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짜미’ 감리-전문인력 부족… 부실아파트 키웠다

최동수 기자 , 이축복 기자 , 오승준 기자

입력 2023-08-02 03:00 수정 2023-08-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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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부실공사]
작년 건축구조기술사 1204명 그쳐
“감리과정 문제 있어도 넘어가”
LH 3급이상 고위직 퇴직자 절반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퇴직하고 건축 설계회사에 재취업한 A 씨. 2020년 5월 LH가 공고한 아파트 설계 공모에 그가 재취업한 회사가 선정됐다. 그는 설계 심사를 앞두고 심사위원 명단이 공개되자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설계안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LH는 이 사실을 알고도 A 씨 회사에 경고만 하고 별다른 불이익을 주지 않은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은 “LH가 일감을 몰아준다는 불신을 키우는 조치”라고 했다.

LH가 발주한 아파트 단지 15곳에서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사태가 벌어지면서 한국 건설산업 전반에 총체적인 부실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전관예우와 불법 하도급 등 이권 카르텔, 전문인력 부족 등으로 발주·설계·시공·감리 등 건설시스템 전반이 무너진 가운데 주택경기 활황으로 아파트 건설이 급증하자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1일 국토교통부는 전관예우, 불법 하도급 문제, 발주·설계·시공·감리 등의 봐주기식 감독과 공사, 건설노조 불법 행위 등을 이권 카르텔로 규정하고 집중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이권 카르텔 중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건 LH 등 공공기관 임원들의 전관예우 문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이번에 철근 누락이 된 15개 단지 중 13곳의 설계회사가 LH 퇴직자들이 현재 근무 중이거나 고위급 임원을 지낸 전관 업체였다. 감사원이 2016년 1월부터 2021년 3월 사이 LH에서 3급 이상(차장급)으로 퇴직한 604명을 대상으로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 실태’를 감사한 결과 LH와의 계약 실적이 있는 회사에 재취업한 사람이 304명에 달했다. LH 퇴직자 절반(50.3%)이 LH가 발주한 설계, 감리회사에 몸담으면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다.

불법 하도급 관행도 이권 카르텔 문제로 지적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국토부가 지난달 21일까지 60일간 292개 건설 현장을 단속한 결과, 37%에 해당하는 108개 현장에서 183건의 불법 하도급이 적발됐다. 국토부는 이달 31일까지 불법 하도급 합동단속을 진행한다.

이번에 보강 철근이 빠진 15개 LH 단지명이 발표되며 입주자나 입주 예정자의 불안이 커지자 LH는 입주 전인 7개 단지에 대해 계약 해지 및 계약금 환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파주 운정 A34(초롱꽃마을 3단지) 추가 입주 예정자에 대해서는 계약을 연기하고 선납 계약금을 환불하기로 했다.


부동산 활황기에 공사 급증… 발주처-시공사 전문성도 떨어져



건설시스템 총체적 부실
서울의 한 자치구는 건축구조 검토부터 감리에 이르는 건축구조기술사 2명을 채용해야 하는데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15차례에 걸쳐 채용 공고를 낸 끝에 최근에서야 1명을 뽑았고, 나머지 1명은 여전히 못 구하고 있다. 담당 공무원은 “서울이 이런데 지방은 인력난이 더 심할 것”이라고 했다.

건설업계는 최근 아파트 부실 공사 문제가 늘어나는 것은 최근 5, 6년 사이 아파트 공사는 늘어났는데 이를 뒷받침할 전문 인력이나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 2010년대 건설경기 침체 시기에 건설인력 고령화, 인력 부족 문제가 누적된 채 2017년경부터 부동산 활황에 힘입어 아파트 건설이 급증하며 수요도 급증했다는 것.

특히 최근 시공 사례가 많아진 무량판 구조의 경우 설계 단계에서부터 무게를 제대로 버틸 수 있는지 구조 안전성을 면밀히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을 하는 건축구조기술사는 지난해 기준 1204명에 그친다. 설계를 총괄하는 건축사 사무소가 1만5000개에 이르는 것에 비해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시공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살피는 감리가 업계 관행에 따라 ‘봐주기식’으로 이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철근콘크리트업체 임원 이모 씨(65)는 “감리가 도면도 없이 육안으로만 철근 위치 등을 점검하고, 콘크리트 타설을 앞두고 있으면 예정보다 빨리 검측을 마치는 일이 현장에서 관행처럼 일어난다”고 했다. 중견 건설사에서 안전담당 임원을 지냈던 업계 관계자는 “감리 과정에서 우리끼리 ‘으쌰으쌰’ 하면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분위기가 있다”며 “감리역량을 키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철근콘크리트업체 관계자는 “현장에서 감리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고 문제가 있어도 문제 제기를 안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발주처와 시공사의 전문성도 떨어진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해외 사업을 줄이면서 해외 플랜트를 담당하던 직원이 국내 아파트 현장에 대거 파견됐다”며 “주택 업무 경험이 부족하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LH 관계자는 “설계 도면 등이 제대로 됐는지 관리·감독할 수 있는 내부 전문가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불법 하도급이나 전관예우 모두 부실 공사의 원인이지만 오랜 시간 근절되지 못한 문제”라며 “국민 안전과 직결된 만큼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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