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철교 건너온 예술열차, 노을 그리고 싶어 멈추었나

글·사진 완주=안영배 기자·철학박사

입력 2022-09-17 03:00:00 수정 2022-09-1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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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완주 만경강 물길 여행
풍요 숨쉬는 만경강길 완주해보니
역사가 숨쉬는 강변풍경
관광 프로그램 이용해 방탄투어를


전북 완주군 비비정(왼쪽 작은 사진)에서 바라본 만경강 낙조(만경8경 중 제1경). 일제가 호남평야의 농산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세운 옛 만경강 철교 위로 새마을호 객차를 개조한 ‘비비정 예술열차’가 보인다.

《“어진 이(仁者)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知者)는 물을 좋아한다”는 게 2500여 년 전 공자의 말이다. 지자가 좋아하는 물은 과거부터 물류와 교역 등 경제 활동이 왕성하게 펼쳐지는 생활 공간이었다.‘물은 재물을 주관한다’(水管財物)는 풍수 논리, 그리고 지자를 잇속이 바르고 빠른 사람으로 풀이하는 경제적 관점도 이런 배경과 함께한다. 전북의 곡창지대를 적시며 서해로 흘러가는 만경강 물길은 지자의 슬기와 풍요의 기운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곳이다. 물길 여행에서 만나는 절경은 덤이다.》

○만경강에서 만난 전설적 예언


전북 완주군을 휘둘러 서해로 빠져나가는 만경강(약 80km)은 발원지에서부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물길 탐사 코스다. 현재 발원지인 밤샘(동상면 사봉리 밤티마을)에서 비비정(삼례읍 후정리)까지 이어지는 44km 구간이 ‘완주 만경강길’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돼 있다. 본래 있던 산길과 마을길, 둑길과 자전거길을 이은 도로다. 만경강의 살아 있는 생태계를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난해 한국관광공사로부터 ‘환경을 지키는 착한 발걸음’ 테마 추천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도 쉽게 발원지를 구경할 수 있다는 완주군 문화관광해설사의 말을 듣고 밤샘으로 향한다. 밤티마을에서 계곡의 밤샘까지는 약 1.5km의 임도로 이어진다. 길이 급하게 경사지지 않아 어린이를 동반한 뚜벅이 여행도 좋고, 시간이 급하면 밤샘 앞까지 승용차로도 갈 수 있다.

만경강의 발원지인 밤샘. 조그만 웅덩이에서 나온 가느다란 물줄기가 불어 만경강을 이룬다.

계곡 끝부분에서 만난 밤샘은 조그만 웅덩이에 물이 고인 샘이다.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 이곳은 샘 주변을 돌로 쌓은 것을 제외하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물줄기가 불고 불어서 큰 만경강을 이룬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밤샘을 오가는 임도에서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길가에 수줍게 핀 다양한 야생화들도 눈을 맑혀 준다. 밤샘에서 시작한 물길은 큰 인물이 난다는 거인마을(동상면 신월리)을 지난 뒤 동상호와 대아호라는 큰 호수를 이루게 된다. 둘 다 자연 호수가 아니라 인간의 기술이 적용된 인공 저수지다.

1966년에 완공된 동상호 주변은 인도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그 대신 저수지를 낀 아름다운 길은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 동상호를 낀 마을 이름은 수만리(水滿里)다. 지금이야 ‘물이 가득하다’는 뜻의 마을 이름이 어색하지 않지만, 희한하게도 조선시대부터 그렇게 불려 왔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전국 8대 오지에 들어갈 만큼 첩첩산중인 데다 개울 같은 만경강 물줄기만 흐르던 이곳이 왜 수만리로 불리게 됐을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조선 영·정조 때의 문신인 이서구(1754∼1825)가 전라감사로 부임해 이곳을 지나면서 “장차 물이 가득 찰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전라감사를 두 번이나 지낸 이서구는 유가(儒家) 계열의 도학자로 천문과 지리에 능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수만리 일대에는 풍수 명당들이 도처에 똬리를 틀고 있다. 마을 뒷산에 ‘비학귀소형’(飛鶴歸巢形·날아가던 학이 둥지로 돌아오는 형상) 명당이 있다고 해서 유래한 학동마을,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목마른 말이 물을 들이켜는 형상) 명당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음수마을 등이 유명하다.

