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하나 들여놓고 ‘식멍’… 예술작품이 따로 없네[덕후의 비밀노트]

김민 기자

입력 2020-10-21 03:00:00 수정 2020-12-24 09:55:19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식물덕후’ 김시습 큐레이터
농장 찾아가면 고르는 즐거움, 전시품처럼 수집하는 것보단
대화하고픈 상대 찾듯 만나길


‘식물 덕후’ 김시습 갤러리조선 큐레이터의 집(위 사진). 테이블야자(아래 왼쪽 사진)로 시작한 식물 키우기는 몬스테라(아래 가운데 사진), 앤슈리엄으로 뻗쳐 나갔다. 김시습 씨 제공·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책으로 가득한 원룸에 ‘야자나무’ 한 그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7년 어느 날 전철역에서 운명처럼 ‘테이블야자’를 만났다. 원하는 사람은 가져가라며 키우던 것을 ‘무료 나눔’하고 있었다. 가볍지도 않은 화분을 들고 낑낑대며 언덕길을 올랐다. 그렇게 화분을 하나둘씩 사 모으던 김시습 갤러리조선 큐레이터는 어느새 ‘식덕(식물 덕후)’이 됐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할수록 그의 집은 식물로 뒤덮여갔다. 테이블야자로 시작된 화분은 몬스테라, 필로덴드론, 앤슈리엄으로 늘어났다. 그러다 일부 식물에 수입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집착’에 빠지기도 했다. ‘식멍’(식물을 보며 멍을 때리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과 ‘식태기’(식물과 권태기의 합성어) 사이를 오가며 게임처럼 식물을 소비하는 행태에 회의감을 느꼈단다. 자아성찰이 곁들여진 ‘식덕’ 김시습에게 추천 장소와 팁을 들어봤다.

○ 덕후의 추천: 원하는 식물을 얻으려면


과천 화훼단지=정말 초심자라면 서울 서초구 양재꽃시장을 먼저 가보길 추천한다. 다양한 화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기에 두루두루 보면서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볼 수 있다. 경기 과천 화훼단지는 좀 더 난이도가 있다. 도매 취급하는 화원이 많아 양재보다 정비가 덜 되어 있다. 잘 찾으면 도매가로 좋은 화분을 ‘득템’할 수 있다. 다만 어리바리하게 서있다간 “소매 안 팔아요!” 소리를 듣게 되니, 화원에서 온 프로처럼 행동해야 한다.

청구원=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식덕’ 사이에선 유명한 희귀식물 농장.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지만, 직접 찾아가면 부부가 차를 내려주고 농장 구경도 시켜준다. 자세한 설명은 덤이다. 근처에 있는 희귀식물 카페 ‘꽃꽃한당신’도 식덕의 메카. 부모님이 운영하던 농장을 물려받은 아들이 희귀식물을 키우고 있다.

플랜트소사이어티1(PS1)=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작은 공간으로 디자이너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사무실을 차리면서 공간이 좋아 식물을 진열하고 팔기 시작했다. 디자이너의 감각이 돋보여 보는 재미가 있다. 식물과 관련된 전시나 흥미로운 행사도 열린다. 현재는 독일 디자이너 패트릭 토마스의 식물패턴 판화를 전시 중이다.

○ 덕후의 팁: 과시가 아닌 자체의 즐거움을


김시습은 최근 아트선재센터에서 운영하는 웹진 ‘HOMEWORK’에 ‘식물이 식덕에게 등을 돌릴 때’라는 글을 기고했다. 계기는 6월 식덕 사이에서 일어났던 ‘필로덴드론 대란’이었다. 동남아에서 수입되는 필로덴드론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수입 금지가 되면서 값이 폭등했다. 여기에 가드닝 인구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식물을 마치 프라모델이나 명품, 주식을 사듯이 수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비싸고 희귀한 식물을 사 모으고 과시하는 것보다, 식물을 통해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또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예술 작품으로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듯이 말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