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선 명창 “이 작품, 내 소리인생의 버팀목 두 선생님께”

임희윤 기자

입력 2019-03-22 03:00 수정 2019-03-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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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창극 ‘두 사랑’ 연습실… 안숙선 명창을 만나다

“나, 만정 김소흰데….”

김소희 명창(1917∼1995)을 연기하는 젊은 소리꾼 권송희 씨의 대사에 안숙선 명창이 바로 받아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전화기를 쥔 듯 연기하던 안 명창이 빈 왼손을 잠시 내려놓고 말했다.

“…저기, 송희 씨, (김소희) 선생님은 그렇게 (자기소개) 안 하셨는데?”

좌중이 폭소를 터뜨린다.

12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지하 연습실. 이야기창극 ‘두 사랑’ 연습은 안 명창의 재치 있는 애드리브 덕에 종종 개그콘서트 비슷하게 흘렀다.

다음 달 5∼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리는 ‘두 사랑’은 안 명창의 62년 무대 인생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1947년 전북 남원의 아홉 살 꼬마 안숙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대기를 재미난 현대극 형식으로 풀었다. 이 때문에 이날 연습은 몇십 분 사이에도 1940년대 전북 남원부터 2019년 서울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타임머신이 됐다. ‘이야기창극’이란 장르명도 이 무대를 묘사하기 위해 붙인 새 이름이다.

서두에 묘사한 장면은 1969년, 서울의 김소희 명창이 남원국악원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안 명창을 찾는 대목. 극에서 안 명창과 소리꾼 권송희, 배우 고수희 이지나는 여러 인물로 분해 안 명창의 일생을 좇는다. 이번 공연을 위해 안 명창이 1년 동안 구술한 것을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극본으로 엮어냈다.

안 명창은 장면마다 어린 숙선, 젊은 숙선으로 분했다, 가야금 병창을 했다, 소고춤을 췄다, 1인 다역. 바쁘게 움직인다.

“‘두 사랑’이란 저의 스승이신 판소리 명창인 만정 김소희 선생과 가야금병창 명인인 향사 박귀희 선생(1921∼1993)을 가리킵니다.”

이날 연습 후 만난 안 명창은 “제가 젊었을 때는 머리 모양, 옷매무새까지 간섭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서운했고, ‘선생님 예뻐요, 선생님 좋습니다’ 한마디 못한 무뚝뚝한 제자였다”고 돌아봤다.

“그저 제 노래, 제 공부에만 열중하며 선생님들께 살갑게 못한 게 후회가 됩니다. 돌아보니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두 분의 사랑이 너무 절대적이었지요. 우리 국악계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모든 걸 내놓으신 헌신도 무엇에 비길 수 없지요.”

1인 다역으로 동분서주하는 것도 ‘두 사랑’에 온전히 보답하기 위해서란다.

“처음엔 연출가 선생님(임영욱)이 제안한 독특한 형식이 마뜩잖아 다투기도 했어요. 근데 극의 형식을 들여다볼수록 ‘연출가 선생이 한 수 위네. 대단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국악계의 중추로 있었지만 안 명창은 새 형식에 줄곧 열려 있었다. 고대 그리스 배경의 ‘트로이의 여인들’에 참여하는가 하면, 국립국악원의 ‘작은 창극’ 실험을 주도하면서 근년에 영국, 러시아를 돌며 공연하기도 했다.

“그런 극들도, 또 이번 작품도 임하는 자세는 같아요. 다양한 결의 수준 높은 작품이 나와서 우리 후배 국악인들이 설 무대가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죠. 선생님들께 못 부렸던 재롱, 어디 가서 못 떠는 방정을 이 무대에서 떠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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