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막히지?” 손실혐오현상이 고속道 반칙운전 부추겨
동아일보
입력 2013-08-02 03:00 수정 2013-08-02 07:44
운전자들이 자신이 주행하는 차로보다 옆 차로가 더 빠르다고 느끼는 이유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손실 혐오 현상’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교통정체 상황에서는 차로를 막론하고 속도에 큰 차이가 없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많을 때 차로를 바꾸면 항상 원래 달리던 차로가 더 잘 빠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요. 분명히 옆 차로가 더 잘 빠지는 것 같아서 옮겼는데 말이죠.”이번 주말 부산 해운대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계획인 직장인 백종현 씨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속도로 차량 정체 때문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목적지까지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막히는 도로에서는 백 씨처럼 차로를 수시로 바꾸면서 운전한다. 하지만 다양한 연구 결과를 보면 차량 정체 때는 차로를 바꿔가며 운전하는 것과 한 차로만 지키는 것의 소요시간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차로를 버릇처럼 바꾸는 이유는 뭘까.
○ 차로 변경은 손해에 민감한 심리 때문
캐나다 토론토대 도널드 레델마이어 교수와 미국 스탠퍼드대 로버트 팁시라니 교수는 1999년 교통 정체가 심한 2차로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영상을 찍어 분석했다.
관찰 결과 운전자들은 본인이 다른 차량을 추월한 것보다 옆 차로 운전자에게 추월당한 횟수가 더 많다고 인식했다. 또 운전자들은 정체된 도로에서 자신이 운행 중인 차로의 차들보다 옆 차로의 차들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운전자 자신이 추월한 차량은 시야에서 금방 사라지지만 자신을 추월해 앞서 간 차량은 시야에 오래 남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것”이라며 “다른 차를 추월할 때는 속도가 빨라 금방 지나가지만 추월당할 때는 자신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보여 운행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심리학자들은 운전자들의 이 같은 행동이 ‘손실 혐오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얻은 이익보다 손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말이다.
○ 잦은 차로 변경이 도로 정체 심화
이런 운전자들의 잦은 차로 변경은 전체 교통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전문가들은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차로를 자주 바꾸면 뒤따르는 차들의 속도에도 미세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쳐 특별한 원인 없이 도로가 막히는 ‘유령체증’ 현상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도로 정체를 더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1차로를 달리던 차량 A가 2차로로 차로를 바꾸면 2차로 뒤에서 달려오던 차량 B는 이를 보고 속도를 줄인다. 차량 B를 뒤따르던 차량 C도 마찬가지로 속도를 줄이게 된다.
동시에 차량 C가 재빨리 1차로로 차로를 바꾸면 1차로를 달리던 또 다른 차량 D 역시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차로 변경과 감속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서서히 교통 체증이 생기고, 도로 정체가 심해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캐나다 앨버타대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공동연구진은 이러한 유령체증 원리가 물체가 폭발할 때 입자가 연쇄적으로 퍼지는 파동 방정식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교통 체증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도로교통연구원 교통연구실 이승준 박사는 “동시에 많은 차들을 통과시킬 수 있는 능력이 고속도로의 서비스라고 본다면 이 서비스의 질을 결정짓는 건 온전히 운전자들의 몫”이라며 “잦은 차로 변경은 고속도로라는 서비스의 질을 낮추고 사고의 위험성까지 높이는 만큼 여름휴가철처럼 교통 체증이 심할 때일수록 가급적 자신의 차로를 지키면서 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전준범 동아사이언스 기자 bbe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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