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시작하는 드로잉, 자유가 춤춘다

손효림 기자

입력 2021-06-02 03:00:00 수정 2021-06-02 03: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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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현대미술관 등서 작품 소장
美 작가 엘리엇 헌들리 개인전
19일까지 백아트서울서 열려


자유롭게 유영하듯 선과 색이 일렁인다. 아이가 그린 듯 천진해 보이기도 한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휘트니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된 미국 유명 작가 엘리엇 헌들리(46)가 그린 드로잉은 한없는 자유분방함 그 자체로 눈길을 끈다.

서울 종로구 팔판길 백아트서울에서 19일까지 열리고 있는 헌들리의 개인전 ‘종이와 대화하면서’는 헌들리가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를 그린 드로잉 18점을 선보인다. 캔버스 콜라주 작품 2점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아시아 첫 전시다.

헌들리는 캔버스에 사진, 신문기사, 천 조각, 끈 등을 붙이고 핀을 꽂아 색칠하는 콜라주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다. 낮에는 캔버스 콜라주에 몰입하고 저녁에는 일기를 쓰듯 드로잉을 한다. 그는 드로잉을 할 때 눈을 감은 채 시작한다고 밝혔다. 기본 윤곽은 물론이고 작품의 크기조차 정하지 않고 그저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맡긴다. 종이가 부족하면 추가로 종이를 덧대어 붙인 뒤 그린다. 헌들리는 “드로잉은 예술가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의 본질이다. 드로잉 수집이야말로 가장 지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드로잉은 그에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종의 명상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드로잉 작품 제목을 숫자로 표기했다. 숫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5.12.20.2’(2020년)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노랑, 빨강, 초록색 물감으로 칠한 뒤 검은색으로 곡선의 형상을 그렸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어디인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각종 이슈의 본질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엘리엇 헌들리의 드로잉 ‘26.12.19.1’(2019년).
웃고 있는 사람을 묘사한 것 같은 ‘26.12.19.1’(2019년)은 얼핏 보면 아이가 그린 듯 해맑다. 밝은 기운과 에너지가 전해진다. ‘8.12.19.1’(2019년)은 노랑 파랑 빨강 주황색이 질주하듯 내달린다. 검은 테두리의 노란색 동그란 무늬들을 한가득 배치해 생각의 조각을 핀으로 눌러 고정한 듯한 느낌을 준다. 가는 붓으로 선을 정교하게 그려 수묵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도 여럿이다.

엘리엇 헌들리의 캔버스 콜라주 ‘Babushka’(2021년). 가로 219cm, 세로 185cm로 사진, 천조각, 끈 등을 정교하게 붙이고 색칠했다. 백아트서울 제공
캔버스 콜라주 2점은 미술관 1층에서 관객을 맞는다. 가로 219cm, 세로 185cm의 ‘Babushka’(2021년)는 캔버스에 작은 사진, 천 등을 붙이고 수많은 핀을 꽂아 색칠한 작품이다. 손톱보다 작은 각종 재료를 하나하나 붙여 커다란 캔버스를 채웠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해 수행의 결과물처럼 다가온다.

작가의 내면과 무의식, 사유의 세계를 뚜렷한 개성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흥미로움과 신선함을 함께 선사한다. 무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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