지되는 역기능이 점차 커지고 있다”며 “임대차 3법을 계기로 전세가 우리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경 산업2부 기자 kimhk@donga.com


전문가 칼럼



부자동 +팔로우, 동아만의 쉽고 재미있는 부동산 콘텐츠!, 네이버 포스트에서 더 많이 받아보세요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