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없이 제품생산 ‘에이블루’… 미국판 창조혁신센터 ‘테드코’
김성규 기자 , 이승헌 특파원
입력 2015-05-13 03:00 수정 2015-05-13 07:56
[한-미 창조경제 두 현장]공장없는 제조업 키운다
애플-나이키처럼 ‘無공장 제조’… 아이디어 하나로 年 15억 매출
아웃소싱 자문 - 제조사 연결 지원… 정부 ‘無공장’ 활성화 팔걷고 나서
전 세계적인 고용환경 악화 속에서 창업 과정의 단순화로 이른바 ‘창업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대규모 제조시설이 없어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제품을 만들고 창업할 수 있는 기회도 점차 늘고 있다. 본보가 걸음마를 뗀 국내의 공장 없는 제조기업과 한국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원조 격인 미국 메릴랜드 주 ‘테드코(TEDCO)’를 찾아 창조경제의 길을 모색했다. 》
7일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내의 창업보육센터. 이곳의 66m² 남짓한 공간에 여러 개의 전기제품을 하나에 꽂아 쓸 수 있는 박스형 멀티탭 상품인 ‘박스탭(boxtap)’을 만드는 에이블루가 입주해 있다.
여러 장의 특허증이 붙은 벽면 옆의 화이트보드에는 판매처와의 협의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곳 직원들은 마치 대학 연구실처럼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생산 및 판매 등 경영 전반을 체크한다. 제조설비가 전혀 없지만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이 업체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무공장 제조업체’다.
지난해부터 외부에서 제품을 양산해 약 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 15억 원을 예상하는 에이블루는 중국 진출을 앞두고 중국 현지 공장의 생산도 검토하고 있다.
○ 첫걸음 뗀 국내의 ‘무공장 제조업’
회사를 창업한 이명욱 에이블루 대표(38)는 쉽게 엉키고 꼬이는 콘센트 전선을 깔끔하게 정리해줄 상품 아이디어만을 갖고 2012년 5월 창업에 뛰어들었다. 알음알음 지인들을 수소문해 아이디어를 제품화해줄 공장을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찾아간 공장들은 일단 단가를 높게 부르는 데다 자신들이 원래 만드는 제품을 다 만들고 남는 시간에 우리 제품을 만들다 보니 처음에는 원하는 품질의 70%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업체 상당수가 여전히 아이디어가 있어도 마땅한 제조 공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같은 상품기획업체가 믿을 수 있는 생산업체(공장)를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제조업 혁신 위해 지원 나선 정부
최근 정부도 이 같은 창업 추세를 반영해 무공장 제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12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2015년도 공장 없는 제조기업 성장 지원 사업’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중소기업 중 생산 분야의 아웃소싱 자문을 하려는 기업에 조언과 소요비용을 지원하고 제조기업과의 연결도 주선할 계획이다. 다만 생산 지역은 국내로 국한된다.
중소기업청도 지난달 21일 ‘무공장 제조기업 지원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정부 조달 사업에 참여할 때 필요한 ‘직접 생산 증명제도’를 완화하기로 했다. 당초 이 제도는 중소기업들이 스스로 제품을 생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싼값에 물건을 들여와 유통만 하는 기업이 정부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미국에서는 공장 없는 제조기업이 이미 산업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애플 나이키 다이슨 등은 외부에 생산을 맡기고 아이디어와 디자인 역량만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 중 제조업체 수는 2002년 239개에서 225개로 줄었지만 공장 없는 제조업체는 67개에서 105개로 크게 늘었다.
