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축빌라 ‘깡통전세’ 조심… 4건 중 1건, 집값의 90% 넘어

정순구 기자

입력 2021-08-19 03:00 수정 2021-08-1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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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전세거래 2752건 전수조사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신축 A빌라. 이달 6월 중순 3층에 있는 전용면적 27m²짜리 빌라가 3억500만 원에 팔리며 같은 날 전세 계약까지 한꺼번에 이뤄졌다. 전세 보증금도 3억500만 원이었다. 빌라 매수자가 매수와 동시에 세를 놓은 것이다. 매수자는 취등록세와 중개수수료를 제외하면 자신의 돈은 거의 들이지 않았고, 세입자는 매매가와 같은 금액으로 전세를 살게 됐다.

이런 사례는 서울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도봉구 쌍문동의 신축 B빌라(전용면적 47m²·2층)는 최근 전세 계약과 매매 계약이 같은 날 이뤄졌다. 매매가와 전세금은 모두 3억2000만 원으로 같았다.

이들 모두 전세금이 매매가와 비슷한 이른바 ‘깡통전세’다. 올해 상반기(1∼6월) 서울 신축 빌라 전세 계약 4건 중 1건이 이 같은 ‘깡통전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집값이 하락하거나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버티면 세입자가 전세금을 떼일 위험이 있는 만큼 신중하게 거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부동산 플랫폼 다방의 운영사인 스테이션3가 18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준공된 서울 빌라(연립·다세대)의 상반기(1∼6월) 전세 거래 2752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반기 전체 전세 거래의 26.9%인 739건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90% 이상이었다. 심지어 전셋값이 매매가와 같거나 더 높은 경우도 19.8%(544건)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강서·도봉·금천구 등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지역의 깡통전세 비중이 컸다. 강서구는 올해 신축된 빌라에서 이뤄진 전세 거래 351건 중 290건(82.6%)이 깡통전세로 나타났다. 특히 화곡동에서 깡통전세 계약(252건)이 두드러졌다. 도봉구는 40건의 전세거래 중 전세가율 90% 이상인 사례가 22건(55%)이었고, 금천구는 121건 중 62건(51.2%)의 전세 계약이 위험한 수준이었다.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준공 후 분양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확한 매매가격을 알기 어려워 상대적으로 높은 보증금에 전세 계약을 맺는 세입자가 많은 상황이다. 아파트와 달리 면적이 다양하고 거래가 뜸해 중개업소 등이 주변 거래 사례를 들면서 전세가를 제시하면 이를 믿고 계약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축 빌라 깡통전세의 경우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집주인은 최소한의 금액으로 빌라를 매입했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야 한다. 이때 기존 전셋값이 지나치게 높았던 만큼 새 세입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면 세입자가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전세보증보험 가입 신청을 받을 때 매매가를 넘는 전세금은 보증해주지 않는다. 경매로 넘어가도 문제다. 대항력(전세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전세권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을 갖춘 세입자가 있으면 낙찰자가 보증금을 돌려줘야 해 여러 차례 유찰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는 어쩔 수 없이 직접 빌라 경매에 나서 빌라를 떠안거나 주변 시세가 오를 때까지 낙찰자가 나타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방 관계자는 “임대차법 시행에 따른 전세난의 여파로 신축 빌라를 중심으로 깡통주택이 늘고 있다”며 “집값이 하락하면 집주인의 담보대출 금액이 줄어들고, 빌라 거래 특성상 매매도 쉽지 않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세입자가 전세금을 떼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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