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급등락은 없다” 실수요자가 집 사고 임차인 보호 강한 일본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0-01-16 03:00:00 수정 2020-01-16 1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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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1990년대 초 거품 붕괴로 집값 급락… 2005~2013년 횡보, 이후 상승세
외국인 투자-올림픽 특수로 상승… 도쿄올림픽 이후 전망은 엇갈려


박형준 도쿄 특파원
“일본 도쿄에 집 한 채 사려는데 어때? 요즘 일본 경제 좋잖아.”

최근 서울의 지인들로부터 자주 받는 문의다. 서울 부동산 값이 너무 올라 해외로 눈을 돌린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누구를 만나도 부동산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실제 지난해 1∼9월 누적 부동산 해외직접투자액이 51억5000만 달러(약 5조9800억 원)로 2018년 연간 투자액 50억78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 거품 붕괴로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 그 기간 동안 부동산과 주식 가격도 끝없이 떨어졌다. 기자도 일본 지인들로부터 “1990년대 집을 잘못 샀다가 큰 낭패를 봤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부동산 구입을 망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과연 지금 일본 부동산은 어떤 상황일까. 도쿄도, 가나가와현, 지바현, 사이타마현 등 수도권 중심으로 일본 부동산의 현주소를 둘러봤다.



○ 거품 붕괴 후 ‘L’자형 시세

2015년 도쿄도 미타카(三鷹)시의 신축 맨션을 산 기무라 아키오(가명·38·회사원) 씨는 최근 집값에 놀랐다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일본에선 대규모 공동주택인 아파트를 맨션이라고 부른다.

기무라 씨는 2015년 부인이 임신하자 태어날 아이를 위해 큰마음을 먹고 집을 샀다. 전용면적 70m² 아파트를 7100만 엔(약 7억5000만 원)에 구입했다. 현재 시세는 8000만 엔대.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많은 일본인은 자동차 가격이 구입한 순간부터 떨어지듯 아파트 가격도 계속 하락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오히려 값이 올라 놀랐다고 그는 말했다. ‘기분 좋겠다’는 기자의 말에 기무라 씨는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곧 떨어지겠지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니까요.”

다카하시 요이치(가명·65·회사원) 씨의 사례는 정반대다. 그는 1989년 도쿄도 후추(府中)시의 70m²짜리 신축 맨션을 5500만 엔에 샀다. 도쿄 핵심 지역인 신주쿠까지 전철로 30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거품 붕괴로 집값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2009년 구입 가격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700만 엔까지 떨어졌다. 현 시세는 약 2000만 엔대. 다카하시 씨는 “31년 된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다.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두 사람의 ‘부동산 운’을 가른 결정적 요인은 구매 시점이다. 매월 수도권 주택가격지수를 발표하는 일본부동산연구소에 따르면 1993년 1월 194.3이었던 이 지수는 2005년 1월 78.97까지 12년간 단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매월 떨어졌다. 이 지수는 2000년 1월 수도권 집값을 100이라는 기준점으로 설정하고 이보다 낮은지 높은지를 산출해 수치화한다.

이 지수는 2005∼2013년 별 변화가 없었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두 번째 집권하고 본격적인 아베노믹스 정책을 펴면서 조금씩 오르고 있다. 즉 큰 틀에서 보면 지수가 ‘L’자 형태를 그리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2005년 전에 집을 산 사람은 현 시세가 구입 가격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고, 이후에 산 사람은 오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카하시 씨는 일본 경제가 최고 호황을 누렸던 1985∼1990년 당시 30대 가장이었다. 그와 또래 가장들은 엄청난 부동산 호황과 믿을 수 없는 급락을 모두 겪었다. 이들은 이미 은퇴했거나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할 만한 여력이 크지 않다. 반면 지금 결혼해서 집을 사려는 20, 30대 젊은층은 부동산 상승기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일본 젊은 세대의 머릿속에 ‘부동산=가격 하락’이란 인식이 뚜렷한 이유다.


○ 젊은층의 임대 선호

나카다이라 다카마사(가명·35·회사원) 씨 부부는 도쿄 시부야의 51m² 맨션에서 세를 내며 살고 있다. 방 1개, 거실 1개, 화장실 1개가 있는 소위 ‘원베드(one bed)’ 형태로 월 임대료는 12만 엔(약 127만 원)이다.

그에게 ‘결혼도 했는데 집을 살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카다이라 씨는 “집을 사는 순간 계속 세금을 내야 한다. 또 집이 낡으면 계속 수리해야 해 귀찮다”며 “이 집이 마음에 든다. 계속 임대 계약을 갱신하면서 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월세로 살면 형편에 맞는 집을 고를 수 있고, 갑작스럽게 근무지가 바뀌어도 별 부담이 없다”고 덧붙였다.