제조역량이 뛰어난 공장을 찾는 벤처기업가가 늘다 보니 미국에서는 2012년 벤처기업과 우수 제조기업을 연결해 주는 매칭사이트(메이커스 로·Maker’s row)도 생겨났다. 이곳에는 생활잡화 가구 액세서리 등 5000여 개 제조공장이 등록돼 있어 의뢰인이 원하는 공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무공장 제조업체들이 성장하면서 국내보다 해외 생산을 늘리면 국내 제조업체들의 일감이 없어지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가 무공장 제조업 지원 방안을 마련하면서 아웃소싱 지역을 국내로 제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필재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지만 변화하는 산업 추세를 반영해 제조업이 진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 “30분내 창업 투자자 설득하라”… 금융-기술 전문가가 송곳 검증 ▼
대기업-선배 中企들이 멘토 자청
작년 300곳 창업… 5억달러 매출
6일 미국 메릴랜드 주 소도시인 컬럼비아 시내 간판도 없는 한 적갈색 건물 2층 회의실. 연단에 선 30대 초반의 한 기업인이 진땀을 흘려가며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자 앉아있는 사람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메릴랜드 주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만든 비영리기관 테드코(TEDCO·Technology Development Corporation)’에서 열린 투자 결정을 위한 최종 면접 모습이다. 1998년 설립된 테드코는 지난해에만 약 300개 중소기업의 창업과 시장 개척을 도와 5억6500만 달러(약 6190억 원)의 매출을 올리게 한 미국판 ‘창조경제혁신센터’이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다른 주에서도 이곳 노하우를 서로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벤처기업의 요람으로 불린다.
사무실 곳곳에는 ‘START UP(창업)→FUNDING(투자)→NETWORKING(네트워킹)’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풀라 거셀 커뮤니케이션실장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철저히 검증하고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소개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비법은 크게 3가지였다.
○ 투자 전에 철저한 검증부터
테드코는 약 3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곳이 운영하는 15개 창업지원 프로그램 중 가장 지원 규모가 큰 ‘기술 상업화 펀드’의 경우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경영학 석사(MBA) 출신의 헨리 안 총괄실장을 주축으로 각 분야 6명의 전문가가 검증과 투자 결정을 맡는다. 매달 초 투자 지원 신청을 받으면 자격 심사→서류 심사 및 사업 현장 방문→평판 조회 등을 거쳐 최종 면접을 통해 투자를 결정한다. 최종 면접 시간은 총 30분이지만 사업 모델의 타당성, 투자금 환수 계획 등에 대해 속사포 같은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다. 안 실장은 “투자자인 우리를 설득하지 못하는데 소비자를 어떻게 설득하겠느냐”고 했다.
투자 후 이뤄지는 평가도 치밀하다. 기업들은 분기별 매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투자 후 직원 임금 체계 변화. 세금 납부 실적까지 내야 한다.
○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어주는 기능이 핵심
테드코는 투자를 결정한 중소기업에 대해선 대기업의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E2E(Entrepreneur to Entrepreneur)’ 역할에 집중한다. 2011년부터 매년 말 혁신기업과 대기업을 이어주는 ‘E2E 엑스포’를 개최하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엑스포에선 ‘존슨앤드존슨’ 등 세계적 대기업 관계자와 ‘선배 혁신 중소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미래 혁신기업들의 멘토를 자청했다. 금융인 출신인 롭 로젠바움 이사장은 “엑스포에선 대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하우를 전수한다”고 말했다.
올해 2월 테드코의 주요 결정을 담당하는 13명의 이사 중 한국계로는 유일하게 선임된 매슈 리(한국명 이경석) ‘FASTECH’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정부가 강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대기업은 정보와 사업 활로를 제공하고 중소기업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급해야 ‘혁신 생태계’가 조성된다”고 말했다.
