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서울 시민에겐 끊어진 부동산 사다리[광화문에서/김유영]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20-07-17 03:00 수정 2020-07-1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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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집 샀어?”

젊은 사람들로 붐비는 주말 카페나 도심 오피스 식당에 있으면 옆 테이블에서 요즘 자주 들리는 소리다. 때로는 부러움 섞인 이야기가 오가지만 대개는 탄식으로 시작해 분노로 끝난다. 요즘만큼 부동산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하게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서울 아파트 값(중위가격)이 올 초 9억 원을 돌파했으니 백만장자(millionaire) 뜻도 수정되어야 한다. 100억 원이라면 모를까, 100만 달러(약 12억 원)로 한국에서 부자라 하기엔 어림도 없게 됐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혹은 물려받을 재산이 마땅히 없는 서울 사람들은 요새 유독 절망스러워한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에 따라 좋은 동네의 좋은 집을 어떻게든 사고 싶어 하지만, 그 길이 사실상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전세 끼고 집을 사두는 ‘한국형 내 집 장만 모델’이 불가능해진 게 대표적이다.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라 목돈 마련이 힘든 사람들은 현 거주지보다는 상급지에 전세 끼고 아파트를 사뒀다가 나중에 돈 모아서 입주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곤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9억 원 이상 아파트(지난해 12·16대책)에 이어 3억 원 이상 아파트(올해 6·17대책)까지 이런 매매가 힘들어졌다. 서울에서 3억 원을 밑도는 아파트는 씨가 마르고 있어 서울 대부분의 아파트가 이런 규제를 받는다. 은행 대출도 힘들어졌음은 물론이다.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를 사려면 집값의 50∼60%는 현금으로 들고 있어야 한다.

강남으로 향하는 길은 더 험난해졌다. 강남 아파트 값은 대체로 15억 원 이상인데 담보대출이 전면 금지됐고 실거주 요건도 강화됐다. 정부는 집값 상승 요인으로 강남 4구(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전세 끼고 사는 주택 매매 비중이 높았다는 점을 들었지만 이 지역은 진입 대기 수요가 꾸준히 존재해 왔다.

사람들이 절망하는 정부 대책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부가 ‘1가구 1주택’과 ‘실거주’를 강조하다 보니 더 나은 삶으로의 상향 이동(upward mobility)을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나 노후 대비, 자녀 결혼 등에 따른 추가 수요는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의 정책은 자신이 보유한 집에 거주하고 있지 않으면, 이런 수요를 모두 투기로 몰아붙이고 대출 한도도 줄이고 갭 투자도 막아놓았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풍선효과가 일어나는 등 시장 왜곡이 생기고, 결국 사람들은 지금의 집에 머물러 앉을 수밖에 없다. 자조 섞인 웃음을 자아내는 ‘부동산 계급표’가 요새 나오는 이유다. 황족-왕족-중앙귀족-지방호족-중인-평민-노비 등으로 나뉘어 집값이 비싼 순으로 서울의 각 자치구 거주자들이 나뉘어 있다.

차익만을 노린 단기 투자는 규제받아 마땅하지만 서울 집값이 오르는 건 투기 세력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공급 확대를 지시하고 정부가 늦게나마 공급 방안 마련에 나선 점은 꽤 긍정적이지만 서울에 공급해도 투기 세력의 먹잇감을 늘려주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면 성난 부동산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충분히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집값이 안정된다. 더 나은 삶을 살고픈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린 대책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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