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8800억 투자 獨머크 “시장 주도 기업들 많아 매력적”

변종국 기자

입력 2024-04-25 03:00 수정 2024-04-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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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규 한국머크 대표 인터뷰
“AI 수요로 반도체 시장 더 커져
글로벌 기업과 긴밀한 협력 강화
한국 자체 공급망은 약해 아쉬워”


김우규 한국머크 대표. 한국머크 제공

2021년 독일의 과학기술기업 머크는 미래 성장을 위해 30억 유로(약 4조4000억 원)의 글로벌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머크는 이 중 6억 유로(약 8800억 원)를 한국에 집행하기로 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금액이었다. 머크는 왜 한국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일까.

“한국이 시장을 주도하기 때문에 투자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강남 한국머크 사무실에서 최근 동아일보와 만난 김우규 한국머크 대표는 해당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한국머크의 사업 분야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바이오의약품, 치료제 개발 등 크게 3가지다. 특히 최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 집중 투자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해당 시장을 주도하는 유수의 기업들이 대거 포진한 매력적인 투자처였던 것이다.

김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투자에 영향을 주겠지만, 장기적인 투자는 결국 글로벌 기업이 있어야 한다. 기술과 시장을 이끄는 기업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투자를 이끌어 내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다. 머크는 1888년 세계 최초로 액정을 개발했다. 액정표시장치(LCD)의 핵심 소재인 액정 개발 및 생산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LCD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머크는 미래 성장을 위한 새로운 투자와 협력이 필요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국가가 한국이었다. 한국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머크가 보기에 한국은 △새로운 기술로 전환 △이에 맞는 생산 설비 확충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 등을 가진 곳이었다.


한국머크는 한국에 8개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연구소가 각각 3곳이다. ‘최대한 고객 가까이 위치해 공급과 협력을 긴밀하게 한다’는 머크의 경영 원칙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제품 개발 단계부터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어떤 제품은 상용화에만 10년, 20년도 걸린다. 기업 간 협력 생태계를 갖추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반도체가 그렇다. 기술 경쟁이 극한까지 가 있다. 한쪽 기술만으로는 성공을 못 한다”며 “고객이 어떤 공정으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면, 어떤 소재로 할지 장비는 뭐로 할지 등을 처음부터 논의해야 하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실제 한국머크는 한 대기업 연구소의 근무 스케줄에 맞춰 자사의 근무 일정을 조정할 정도로 한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머크가 한국에 지속 투자하는 것은 2021년부터 추진해 온 현지 공급 기반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현지에 최대한 많은 자체 원료 및 재고 등을 갖추고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많은 기업이 중국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 미중 갈등이 터졌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변수가 생겨도 한국 사업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생태계가 없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 자체의 공급망 시스템이 약한 부분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유럽 등에서는 디리스킹(중국 의존도를 줄여 위험을 완화하는 것)이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은 광물이나 자원, 소재 등의 많은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한국 정부는 흑연·요소·리튬 등 185개 공급망 핵심 품목의 특정국 의존도를 평균 70%에서 50% 아래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까지 머크가 발표한 국내 투자액 6억 유로 가운데 절반 정도가 집행됐다. 김 대표는 “한국에 배정된 6억 유로 외에도 투자를 계속 늘릴 것”이라며 “특히 인공지능(AI) 수요 증가에 따라 반도체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에 투자를 더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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