○ 단기 성과 집착 말고 중장기적으로 투자
‘오큘리스’라는 보안업체는 눈동자 움직임으로 신분을 확인하는 원천 기술이 있었지만 상용화엔 연거푸 실패했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테드코는 10만 달러(약 1억1000만 원)의 초기 투자를 결정했다. 이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한동안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투자 결정 책임을 묻지 않는 테드코 특유의 문화에 따른 것. 그후 오큘리스는 ‘카멜레온’이라는 신분인식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로젠바움 이사장은 “이익이 나지 않아도 기다릴 줄 알아야 애플이나 구글 같은 혁신 기업을 키울 수 있다. 거창한 이벤트를 몇 번 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안산=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컬럼비아(메릴랜드)=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애플-나이키처럼 ‘無공장 제조’… 아이디어 하나로 年 15억 매출
아웃소싱 자문 - 제조사 연결 지원… 정부 ‘無공장’ 활성화 팔걷고 나서
경기 안산시 상록구 한양대학로에 있는 무공장 제조업체 ‘에이블루’ 사무실에서 이명욱 대표가 이 회사의 전선 정리 제품인 ‘박스탭’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안산=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정부가 세계적으로 제조업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공장 없는(무공장) 제조기업’ 지원에 나섰다. 공장 없는 제조기업이란 애플이나
나이키, 다이슨처럼 본사에서는 제품의 기획과 설계 등 지식재산권 관련 역량에 집중하고 부품이나 완제품 조립은 외부 생산시설에
아웃소싱하는 기업을 말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철저한 검증과 중장기적 지원이 어우러져 이런 산업 형태가 벤처 성공의
원동력으로 꼽히기도 한다. 시장 수요에 맞춰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재빨리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고용환경 악화 속에서 창업 과정의 단순화로 이른바 ‘창업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대규모 제조시설이 없어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제품을 만들고 창업할 수 있는 기회도 점차 늘고 있다. 본보가 걸음마를 뗀 국내의 공장 없는 제조기업과 한국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원조 격인 미국 메릴랜드 주 ‘테드코(TEDCO)’를 찾아 창조경제의 길을 모색했다. 》
7일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내의 창업보육센터. 이곳의 66m² 남짓한 공간에 여러 개의 전기제품을 하나에 꽂아 쓸 수 있는 박스형 멀티탭 상품인 ‘박스탭(boxtap)’을 만드는 에이블루가 입주해 있다.
여러 장의 특허증이 붙은 벽면 옆의 화이트보드에는 판매처와의 협의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곳 직원들은 마치 대학 연구실처럼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생산 및 판매 등 경영 전반을 체크한다. 제조설비가 전혀 없지만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이 업체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무공장 제조업체’다.
지난해부터 외부에서 제품을 양산해 약 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 15억 원을 예상하는 에이블루는 중국 진출을 앞두고 중국 현지 공장의 생산도 검토하고 있다.
○ 첫걸음 뗀 국내의 ‘무공장 제조업’
회사를 창업한 이명욱 에이블루 대표(38)는 쉽게 엉키고 꼬이는 콘센트 전선을 깔끔하게 정리해줄 상품 아이디어만을 갖고 2012년 5월 창업에 뛰어들었다. 알음알음 지인들을 수소문해 아이디어를 제품화해줄 공장을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찾아간 공장들은 일단 단가를 높게 부르는 데다 자신들이 원래 만드는 제품을 다 만들고 남는 시간에 우리 제품을 만들다 보니 처음에는 원하는 품질의 70%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업체 상당수가 여전히 아이디어가 있어도 마땅한 제조 공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같은 상품기획업체가 믿을 수 있는 생산업체(공장)를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제조업 혁신 위해 지원 나선 정부
최근 정부도 이 같은 창업 추세를 반영해 무공장 제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12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2015년도 공장 없는 제조기업 성장 지원 사업’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중소기업 중 생산 분야의 아웃소싱 자문을 하려는 기업에 조언과 소요비용을 지원하고 제조기업과의 연결도 주선할 계획이다. 다만 생산 지역은 국내로 국한된다.
중소기업청도 지난달 21일 ‘무공장 제조기업 지원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정부 조달 사업에 참여할 때 필요한 ‘직접 생산 증명제도’를 완화하기로 했다. 당초 이 제도는 중소기업들이 스스로 제품을 생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싼값에 물건을 들여와 유통만 하는 기업이 정부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미국에서는 공장 없는 제조기업이 이미 산업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애플 나이키 다이슨 등은 외부에 생산을 맡기고 아이디어와 디자인 역량만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 중 제조업체 수는 2002년 239개에서 225개로 줄었지만 공장 없는 제조업체는 67개에서 105개로 크게 늘었다.
