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강국 한국의 해외진출史, 이곳에서 시작됐다[황재성의 황금알]

황재성 기자

입력 2024-02-24 08:00 수정 2024-02-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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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내 해외 건설 누적 수주 1조 달러 금자탑 확실
2: 1965년 태국에서 첫 수주 후 59년 만의 쾌거
3: 올해 목표 400억 달러…1월 실적 호조에 청신호
4: ‘제 2중동 붐’ 대신 해외 도시 개발 사업 적극 추진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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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1월 현대건설이 태국에서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수주하면서 시작된 국내 해외건설이 올해 4분기에 누적수주액 1조 달러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진은 태국 방콕의 중심가 가운데 하나인 스쿰빗 지역 전경. 방콕=황재성 jsonhng@donga.com
최근 태국 방콕을 4박 5일 일정(16~20일)으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태국은 국내 해외 건설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나라입니다. 현대건설이 1965년 11월 태국 정부가 발주한 고속도로 건설 공사를 수주하면서 해외건설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출장 취재 목표는 다른 분야였지만 태국에 머무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올 4분기(10~12월)에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 1조 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세운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조 달러의 금자탑의 첫 주춧돌이 놓여진 곳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감회가 남달랐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최근 정부가 해외건설 수주 전략의 변화를 예고하는 의미 있는 발표를 내놓은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원팀코리아 타운홀 미팅’(이하 ‘타운홀 미팅’)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모임은 해외건설의 고부가가치화와 연관 산업 동반 진출을 통해 해외건설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보도자료를 통해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 1조 달러 시대를 앞두고, 해외 도시개발사업 활성화를 첫 번째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최근까지도 ‘제 2의 중동 붐’을 내걸고 중동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해외 주택, 도시개발 사업으로 초점을 옮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날 모임을 직접 주재한 박상우 국토부 장관도 “해외도시개발 사업 진출 활성화를 위해 공공기관이 공동으로 진출하여 리스크를 낮추고, 적극적인 투자를 추진해 기업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해외도시개발 사업의 이정표를 만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해외 도시개발은 거대한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건설뿐만 아니라 기획과 설계, 건설자재 제작 및 배송, 도시 시설물 분배 및 운영 관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가 연관돼 있습니다.

현재 75억 명 수준인 세계 인구가 2050년까지 100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앞으로 26년 간 25억 명을 늘어난다는 것은 매주 광역도시급 도시 인구가 증가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관련 도시 기반 시설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도시 조성에 남다른 경험과 기술을 쌓은 한국으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부의 이러한 구상이 성공하기를 기대합니다. 최근 국내 건설시장의 침체가 우려 수준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2 중동 붐’에만 의존하기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나 예멘 후티 반군 등으로 중동지역의 정세가 불안해지고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출장길 자투리 시간을 쪼개 찾아낸 태국의 첫 해외건설공사 수주와 얽힌 여러 비화와 함께 올해 해외건설 수주 전망, 정부의 해외도시개발 활성화 전략의 성공 가능성 등을 정리하고 분석해 보겠습니다.


● 경부고속도로의 밑그림 되다
현대건설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현장은 고난의 역속이었다. 하지만 이 현장 경험을 토대로 현대건설은 해외건설 지장 진출의 토대를 닦았다. 또 도로 건설을 통해 쌓은 경험과 지식은 국내 경부고속도로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은 1973년 3월 현대건설의 타이 고속도로 방콕-팍토 건설현장에서 꼬마들이 뛰어 놀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건설 제공
역사적인 첫 해외건설공사 수주과정은 현대건설이 2017년 4월 사내신문에 게재한 창립 70주년 기획에 잘 담겨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첫 사업의 이름은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입니다. 태국 남단 말레이시아와 국경 부근에 위치한 두 도시, 파타니와 나라티왓을 연결하는 총연장 98km의 2차 고속도로를 짓는 것입니다. 공사기간은 1966년 1월 7일부터 1968년 3월까지였습니다.

당시 태국 정부 발주 공사는 차관(Credit)이나 원조 제공국(Aid Giving Country)의 건설업자들이 독과점 체제를 형성해 제3국 건설업자가 공사를 수주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현대건설은 앞선 2번의 입찰에서 고배를 마신 뒤 세 번째 도전에서 수주에 성공합니다.

