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에도 등장한 ‘한국 민화’…젊은 예술인 사로잡은 매력은

이소연 기자

입력 2022-04-06 10:18:00 수정 2022-04-06 10: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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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를 모티브로 한 미스소희 드레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뒤 진행된 배니티 페어 오스카 파티. 영국의 배우 겸 가수 리타 오라가 검은 드레스 위에 산과 소나무, 사슴이 장식된 흰 가운을 입고 등장했다.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가운 위에는 한국 전통 민화(民畵)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 드레스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패션 디자이너 박소희 씨(26)가 돌체앤가바나의 후원으로 제작한 2022 F/W 컬렉션 제품이다.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와 카디비가 선택한 디자이너로 꼽힌 박 씨는 지난달 1일 인스타그램에 컬렉션을 소개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민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이름 없는 평범한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이죠. 한국 민속예술의 멋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18~20세기 초 조선시대 서민층에서 주로 유행한 민화가 21세기 젊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디자이너 양해일의 브랜드 해일(HEILL)은 ‘22-23 F/W 프랑스 파리 패션위크’에 선보일 컬렉션에서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해와 달, 다섯 봉우리가 그려진 그림) 등 민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은 삼성가전과 협업해 십장생도(十長生圖·장수를 염원한 민화)를 형상화한 배경에 가전을 배치한 일러스트를 제작했다. 젊은 예술가를 매료시킨 민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삼성가전과 민화 일러스트레트


전문가들은 민화가 내재하고 있는 ‘모더니티’가 현대예술과 조응한다고 분석한다. 민화는 백성의 그림이라는 뜻처럼 태생부터 사대부의 예술이라 불리는 문인화(文人畵)와 달랐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민간 화가들이 조선 후기 평민 등으로부터 돈을 받고 맞춤제작한 그림이다. 문인화가 수묵으로 색을 절제하며 조선의 예사상인 충효(忠孝)를 표현했다면 민화는 백성의 욕망을 담았다. 파랑, 빨강, 노랑, 검정, 흰색 등 오방색(五方色)을 자유롭게 활용했고, 거창한 사상이 아닌 번영과 행복을 기원하는 개인의 욕망을 드러냈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은 “19세기 상업 발달로 부를 축적한 평민사회에서 민화를 소장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한 번도 예술의 수요자가 되지 못했던 평민이 예술의 향유 주체가 됐다. 자연스럽게 그림의 주제도 평범한 개인의 욕망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선임연구원은 “문인화와 정반대로 색을 자유자재로 표출하는 저항성을 내재하면서도 오방색만을 사용한 점도 매력적”이라며 “민화는 미니멀리즘과도 맞닿은 모던아트”라고 풀이했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민화가 각광받는 이유는 민화 본연의 개방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란, 까치, 호랑이 등 유사한 소재를 활용하되 틀에 갇히지 않는 표현으로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책장에 진열된 사물을 그린 ‘책거리’는 당대 흔히 볼 수 있는 민화 양식이지만 그림 속 사물은 제각각 다르다. 책장에 반짇고리와 은장도, 비단신 등 여성의 물건만을 배치한 작품은 가부장사회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여성주체의 존재를 암시한다. 정 교수는 “창작자가 자신만의 관점으로 피사체를 재해석하는 것이 민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미술계도 민화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뉴욕 찰스왕센터,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은 2016년 9월부터 1년 넘게 조선민화 특별전을 열었다. 시카고미술관은 2017년 발간한 도록에서 폴 세잔의 정물화와 민화 ‘책거리’를 나란히 배치하며 “한국의 정물화”라고 소개했다. 뉴욕 패션공과대(FIT) 미술관에서 2020년 ‘한국 민화전’을 기획한 변경희 뉴욕FIT 교수는 “민화는 한류를 이끌 K아트의 선두주자”라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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