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변이 잡는 숙주표적 항바이러스제 ‘CP-COV03’

홍은심 기자

입력 2021-12-15 03:00 수정 2021-12-15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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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바이오
덱사메타손과 병용 효과 2.1배 ↑…알파-베타-델타 상대 효능 입증
“항바이러스 전쟁 게임체인저 기대”


지난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착수한 현대바이오는 CP-COV03를 개발했다. CP-COV03의 주성분인 니클로사마이드는 바이러스가 아닌 숙주세포에 작용하는 숙주표적 항바이러스제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에 영향을 받지 않고 효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게 현대 바이오의 설명이다. 오른쪽 사진은 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현대바이오사이언스 기자간담회 장면. 현대바이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증환자에 구충제로 사용되는 니클로사마이드 기반 항바이러스제와 항염증제인 덱사메타손을 병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실험 결과가 처음 공개됐다. 이로써 현재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코로나19 중증환자용 치료법이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탄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변이가 매우 심하며, 발열 기침 등 초기 증상이 독감과 유사해 증상만으로는 두 질환을 구별하기 어렵다. 이는 중증으로 가기 전 선제 대응이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코로나19로 유발된 폐렴에 항염증제인 덱사메타손을 처방한다. 항바이러스제로는 렘데시비르를 처방하고 있지만 효능에 확신이 없고 내성과 부작용의 우려가 높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코로나19의 핵심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마스터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CP-COV03, 덱사메타손과 병용에 효능 2.1배↑
현대바이오사이언스(대표 오상기)는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위탁해 코로나19 감염 햄스터를 대상으로 수행한 효력시험에서 코로나19 경구치료제 ‘CP-COV03’와 항염증제 ‘덱사메타손’을 경구제로 함께 투약한 치료 효과가 덱사메타손 단독보다 2.1배 높다고 발표했다. 덱사메타손과 항바이러스제 병용으로 코로나19 치료에서 시너지 효과를 확인한 실험 결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바이오는 실험 결과를 공개하고 의료계에 관련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인 덱사메타손은 코로나19 중증 환자용으로 처방되는 약물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확진됐을 때 렘데시비르와 함께 투약한 바 있다.

렘데시비르는 현재까지 코로나19 항바이러스제로 유일하게 허가된 약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치료 효능에 의문을 제기했고 예일대 연구 결과 약물내성으로 인한 코로나19 돌연변이가 보고된 바 있다.

현재 코로나19 중증 환자에게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는 사실상 전무해 의료현장에서는 유일하게 승인된 렘데시비르나 항염증제 덱사메타손 등 극소수 약물을 임시방편으로 처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세계 과학계는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면역 약화라는 부작용을 수반하는 덱사메타손과 최적의 조합을 이룰 항바이러스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6월 영국 옥스퍼드대의 마틴 랜드레이 교수는 “덱사메타손은 코로나19 중증 치료에 좋은 약이지만 사망 예방에 더욱 효과를 발휘하려면 항바이러스제와의 병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제네바대 연구진도 작년 10월 세계적 과학저널인 랜싯을 통해 “덱사메타손은 코로나19 치료에 필수적인 약이지만 코로나19 항바이러스제야말로 ‘마법의 탄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니클로사마이드 기반의 CP-COV03가 임상 단계에서 긴급사용 승인을 받으면 이 병용 요법은 의료현장에서 중증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바이오 연구소장 진근우 박사는 “스테로이드계 약물인 덱사메타손은 면역 약화라는 부작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약화한 면역 대신에 항바이러스 효능을 내줄 병용 치료제를 찾아야 한다”며 “덱사메타손과 병용할 수 있는 최적의 짝이 CP-COV03”라고 말했다.

변이 잡는 숙주표적 항바이러스제 CP-COV03
지난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착수한 현대바이오는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를 염두에 두고 CP-COV03를 개발했다. 변이가 심한 RNA바이러스가 촉발한 코로나19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 접근 방식이나 제약계의 관행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따라서 현대바이오는 기존 약물을 개량해 약효가 바이러스가 아닌 숙주세포에 작용하는 숙주 표적(host-directed) 항바이러스제를 경구제로 개발하기로 하고 니클로사마이드를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후 첨단 약물전달체(DDS) 기술로 CP-COV03를 개발했다.