대부산 명당 터에 자리한 수만리 마애석불.
그중 백미는 근처 대부산 정상 쪽의 수만리 마애석불(전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 자연 암벽에 새겨 놓은 거대한 마애불로,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작품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상은 1000년을 훨씬 넘겼으면서도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기운이 출중한 명당 터에 석상을 조성한 선인들의 안목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정상을 향해 1∼2km 등반의 수고로움은 이 터에서 기운을 누리는 것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을 정도다.

기암절벽의 운암산과 부드러운 동성산이 감싸주며 빼어난 절경을 연출하고 있는 대아저수지.
만경강을 가두는 또 다른 저수지인 대아호는 동상호와 달리 차에서 내려 빼어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기암절벽을 거느린 운암산과 우아하고 부드러운 동성산이 양옆으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호수의 반영(反影)이 매우 아름답다. 이른 새벽의 물안개는 신선세계를 연출하는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저수지 안쪽으로는 전주 최씨 묘역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자라가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지형을 하고 있어 인상적인 곳이다. 이 묘역에 대한 안내판을 보면 풍수 명당이란 자부심이 넘쳐난다. 운암산 장군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무학대사가 묘소를 잡아주면서 “자라혈(鰲穴)이라서 물에 잠길 때가 되면 자손이 크게 번창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실제로 일제강점기인 1922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아저수지가 생기면서 현실화됐다는 내용이다.

대아저수지에서 흘러나온 만경강의 도도한 물줄기는 완주군 곳곳에서 멋진 강변 풍경을 연출하다가 삼례읍 비비정(飛飛亭)에서 절정을 이룬다. 비비정은 조선 선조 때 무인 최영길이 지은 정자인데, ‘비비낙안’(飛飛落雁·강변 백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에서 따온 말이다. 지금의 비비정은 1998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옛 선비들은 비비정에 올라 백사장을 오르내리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그때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한내’라 불리는 삼례천이 유유히 흐르고 주변으로 드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지는 장면은 장쾌한 느낌을 준다.

물길을 가로지르는 옛 만경강 철교도 눈에 띈다. 일본이 호남평야의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세운 다리다. 한강철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나무로 만들어져 당시 관심을 모았던 다리다. 그러다 2011년 근처에 호남선 철교가 세워지면서 폐철교가 됐다. 폐철교 위에는 비비정예술열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마을열차 객차를 개조해 레스토랑, 카페, 수공예품 가게,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맨 마지막 객차 칸의 카페에서 바라보는 만경강의 노을은 그야말로 예술 작품이다.
○BTS 추억 여행 프로그램 풍성
완주 가을맞이 여행은 완주군이 마련한 관광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먼저 완주군은 고산자연휴양림에서 완주와일드&로컬푸드축제(9월 30일∼10월 2일)를 개최한다. 고산자연휴양림은 친환경 숙박 시설, 카라반을 갖춘 오토캠핑장, 각종 체육시설, 체험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데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완주와일드&로컬푸드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메뚜기잡기 놀이. 완주군 제공
완주군은 가족 휴양지인 고산자연휴양림의 특징을 살려 완주 ‘자연 친환경 체험과 건강한 로컬푸드 맛 체험’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와일드한 음식과 볏집 놀이터, 메뚜기 잡기, 수상한 놀이터 등 자녀들과 함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전통 축제”라고 말했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친환경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캠핑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도 한다.

방탄소년단이 5일간 머문 곳으로 유명해진 오성한옥마을. 전통 가옥과 현대식 갤러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완주군이 마련한 가을 시티투어 버스도 이용해 볼 만하다. 11월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방탄소년단(BTS)의 화보 주요 촬영지 중심으로 투어가 진행된다. 투어를 예약한 후 코레일 열차(5∼10% 할인)를 이용해 익산역에서 내려 삼례문화예술촌, 위봉산성, 오성한옥마을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특히 방탄소년단이 5일간 머문 오성한옥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의 전통 가옥과 현대식 갤러리가 조화를 이뤄 관광객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글·사진 완주=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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