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심 기자의 낯선바람]목적 달성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는 사람들

동아일보

입력 2020-04-08 03:00:00 수정 2020-04-08 1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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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회적 인격장애(소시오패스)

지난 25일 여성들을 협박,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25)이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종로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DB
“멈출 수 없는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하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24)가 대중 앞에 처음 얼굴을 드러낸 후 한 말이다.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태연한 조 씨의 표정에 국민들은 또 한 번 경악했다. 특히 취재진을 향해 거침없이 유명 언론인과 정치인을 언급하는 돌발행동으로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음란물 유포 혐의를 인정하느냐’ ‘범행을 왜 했느냐’ ‘피해자들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입을 굳게 다문 채 호송차에 올랐다.

언론에 비친 조 씨의 모습에 “자기애성 성격장애, 과대망상, 소시오패스가 아니냐”는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소시오패스는 사회를 뜻하는 ‘소시오(socio)’와 병적 상태를 의미하는 ‘패시(pathy)’가 합쳐진 말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일컫는다.

소시오패스 성향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른다. 다른 사람과 감정 교류가 어려워 도적적 판단이 불가능한 사이코패스와 달리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행동이 범죄나 잘못된 행동임을 인지한다.

소시오패스는 감정 조절에 뛰어나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이용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순한 양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다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국민을 속이는 부패 정치인, 사리사욕만 좇는 기업인, 사람을 현혹하는 사이비 교주 등도 일부 소시오패스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전체 인구의 4% 정도가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리낌 없이 동료의 업무 성과를 가로채거나 잘못을 덮어씌우는 사람, 친구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사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 등 모두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아직 소시오패스 성향을 유발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적 요인이나 성장 과정에서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당하면서 발현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다. 우리나라처럼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상황에 노출되고, 성공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와 최고가 돼야 한다는 강박이 소시소패스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학계에서는 유아나 아동기에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진다면 소시오패스 성향이 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행동 치료를 통해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이 궁극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방식이다.

hongeunsim@donga.com



타인의 희생 당연시… 대인관계 문제 일으켜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반사회적 인격을 가진 사람의 대인관계 문제는 주로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타인을 무자비하게 희생시키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들이 외로운 삶을 사는 이유는 사랑, 신뢰, 우정과 같은 가치를 무시하고 타인을 오직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한 범죄 행태에서만 이런 성향이 나타날 때 이것을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진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인격장애는 전반적인 생활과 대인관계 속에서 지속적이고 병리적인 문제가 나타난다. 다른 영역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던 냉혹함과 파렴치함이 특정한 범죄에서만 보인다면 인격장애로 볼 수 없다.

범죄자가 ‘정신장애’로 자신의 죄를 포장하려는 행태는 힘겹게 자신의 질환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정신장애는 누군가의 낙인도, 범죄자의 거짓 핑곗거리도 결코 돼서는 안 된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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