제조역량이 뛰어난 공장을 찾는 벤처기업가가 늘다 보니 미국에서는 2012년 벤처기업과 우수 제조기업을 연결해 주는 매칭사이트(메이커스 로·Maker’s row)도 생겨났다. 이곳에는 생활잡화 가구 액세서리 등 5000여 개 제조공장이 등록돼 있어 의뢰인이 원하는 공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무공장 제조업체들이 성장하면서 국내보다 해외 생산을 늘리면 국내 제조업체들의 일감이 없어지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가 무공장 제조업 지원 방안을 마련하면서 아웃소싱 지역을 국내로 제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필재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지만 변화하는 산업 추세를 반영해 제조업이 진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 “30분내 창업 투자자 설득하라”… 금융-기술 전문가가 송곳 검증 ▼
대기업-선배 中企들이 멘토 자청
작년 300곳 창업… 5억달러 매출
최근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한 호텔에서 열린 테드코 엑스포에서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가운데)가 한 중소기업이 제출한 제품 아이디어 모형을 들여다보고 있다. TEDCO 제공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업체들과는 어떻게 차별화를 할 겁니까?”6일 미국 메릴랜드 주 소도시인 컬럼비아 시내 간판도 없는 한 적갈색 건물 2층 회의실. 연단에 선 30대 초반의 한 기업인이 진땀을 흘려가며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자 앉아있는 사람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메릴랜드 주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만든 비영리기관 테드코(TEDCO·Technology Development Corporation)’에서 열린 투자 결정을 위한 최종 면접 모습이다. 1998년 설립된 테드코는 지난해에만 약 300개 중소기업의 창업과 시장 개척을 도와 5억6500만 달러(약 6190억 원)의 매출을 올리게 한 미국판 ‘창조경제혁신센터’이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다른 주에서도 이곳 노하우를 서로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벤처기업의 요람으로 불린다.
사무실 곳곳에는 ‘START UP(창업)→FUNDING(투자)→NETWORKING(네트워킹)’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풀라 거셀 커뮤니케이션실장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철저히 검증하고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소개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비법은 크게 3가지였다.
○ 투자 전에 철저한 검증부터
테드코는 약 3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곳이 운영하는 15개 창업지원 프로그램 중 가장 지원 규모가 큰 ‘기술 상업화 펀드’의 경우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경영학 석사(MBA) 출신의 헨리 안 총괄실장을 주축으로 각 분야 6명의 전문가가 검증과 투자 결정을 맡는다. 매달 초 투자 지원 신청을 받으면 자격 심사→서류 심사 및 사업 현장 방문→평판 조회 등을 거쳐 최종 면접을 통해 투자를 결정한다. 최종 면접 시간은 총 30분이지만 사업 모델의 타당성, 투자금 환수 계획 등에 대해 속사포 같은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다. 안 실장은 “투자자인 우리를 설득하지 못하는데 소비자를 어떻게 설득하겠느냐”고 했다.
투자 후 이뤄지는 평가도 치밀하다. 기업들은 분기별 매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투자 후 직원 임금 체계 변화. 세금 납부 실적까지 내야 한다.
○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어주는 기능이 핵심
테드코는 투자를 결정한 중소기업에 대해선 대기업의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E2E(Entrepreneur to Entrepreneur)’ 역할에 집중한다. 2011년부터 매년 말 혁신기업과 대기업을 이어주는 ‘E2E 엑스포’를 개최하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엑스포에선 ‘존슨앤드존슨’ 등 세계적 대기업 관계자와 ‘선배 혁신 중소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미래 혁신기업들의 멘토를 자청했다. 금융인 출신인 롭 로젠바움 이사장은 “엑스포에선 대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하우를 전수한다”고 말했다.
올해 2월 테드코의 주요 결정을 담당하는 13명의 이사 중 한국계로는 유일하게 선임된 매슈 리(한국명 이경석) ‘FASTECH’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정부가 강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대기업은 정보와 사업 활로를 제공하고 중소기업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급해야 ‘혁신 생태계’가 조성된다”고 말했다.
○ 단기 성과 집착 말고 중장기적으로 투자
‘오큘리스’라는 보안업체는 눈동자 움직임으로 신분을 확인하는 원천 기술이 있었지만 상용화엔 연거푸 실패했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테드코는 10만 달러(약 1억1000만 원)의 초기 투자를 결정했다. 이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한동안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투자 결정 책임을 묻지 않는 테드코 특유의 문화에 따른 것. 그후 오큘리스는 ‘카멜레온’이라는 신분인식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로젠바움 이사장은 “이익이 나지 않아도 기다릴 줄 알아야 애플이나 구글 같은 혁신 기업을 키울 수 있다. 거창한 이벤트를 몇 번 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안산=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컬럼비아(메릴랜드)=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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