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특교]산업부 ‘에너지 차관’ 신설, ‘독이 든 성배’ 되나
세종=구특교 경제부 기자
입력 2021-07-01 03:00 수정 2021-07-01 03:00
세종=구특교·경제부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올라갔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리는 에너지정책 전담 차관을 두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전날 국회를 통과한 뒤에 고무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산업부는 국회의원들 덕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이어 3명의 차관급을 둔 ‘공룡 부처’로 커지게 됐다. 수소경제, 탄소중립 등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일도 맡게 됐으니 산업부 공무원들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있다.
벌써 신설 조직을 둘러싼 신경전도 시작됐다. 산업부는 에너지 차관 밑에 실 단위 조직을 신설하고 국장과 과장 등 인력 100여 명을 증원하길 원하는데 행정안전부는 “지금도 실장급 인원이 타 부처보다 많다”며 난색이다. 수소경제를 육성하는 ‘수소국’과 탄소중립 정책의 기반인 전력 분야를 담당하는 ‘전력국’ 등이 새로 생기고 국장 자리는 2곳, 과장 자리는 5곳 내외가 생길 것이라는 소문도 돈다.
산업부 안팎에서는 과거 사례를 볼 때 에너지 차관 신설이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에너지 관련 업무와 조직이 정권마다 부침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자원외교로 몸살을 앓았고, 현 정부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장관과 차관이 검찰 수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번 에너지 차관 신설도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급물살을 탔다. 당시 산업부는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와 관련해 담당 직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아 크게 위축돼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조직이 쭈그러든 산업부 달래기에 나선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탄소중립’이 세계적 흐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에너지 차관을 두고 조직을 늘리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에너지 정책만 밀어붙이다간 다음 정권에서 개혁의 심판대에 올라갈 수 있다. 산업부가 이왕 몸집을 불릴 거면 정책을 중립적으로 점검하고 균형감 있는 정책을 마련할 외부 전문가들을 대거 수혈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이유다.
산업부가 ‘반 박자 느린 대응’으로 비난을 받았던 차량용 반도체 수급 대란 때처럼 처신한다면 몸집만 크고 행동은 느린 ‘공룡 부처’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권 말에 차관 신설이라는 큰 상을 받은 산업부 공무원들은 ‘샴페인’을 따기 전에 불어난 몸집에 걸맞은 책임의 무게부터 느껴야 한다.
세종=구특교 경제부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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