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주총시즌…재계, 행동주의 펀드 ‘먹튀’ 우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입력 2019-03-20 16:05 수정 2019-03-20 16:21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다른 시즌과 달리 올해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반경을 넓히고 있고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들 업체들의 활동이 이전에 비해 전략적이고 정교해졌다는 평가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기업 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여론을 앞세워 기업을 압박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계에서는 올해 주총이 유난히 험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먼저 오는 22일 열리는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주총에서는 회사 측과 해외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대결을 펼친다. 엘리엇이 사측을 상대로 7조700억 원에 달하는 배당과 사외이사 선임 건을 요구한 상황이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업체 대다수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측 의견에 찬성할 것을 권고하면서 사측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지만 결과가 나오는 주총 당일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이어 28일 열리는 현대홈쇼핑 주총에서는 미국계 투자회사 돌턴인베스트먼트와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증대를 제안한다. 또한 한솔홀딩스와 무학, 강남제비스코 등 다양한 기업들이 주총에서 행동주의 펀드 요구에 맞서야 하는 형국이다. 29일에는 한진칼 주총이 예정됐다. 서울고등법원 결정에 따라 국내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제안한 감사 및 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제한 등이 다뤄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행동주의 펀드들이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단기적 주가 부양을 거쳐 이익 극대화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표 대결까지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근심이 깊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행동주의 펀드는 대량 주식매수를 통해 특정 기업의 주요 주주 지위를 확보한 후 적극적인 경영 관여로 기업 가치 증대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 제고보다는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올려 시세차익을 내고 손을 터는 ‘먹튀’ 행동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재계 측 의견이다.

미국의 유명 애널리스트로 알려진 라나 포루하(Rana Foroohar)는 최근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Makers & Takers)’라는 책을 통해 행동주의 사모펀드 관련 금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모펀드의 경우 미래를 위한 투자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빠른 시일 내에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경영방식을 택하도록 압박을 가한다고 언급했다. 단기 성과주의로 기업이 추진 중인 장기적인 계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행동주의 펀드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국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언론을 통해 행동주의 펀드는 주로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 주식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단기적인 성과만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회사 경쟁력 강화와 성장에는 도움이 안 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유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재계 전문가들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행동주의 펀드 등 외부 세력의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기 이익만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경영에 개입해 기업 자율성을 흔들 경우 경영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도 이 같은 내용을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올해 초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경영에 개입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해당 기업 고용은 약 18.1% 줄었고 투자는 23.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41.0%, 83.6%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계가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황금주 등 방어 수단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하는 이유다. 특히 국내 대다수 대기업이 정부 시책에 따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상황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그룹 지분이 집중된 지주회사 주식을 매입할 경우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경영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외 경제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국가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은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며 “행동주의 펀드들의 무리한 요구는 앞만 보고 나아가기 바쁜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관련기사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