이 사업은 태국 건설성 도로국에서 발주한 것으로 국제 경쟁입찰에 부쳐졌던 것인데, 현대건설은 독일(당시 서독)·일본 등 16개국 29개 업체와 경쟁했습니다. 당시 경쟁국들이 써낸 입찰 금액은 700만 달러대 수준. 반면 현대건설은 522만 달러를 써내 공사를 따냅니다.

지금은 해외공사를 수주한 국내 건설사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국가적인 경사여서 태국 파견 기술진과 노무자들이 김포공항을 출발하는 모습을 KBS가 실황 중계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국가적인 사업으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공사를 따낸 이후 현대건설은 끔찍한 고난을 겪게 됩니다. 고속도로 공사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데다 국제 규격의 시방서대로 공사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야 했던 것입니다. 최신 장비를 다른 나라에 구입해 보았지만 기능공들이 사용법을 몰라 두 달도 못가 고장을 내기 일쑤였습니다.

현지의 날씨도 공사의 장애물이었습니다. 태국은 비가 많은 나라여서 모래와 자갈이 항상 젖어있어 그대로 섞을 경우 함수량이 맞지 않아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건조기에 자갈을 넣고 말리려고 했으나 건조기 자체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지켜보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당시 사장)이 “건조기에 비싼 기름 때 가면서 말릴 게 뭐 있느냐, 골재를 직접 철판에 놓고 구워라”라고 지시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건조기 사용 때보다 생산능률이 2~3배 높아졌고, 구워진 자재가 도로 구석구석에 깔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파타니 나타티왓 도로는 한동안 ‘골재를 철판에 구워 닦은 고속도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대건설은 이 사업에서 수익을 내는 데 실패합니다. 사업비가 많이 투입돼 수주금액의 절반이 넘는 300만 달러가 넘는 적자를 낸 것입니다.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현대건설은 정해진 기간에 건설공사를 완료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된 태국 정부는 이후 적잖은 공사를 현대건설에 맡깁니다. 1965년부터 약 10년간 6건의 고속도로 공사와 1건의 매립 공사가 주어진 겁니다. 이를 통해 익힌 시공기술로 현대건설은 1970년대 중동 건설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자평합니다.

한편 태국 공사가 준공을 5개월 정도 앞둔 1967년 10월, 정 명예회장은 태국 현장 기술진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입니다. 이어 그들에게 태국 사업의 경험을 살려 경부고속도로의 사업예산과 최적 구간에 대한 견적을 내라는 특명을 내립니다.

견적 과정에는 현대건설 이외에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와 철도청(현 국가철도공단+KTX)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건설부는 500억 원, 철도청은 680억 원, 현대건설은 420억 원을 각각 사업비로 써냈고, 결국 현대건설 안이 채택됩니다.

한국도로공사가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책자(‘기적의 50년, 희망의 100년’)에 따르면 1968년 2월 1일 착공해 1970년 7월 7일 준공한 경부고속도로에 투입된 사업비는 모두 429억 원으로 현대건설의 견적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부내용을 보면 공사비로 384억 원, 용지보상비로 20억 원, 부대비로 25억 원이 각각 투입됐습니다.


● 올 4분기 1조 달러 가능성
정부는 해외건설 1조 달러 시대를 앞두고, 해외 도시개발사업 활성화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사진은 대우건설이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서호(West Lake) 인근에 조성 중인 복합신도시 ‘스타레이크’의 전경이다. 앞으로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해외 도시개발사업의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우건설 제공
국내 해외건설 수주액은 1966년부터 집계됐습니다.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첫해의 실적은 110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이후 1972년(8315만 달러)까지도 1억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하던 수주액은 1973년(1억 7426만 달러)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1976년(23억 달러)에 두 자릿수로 올라서고, 1981년(136억 달러)부터 1983년(101억 달러)까지는 100억 달러 고지도 넘습니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해외건설은 1984년부터 1992년까지 50억 달러 밑으로 쪼그라듭니다. 국제 유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국내업체들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중동 경제가 불황에 빠진 게 결정타였습니다. 국내 해외건설사에서 ‘침체기’로 부르는 시기입니다.

이후 1993부터 다시 도약하기 시작한 해외건설은 1996년(108억 달러)과 1997년(140억 달러)에 다시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가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41억 달러)부터 2004년(75억 달러)까지 잠시 주춤합니다.

