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로 치매 막고, 앱으로 재활 돕고

신동진 기자

입력 2021-03-19 03:00:00 수정 2021-03-19 03: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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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비대면 의료’ 스타트업 주목

한 어르신이 세븐포인트원의 가상현실(VR) 치매 인지개선 솔루션 ‘센텐츠’를 통해 가상의 옛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에이치로보틱스 직원이 관절용 원격재활기기 ‘리블레스’를 시연하는 장면. 각 사 제공

“할머니, 장독대 뒤에 숨어본 적 있으세요?” “꽃밭에서 무슨 놀이 하셨어요?”

인지장애를 겪고 있는 박모 할머니(80)는 일주일에 한 번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초가집과 코스모스 들판 등 낯익은 고향 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어릴 적 친구와 숨바꼭질하던 추억 등 흐릿했던 옛 기억이 아련하게 되살아난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세븐포인트원’이 개발한 스마트 케어 솔루션 ‘센텐츠’는 요양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에게 익숙한 과거 풍경을 보여주며 기억력을 되살리는 회상요법을 VR로 구현했다. 이현준 세븐포인트원 대표(37)는 “영국 요양시설에서는 환자의 인지 지원과 우울증 감소를 위해 1960년대 마을 모습을 실제로 복원하기도 하는데 가상세계에서는 그런 시설투자 없이도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인공지능(AI)과 1, 2분간 전화통화를 하며 치매 고위험군을 확인할 수 있는 비대면 치매 진단 솔루션도 개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비대면 의료’ 수요가 늘면서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차세대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앱)과 VR, 게임 등을 약처럼 쓰는 ‘디지털 치료제(DT)’ 개발과 상용화도 속도가 붙고 있다.

로봇 기반 헬스케어 업체 에이치로보틱스가 개발한 재활 의료기기 ‘리블레스’는 지난달부터 DB손해보험의 후유장애 케어서비스에 포함됐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집에서 앱으로 직접 장비를 조작하고 의료진은 원격재활 플랫폼을 통해 환자 관리를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의료기기 및 보험수가품목 등록을 마쳤다.

디지털치료제는 ‘차세대 의약품’으로 불리며 미국, 유럽에서 이미 대규모 투자를 받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인 원격의료가 금지돼 성장이 더딘 편이다. 투자액 기준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상위 100대 기업에 국내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전 세계 헬스케어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기업) 40여 곳 중 한국 기업은 에이프로젠 한 곳뿐인데 그나마 디지털보다는 생명공학(바이오) 업체에 가깝다. 정부는 2019년 첫 디지털 치료제 임상 계획을 승인하고 지난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품목분류를 신설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지만 아직 상용화된 서비스는 없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로 빅테크들과 병원, 보험사, 제약사들의 협업과 투자가 잇따르면서 국내 디지털 헬스 산업 생태계도 확대되고 있다. SK텔레콤와 서울대 의대 연구진은 AI 스피커를 이용한 기억훈련 프로그램 ‘두뇌톡톡’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지난달 헬스케어 분야 저명 국제 학술지인 JMIR에 등재했다. LG는 카카오가 발굴한 헬스케어 업체들을 육성하는 펀드에 50억 원을 투자했다. 신한생명은 AI 암진단 솔루션을 개발한 루닛과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추진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네이버는 액셀러레이터 D2SF를 통해 세븐포인트원 등 디지털헬스케어 스타트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대표는 “디지털 헬스케어는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에서도 접근 가능하다. 게임이나 IT업계에서 일하다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가진 개발자들의 합류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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