CP-COV03의 주성분인 니클로사마이드는 바이러스를 표적 삼는 여러 주요 항바이러스제와 달리 숙주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기전을 갖고 있어 오미크론, 델타 등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항바이러스 효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게 현대바이오의 설명이다.

현대바이오 CTO(최고기술책임자)인 김경일 박사는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 중인 코로나19용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에 초점을 맞춘 바이러스 표적 기전이어서 바이러스의 변이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CP-COV03는 세포의 오토파지(자가포식)를 활성화해 세포로 침투한 바이러스를 제거하므로 변이와 관계없이 효능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유명 과학저널인 PLOS지는 2일 니클로사마이드가 알파에서 델타까지 코로나19의 각종 변이에도 강한 항바이러스 효능을 발휘한다는 덴마크의 유니온제약과 유럽 주요 대학 공동 연구진의 인간 세포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도 4월 니클로사마이드가 코로나19의 영국(알파), 남아공(베타) 변이 바이러스에 항바이러스 효능을 발휘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네반 크로건 교수는 작년 4월 사이언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숙주표적 항바이러스제는 내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작고 광범위한 치료에 쓰일 수 있다”며 “(그런 항바이러스제가 나오면) 코로나22든 24든 어떤 바이러스 질병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도 “CP-COV03는 숙주세포를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코로나19와 그 변종들을 치료할 수 있는 코로나19 계열의 범용 약물”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승리로 이끌 것”
현대바이오는 CP-COV03를 여러 바이러스 질환에 범용할 수 있는 ‘멀티 타깃’ 약물임을 단계적으로 입증해 21세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끄는 최고 항바이러스제로 등극시킨다는 계획이다. CP-COV03의 임상2상 단계에서 코로나19와 독감을 병행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도 이 약물의 범용성을 1차적으로 입증하겠다는 의미라고 현대바이오는 밝혔다. CP-COV03가 코로나19 치료용으로 임상1상을 마치면 독감용 임상은 1상을 거치지 않고 2상으로 직행한다.

CP-COV03가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사용 승인을 받으면 독감치료제로 별도 승인을 받기 전이라도 의료 현장에서 두 질환의 유사증상자에게 선제적 대응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코로나19와 독감의 동시대 유행에 따른 트윈데믹 우려는 물론이고 의료대란 해소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CP-COV03가 독감 임상을 마치면 니클로사마이드의 범용적 항바이러스 효능이 인체를 대상으로 세계 최초로 공식 입증되는 기록도 세우게 된다. 오상기 현대바이오 대표는 “CP-COV03는 숙주 표적 기전의 항바이러스제라 안전하면서도 다양한 바이러스 감염증에 효능이 있다”며 “21세기 바이러스 전쟁에서 코로나19 변이든 신종 바이러스든 모두 해결하는 게임체인저로 등극시키겠다”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 긴급사용 승인 목표
현대바이오는 CP-COV03의 임상1상을 마치는 대로 보건당국에 임상2상을 신청해 늦어도 내년 상반기 내에 CP-COV03의 2상을 종료하고 긴급사용 승인을 받아낸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관계기관과 임상2상 계획을 협의하는 등 2상 준비작업도 이미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바이오는 니클로사마이드의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9월 바그다드대 의대 등 이라크-카타르 연구진이 코로나19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임상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어 니클로사마이드 기반 CP-COV03의 임상 통과를 자신하고 있다.

이라크대 의대의 임상에서는 니클로사마이드를 투약한 실험군의 환자 입원 기간이 7일에서 5일로 줄었고 환자 치유율도 50%나 상승했다. 진 박사는 “니클로사마이드의 인체에 대한 효능은 바그다드대 임상에서 이미 입증됐지만 생체이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점이 여전히 숙제였다”며 “우리는 전달체 기술로 니클로사마이드의 생체 이용률을 최대 40배 이상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임상2상 통과를 자신한다”고 말했다.

현대바이오는 CP-COV03가 출시될 경우 누구나 경제적인 부담 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가격을 타미플루처럼 최대한 합리적으로 책정할 방침이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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