2005년(109억 달러)부터 100억 달러를 넘어선 이래 지난해(333억 달러)까지 19년 연속 100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주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7년(398억 달러) 이후에는 2016년(282억 달러) 2017년(290억 달러) 2019년(223억 달러) 등 3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300억 달러 이상 수주하는 놀라운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누적수주액은 9638억 달러에 달합니다. 정부는 올해 수주목표를 400억 달러로 책정했습니다. 정부가 올 4분기에 1조 달러 달성이라는 금자탑을 확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400억 달러의 수주 목표액을 부문별로 보면 달성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해외건설협회가 16일 타운홀미팅에서 발표한 자료(‘2024년 해외건설 수주전망’)에 따르면 ▲수주가 확실 시 되는 물량 115억 달러 ▲입찰이 진행 중이며 수주 가능성 높은 물량 175억 달러 ▲계약변경(증액) 물량 50억 달러 ▲사업다각화(원전, 신재생, 투자개발 등) 물량 60억 달러입니다.

올 1월 수주 상황을 보면 이같은 계획에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14억 70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6억 6000만 달러)과 비교해 223% 늘었습니다. 지역별로는 중동(6억 4000만 달러)과 유럽(3억 1000만 달러), 아시아(3억 달러)의 순입니다.

다만 시장 상황은 유동적입니다. 해외건설협회는 이를 ‘성장 요인과 저해 요인이 혼재’하는 상황으로 정리했습니다.

목표 달성을 기대하게 하는 성장 요인은 3가지입니다. 우선 2024년 세계건설시장이 지난해(13조 8000억 달러) 대비 약 4.4% 성장한 14조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 번째는 고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주요 산유국 재정 여건이 개선돼 대규모 시설투자나 인프라 발주 확대가 기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원전(SMR), 액화천연가스(LNG), 수소플랜트, 신재생에너지 등 해외건설 신사업 수주 역량 강화입니다.

저해 요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고금리, 고물가, 물류망 위기 등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지역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의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투자 감소 우려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내 건설시장 및 금융권의 유동성 위기로 인한 우리 기업들의 수주 활동 위축 가능성입니다.


● 새로운 돌파구, 스마트 도시 수출
국토교통부는 16일 서울 동대문구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원팀 코리아 타운홀 미팅’에서 해외 도시개발사업 진출의 성공 사례 창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사진은 박상우 장관(사진 맨 오늘쪽)이 참석자들에게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 제공
정부는 이런 변수들을 고려할 때 400억 달러 수주목표 달성을 위해선 기존과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해외 도시개발 사업 활성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핵심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후방지원을 맡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가 선도적으로 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관련 산업 전체를 묶어 동반 진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우선 해외 도시개발사업의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우리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스마트시티 서비스 분야를 선제적으로 메뉴화하기로 했습니다. 또 전략적으로 접근할 국가와 사업을 선정하고, 종합지원 모델을 개발할 방침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떠안게 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직접 사업에 참여해 패키지형 진출을 주도하기로 했습니다. 사업의 공공 디벨로퍼로서 사업 발굴과 사업화 지원, 투자 지원, 사업정리과정 지원 등에 이르는 전체 단계에서 민간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공적개발원조(ODA)나 ‘K-City Network’ 등 정부가 활용 가능한 수단을 이용해 도시 개발사업의 진출 기반을 마련해주는 한편 수주지원단 파견, 진출 희망국 내 네트워킹 지원 등과 같은 역할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16일 열린 타운홀미팅의 진행자로 나섰던 박 장관의 발언들은 이러한 정부 계획의 향후 방향을 시사하고 있어 관심을 가져볼 만합니다.

박 장관은 우선 “언제까지 발주기관 입찰에 참여해 우리 기업끼리 경쟁하면서 수주하는 방식을 가져갈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공사비만 따먹는) 도급공사 위주의 수주에서 벗어나 투자개발형(PPP) 사업으로의 전환과 해외 도시개발 사업 수주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해외 도시개발 수요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UN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가 일주일에 140만∼150만 명씩 늘어나는 것은 울산·광주 같은 도시가 일주일에 하나씩 필요하다는 뜻이기에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박 장관은 또 “우리나라가 스마트시티를 잘하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고, 개발도상국들이 인구를 담기 위해 스마트시티에 대한 욕구가 많이 있다”며 “이를 주력으로 앞으로 해외 진출 프레임을 바꾸자는 것이 저의 제안”이라고 밝혔습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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