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심상정의 ‘전업주부’ 남편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입력 2017-03-02 03:00 수정 2017-03-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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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58)와 노회찬 원내대표(61)가 부부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MBC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 쇼’의 진행자인 강석, 김혜영을 부부로 착각하듯 말이다. 심 대표는 노 원내대표와 함께 오랫동안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온 간판급 진보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달 정의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는데 남편은 이승배 씨(61)다. 이 씨는 경기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수재로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출신인 심 대표와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났다.

이 씨는 대선 후보의 배우자 자격으로 ‘여성동아’와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스스로를 ‘전업주부’라고 소개했다. 결혼 후 출판사를 운영하던 그는 2004년 심 대표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되자 집안 살림을 맡았다. 출판사를 접고 한의사가 될까 생각하던 참이었지만 “지금은 새롭게 일을 벌일 때가 아니다”라며 아내 뒷바라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씨는 아내가 세비를 받아오면 그것으로 살림하고 아이 키우고, 모자라면 부업을 해서 보탠다. 아내의 지역구 주민들을 위해 시민활동을 하며 적극적인 외조도 한다. 그의 ‘멀쩡한’ 스펙을 아는 지역구 주민들은 “왜 직접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결혼을 아예 안 했으면 모르지만 누군가는 받침이 돼야 다른 사람이 설 수 있으니까요. 한 사람이라도 확실하게 세우려고 주부가 된 거죠.”

알파걸 세대가 알파맘으로 자라면서 남편보다 잘나가는 아내들이 많아지고 있다. 체력보다는 머리와 소통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 변화도 여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미국은 2009년, 영국은 2010년부터 전체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아내의 수입이 남편보다 많은 부부가 38%다(미국 노동통계국 2015년 자료). 한국도 실직한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가장(家長)이 2000년 44만 명에서 2015년엔 139만7300여 명으로 증가했다(통계청).

앞치마를 두른 남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떨까. 2년 전 ‘엄마의 행복’을 주제로 특집기사를 준비하면서 전업주부 역할을 하는 남편에 대해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남성 응답자의 경우 ‘찬성’이 48.3%, ‘반대’가 29.2%였는데, 여성은 반대 의견이 67%로 압도적이었다. 당시 인터뷰에 응한 여성 가장은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 뒤 처음 한두 달은 즐겁게 집안일을 전담하더니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집안일도 육아도 내 몫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대표적인 알파맘인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는 저서 ‘린인’에서 부부 사이가 평등할수록 금실이 좋고 자녀들도 잘된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여자들에게 (직업적인) 기회에 달려들라고 부추기듯 남자들도 가정에 야망을 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갖 종류의 남자들과 사귀되 결혼할 땐 ‘자신과 동등한 동반자를 원하는 남성’과 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이 씨는 “노동운동을 하던 옛날 선배들은 여성을 옥바라지해 주는 대상 정도로 여기는 가부장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내를 만나면서 천박한 성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심 대표에게는 “평생 동반자로 같이 가자. 둘이 앞을 보고 같이 가고 싶다”고 프러포즈했다고 한다. 그는 약속대로 아내의 꿈과 그 꿈이 그려낼 사회를 위해 기꺼이 아내의 뒤에 섰다. 둘의 만남을 계기로 서로 성장하며 지향하는 바를 몸으로 살아내는 심상정-이승배 부부는 남녀 간 성공의 크기를 굳이 비교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갈 세대들에겐 훌륭한 롤 모델이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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