‘매월 상당한 금액의 임대료를 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카다이라 씨는 “집을 샀는데 가격이 떨어지면 어차피 돈이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렇듯 젊은층이 임대를 선호하는 것은 임대료 상승 부담이 크지 않은 현실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일본 임대차보호법은 집주인보다는 임차인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2년 단위의 계약을 갱신할 때 임차인이 “더 살겠다”고 하면 주인은 받아들여야 한다. 또 주인이 마음대로 월세를 올릴 수도 없다. 나카다이라 씨도 벌써 6년째 똑같은 임대료를 내고 있다고 했다.


○ 외국인 투자와 올림픽 특수

일본부동산연구소의 수도권 주택가격지수는 2013년 1월 77.07로 최저를 찍은 후 지난해 1월 92.13까지 올랐다. 6년 연속 상승세다. 그 요인으로 중국권의 활발한 대일 부동산 투자, 7월 24일∼8월 9일 열리는 도쿄 올림픽 특수 등이 꼽힌다.

지난해 12월 21일 도쿄 미나토(港)구 시바우라(芝浦)에 있는 한 모델하우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양 담당자는 “중국인, 대만인들이 자주 온다. 몇 명을 상담했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외국인 구매자가 많아 일본어와 영어 상담이 모두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 최근 몇 년간 홍콩과 대만 등 중국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일본 부동산에 눈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NHK방송은 지난해 9월 2015∼2019년 준공된 도쿄도 내 맨션 85개 동 소유자의 등기부등본을 조사한 결과 외국인 소유가 최소 1816채였다고 보도했다. 소유주의 국적은 대만(664채)이 가장 많고 중국(홍콩 포함) 590채, 싱가포르 367채 순이었다. 범중국계의 활발한 부동산 매입으로 일본인이 도쿄 도심에서 집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JOC)는 주경기장 건립 등 총 대회 경비를 1조3500억 엔이라고 공개했다. 이와 별도로 보안대책비 등 ‘간접비’도 약 1조 엔이 투입된다. 무려 2조3500억 엔이라는 엄청난 돈이 풀리는 셈이다. 바로 이 돈이 현재 일본 경기를 지탱하고 있다.

도쿄 주택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저서 ‘불황탈출’에서 2012∼2018년 15세 미만 일본 유소년 인구가 매년 1% 내외로 감소했지만 도쿄는 매년 약 0.5%씩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로 거품 경제 시절 살인적 집값 때문에 도쿄를 떠났던 사람들이 집값이 떨어지면서 일자리가 많은 도쿄로 돌아오기 시작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가장 큰 요인은 좋은 일자리의 수”라고 결론지었다.


○ 올림픽 후 전망은 엇갈려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도쿄 부동산은 현재 모습을 이어갈까. 전망은 엇갈린다.

일부는 대규모 재정 지출에 따른 후유증이 불가피해 올림픽 특수가 곧 끝날 것으로 본다. 올림픽이 끝나면 빌딩 공실이 늘어나고 부동산 경기도 꺾일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일본부동산연구소가 기업 130곳을 대상으로 부동산 경기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일본 자산시장이 지금이 정점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응답자가 70%를 넘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형 부동산 중개업체 미쓰이부동산의 사원 A 씨는 “‘올림픽이 끝난 뒤 가격이 떨어지면 집을 구입하겠다. 그때 연락을 달라’는 고객이 꽤 있다. 대기 수요가 상당해 설사 올림픽 후 부동산 값이 내리더라도 소폭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베 정권은 지난해 12월 “올림픽 후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총사업비 26조 엔의 대규모 경제 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일본 부동산 상황을 취재하며 20명 이상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 등을 만났다. 서울 강남 집값처럼 ‘부동산을 사면 반드시 오른다’는 부동산 신화는 없었다. 그 대신 철저하게 실수요자 위주로 움직이는 모습이 뚜렷했다. 실거주 부동산을 구입하는 사람은 미쓰이스미토모은행에서 변동금리 기준으로 연 0.6%에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이자가 제로(0)다. 반면 투자용이면 이 금리는 2.9%로 오른다. 이 때문에 꼭 필요한 사람만 집을 사는 편이다. 이런 모습이 집값 급등 및 급락을 막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동산 공화국’에서 온 기자의 눈에 비친 안정된 일본의 부동산 시장이 부러웠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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