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싶은 청춘들의 오아시스… “학연-직업-나이는 저멀리”

정윤철 기자

입력 2021-03-27 03:00:00 수정 2021-03-27 0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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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중심 운동모임 ‘러닝크루’ 확산
학교-직장 제약 없이 쉽게 참여… 번개모임으로 시간-장소 정해
개인정보 노출 없고 뒤풀이도 NO… “모든 활동 자유로운 게 매력”


러닝크루 ‘2030청춘러너’ 회원들과 동아일보 정윤철 기자(오른쪽)가 23일 저녁 마스크를 쓰고 서울 강남구 탄천공영주차장∼청담대교(왕복 4km) 구간을 달리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3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탄천공영주차장. 날렵한 러닝화를 신고 원형으로 둘러선 러닝크루 ‘2030청춘러너’ 회원들이 크루장인 반성윤 씨(26)의 구령에 맞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20, 30대 회원이 110명인 이 크루는 지난해부터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에서 달리기 모임을 갖고 있다. 일정 조율과 참여 신청은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뤄지는데, 직장인 회원이 많아 평일 모임은 야간에 열린다.

청춘러너 크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요일마다 대규모 인원이 참여했던 ‘정기 러닝’을 중단했다. 그 대신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를 지키면서 ‘번개 러닝’을 즐기고 있다. 러닝 희망 시간과 장소가 일치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비정기적으로 함께 달리는 것이다. 이날 번개 러닝을 위해 모인 기자 등 4명은 체온계로 발열 체크를 한 뒤 마스크를 쓰고 탄천공영주차장∼청담대교를 왕복하는 4km 구간을 달렸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 격려하는 이들에게 기록 단축이나 순위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즐거운 달리기와 모두의 완주라는 목표를 위해 뒤처지는 사람이 있을 때는 다 같이 속도를 늦췄고, 경치가 좋은 청담대교 인근에서는 잠시 달리기를 멈춘 뒤 기념촬영을 했다. 김우종 씨(32)는 “혼자서 쓸쓸히 뛰면 중간에 힘들어질 때 쉽게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함께 뛰면 즐겁게 목표를 완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바탕 신나게 달린 이들에게 뒤풀이는 없었다. 러닝을 마친 뒤 가볍게 마무리 운동을 하고 바로 해산했다.

SNS를 기반으로 하는 운동 모임인 러닝크루는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이달 기준으로 카카오톡에는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의 러닝크루가 오픈채팅방을 운영 중이며,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러닝크루 관련 글은 16만9000건에 이른다.

러닝크루는 학교와 지역, 직장 등을 중심으로 구성돼 가입 자격과 행동에 제약이 많은 기존 동호회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다. SNS를 통해 여러 크루의 러닝 공지 등을 살펴본 뒤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내가 뛸 수 있는 거리를 달리는 모임에 일회성으로 참여할 수 있다. 갑자기 몸이 피곤해 약속된 모임에 나가지 못해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정회원 신청을 하면 크루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데, 의무는 아니다.

청춘러너 크루장 반성윤 씨는 “SNS에 회원을 위한 러닝 외에도 비회원을 위한 ‘게스트런’ 일정을 공지한다”면서 “지연(地緣) 등으로 얽힌 사이가 아니기에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율적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러닝크루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집단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2030세대의 성향과 잘 맞는다”고 말했다.

친목을 다지기 위해 낯선 사람들에게 개인 정보를 속속들이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2030세대가 느끼는 러닝크루의 매력이다. 부산에서 러닝크루 활동을 하는 정윤기 씨(27)는 “축구 동호회에 가입했는데 첫 모임에서 여자친구가 있는지, 같은 중학교를 나온 A라는 동창과 친한지 등을 물어 난감했다”며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는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고 말했다. 2년 전부터 활동 중인 러닝크루의 분위기는 동호회와 달랐다고 한다. 정 씨는 “약속 장소에 모이면 이름만 말하고 곧바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로하지가 않다”면서 “나이와 직업을 몰라도 함께 달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2030세대로 구성된 러닝크루의 회원들은 운동과는 관계없는 뒤풀이 문화에 거부감을 느낀다. 청춘러너 크루도 ‘No 2차(뒤풀이)’를 모토로 삼고 있다. 정주리 씨(31)는 “모든 활동이 자유롭다는 게 러닝크루의 매력이다. 뒤풀이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이 끝나면 모두 ‘쿨’하게 헤어진다”고 말했다. 일부 크루는 러닝 종료 후에 정보 공유를 위해 개설했던 채팅방을 폐쇄해 참여자 간의 사적 만남을 차단하기도 한다. 반성윤 씨는 “운동 외 목적(연애, 사업 홍보 등)으로 크루에 참여했다 적발된 회원은 운영진 회의를 거쳐 제명한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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