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러스 급발진 추정 사고, 운전자 과실인 까닭은?

동아경제

입력 2014-09-26 17:41 수정 2014-09-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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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오피러스 급발진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가 1심 선고(원고 패소)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4년 6개월간의 급발진 법정 공방은 운전자 과실로 인한 단순 교통사고로 마무리됐다.

26일 서울지방고등법원 재12민사부(재판장 김기정)는 지난 2010년 3월 26일 경기도 포천에서 발생한 오피러스 급발진 추정 사고와 관련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 피고 측인 기아자동차와 델파이유한회사에 이에 대한 더 이상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김기정 재판장은 판결문을 통해 “사고 당사자가 진실을 기억해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진실을 밝히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흔히 얘기하는 급발진 상황과 다른 형태의 사고”라고 말했다.

포천경찰서에 따르면 당시 운전자 A씨의 오피러스는 경기도 포천의 편도 1차선 도로를 달리 던 중 우측으로 굽은 내리막길에서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자동차검사소 입구로 돌진했다. 검사소 주변에 주차된 쏘나타의 왼쪽 뒷문과 범퍼를 추돌하고 콘크리트 벽에 부딪힌 뒤 약 40m 정도 날아가서야 정지했다. 사고로 A씨는 인지장애를 얻었고, 동승자 두 명중 한명은 숨을 거뒀다.

그동안 양측은 사고 당시 차량 속도에 대해 엇갈린 주장을 펼쳐왔다. 차량이 쏘나타와 높이 80~100cm, 두께 23cm 벽을 잇달아 충돌하고도 멈추지 않고 공중으로 날아 먼 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이다. 차의 이동구간에는 다른 차량 4대가 나란히 주차돼 있었지만, 오피러스로 인한 파손이나 흠집이 전혀 없었다. 또한 폭 6m가량의 개천도 있었다. 하지만 오피러스는 이를 모두 뛰어넘어 40m 이상을 날아갔다.

원고 측 주장은 이런 정황을 봤을 때 오피러스의 속도가 줄지 않을 만한 엄청난 힘이 전달됐다는 것이다. 급발진을 의심하는 결정적 이유다. 차량 속도에 대해 기아차는 사고 현장 CCTV 분석결과 100~126km/h 정도라고 설명했지만, 법안전융합연구소의 감정결과 충돌 직전과 2차 충돌(쏘나타)의 속도는 각각 165km/h, 160km/h였다. 철근콘크리트 충돌 직후 속도는 121.3km/h가 나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동승자의 진술에 의하면 문제의 승용차가 높은 속도에 도달 했을 때 사고 당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며 “이에 급발진 사고로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고 피고 측이 사고를 입증해 낼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원고 측은 이 같은 차량 급가속이 ECU 납땜부 기공(void)에 의한 것이라고 법원에 증거자료를 제출했지만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창우 박사는 사고차량 ECU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기공 문제 가능성을 지적했고, 대우일렉 품질경영연구소에서도 문제의 차량이 16% 납땜부 기공 불량이 있음을 입증해냈다.

제작사의 규격도 이와 비슷한 수치다. 취재진이 입수한 현대·기아차 내부 문건에 따르면(ES90000-04) 전체 보이드와 단일 보이드 발생 면적은 각각 20%와 10%로 한정했다. 그런데 사고 당시 출고 9개월 된 차량은 16% 불량이 발생한 것. 하지만 제작사는 ECU 내부 기공이 차량 결함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기공은 납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내부에 남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인쇄기판 설계 및 테스트 관련 산업협회인 IPC 규정에는 25%까지 기공 허용 수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공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얘기다.

이에 재판부는 “원고 측이 사고 원인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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