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집착은, 도파민 과잉 때문인가[의학으로 읽는 그림/안철우]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입력 2022-06-10 03:00 수정 2022-06-10 09:57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1888년.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그림을 보다 보면 저마다 감상에 젖어들게 된다. 그림을 둘러싼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도 싹튼다. 그림 속 인물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건지, 작가는 어떤 의도로 그림을 이렇게 표현했는지도 알고 싶어진다.
내분비내과 의사인 필자는 감각과 감정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통해 그림을 읽곤 한다. 초상화를 보면 인물이 겪었음 직한 호르몬 문제가 보이고, 독특한 화풍의 풍경화를 보면 작가가 앓았음 직한 호르몬 문제를 유추해 보는 식이다. 이색적인 감상법인 셈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해바라기’는 유독 노란색을 많이 사용했다. 해바라기뿐 아니라 테이블과 화병 모두 노란색 톤이다. 한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 같은 노란색이 아니다. 무려 23가지의 미세하게 다른 노란색들을 섞어 색감을 굉장히 정교하게 표현했다.
이 그림을 보면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떠오른다. 도파민은 호감에 발동을 거는 호르몬으로, 극적인 사랑에 빠지거나 격한 감동을 느낄 때 분비된다. 도파민은 ‘충동 호르몬’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면 지나친 호감이 충동적으로 격발되기 때문이다. 도파민으로 인해 과격해진 감정은 집착과 중독으로 이어지곤 한다. 도파민과 ‘해바라기’의 연관성은 무얼까.
고흐는 살면서 여러 가지에 중독적인 성향을 보였다. ‘압생트’라는 독주, 술, 담배, 노란색, 해바라기 등이 대표적이다. ‘해바라기’에는 이 중 해바라기와 노란색 두 가지가 등장한다. 고흐는 평소 집착했던 해바라기를 더 황홀하고 강력한 노랑으로 표현하기 위해 압생트를 들이켜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런 집착과 중독, 즉 도파민의 과잉 속에서 고흐는 ‘해바라기’란 명작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카드놀이 사기꾼’에서는 작품 속 인물들에서 도파민 과잉을 읽을 수 있다. 그림은 얼핏 보면 여럿이 카드놀이를 하는 평범한 장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표정을 자세히 살피면 이들의 눈짓과 동작이 매우 수상하다. 청년은 벨트 뒤에 숨겨둔 에이스 카드를 빼내고 있고, 여성들은 청년을 술에 취하게 할 궁리를 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도박에 집중하고, 이 과정에서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고 결국 더욱더 도박에 빠져든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도파민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몸에 부족할 경우 우울감과 파킨슨병 등을 부르며, 여러 정신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앞선 작품들에서는 이런 도파민의 균형이 깨진 화가, 작품 속 인물들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림을 그린 작가, 그림 속 인물,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까지 호르몬이 미치는 영향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이런 호르몬과 그 영향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감상해 보면 어떨까.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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