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판 된 농지…정부, ‘가짜 농부’ 더 세게 잡는다

뉴시스

입력 2021-03-17 05:13 수정 2021-03-17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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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 살 때도 농업경영계획서 내야…각종 증명서류도 요구
지자체 관리 인력 늘리고 전문가 참여 농지위원회 만들어 심사
투기 목적으로 농지 사다 걸리면 곧바로 처분명령…처벌도 강화
"농업인 인정 기준 높이고 농지 개발이득 환수체계 필요" 지적도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서 허점이 드러난 농지법을 손봐 소위 ‘가짜 농부’ 걸러내기에 나선다. 그간 유명무실했던 도시민의 농지 취득 절차를 강화하고,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불법 취득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부과되는 처벌 수위도 기존(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보다 높인다. 농사를 짓지 않을 경우 부과되는 강제처분 절차도 더 강화한다.

그간 도시민도 쉽게 농지를 살 수 있도록 규정이 완화됐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식량안보의 기반인 농지가 사실상 투기꾼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17일 정부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들은 농지 취득·소유 규제를 강화하는 농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소위 주말농장 등 소규모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에도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토록 해 절차를 까다롭게 만드는 것이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은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참석해 “취득단계부터 (투기를) 막고 농사를 진짜로 짓는지 수시로 점검할 것”이라며 “농지로 불로소득을 얻지 못하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농지법상 원칙적으로 농업인 외에는 농지를 소유할 수 없어 일반인이 농지를 살 때는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제출, 이후 심사를 통해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렇게 농지를 사놓고 농사를 짓지 않거나 불법으로 임대하는 경우에는 농지처분의무가 부과된다.

다만 비농업인도 이런 자격증명 없이 농지를 살 수 있는 예외조항이 16개나 된다. 대표적인 것이 주말·체험농원 등 1000㎡(약 300평) 미만 소규모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다. 정부가 규정을 강화하는 것도 도시에 살면서 이런 작은 땅을 손쉽게 취득, 마음만 먹으면 투기 목적으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LH 사태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1000㎡ 이상 농지의 경우 문제됐던 농업경영계획서 부실·허위 작성을 개선하기로 했다. 직업과 영농경력은 물론 자금조달계획, 농업인력확보계획까지 필수 작성하도록 하는 등 기존보다 검증을 철저히 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또 지자체들이 이를 검증할 수 있도록 각종 증명서도 까다롭게 요구하기로 했다.

사후 관리도 강화한다. 그간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하는 등 경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해도 ‘가짜 농부’를 가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경작을 하지 않으면 농지 처분명령이 부과되는데, 실경작 여부를 행정적으로 일일이 검증하기가 어려워서다. 비농업인이 주말에 간단한 묘목을 심어 놓거나 농약을 뿌리는 정도로도 눈속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는 지자체의 관리 인력을 확충해 검증 역량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지자체 직원 1~2명이 수십 개의 농지를 맡아야 해 실질적인 감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내에는 과거에 규제 완화 과정에서 사라졌던 농지위원회(과거 농지거래위원회)를 다시 설치해 관리하도록 한다. 여기에는 전문가와 지역 주민도 참여하게 된다.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벌칙 조항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농지 강제처분 절차도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할 방침이다. 현재 내부정보를 활용한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산 것으로 판명될 경우 조치는 1년 이내 처분의무 부과→6개월 이내 처분명령 부과→이행강제금 부과 등으로 이어지는데, 앞으로는 처분의무 부과 없이 바로 처분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구 실장은 “진짜 농업경영계획서대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 철저하게 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농지 매각명령을 내릴 것”이라며 “1년 이내 유예기간 내 매각하지 않으면 5년 이내에 20%씩 이행강제금을 부과해 이익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투기에 농지가 이용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선 ‘가짜 농부’가 나오는 것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농지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물론 농업인의 기준 자체를 엄격하게 만들어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완배 서울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농지를 통한 개발이득을 제대로 환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농지 투기 자체를 줄여야 한다”며 “또 농업인으로 인정되는 보유 경작지 면적 등 기준을 높여 가짜 농부들이 쉽게 농협조합원 대출은 물론 정부의 각종 보조금까지 타가는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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