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이야기]‘신데렐라 드레스’는 기후변화에 치명적

한빛나라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장

입력 2018-02-10 03:00 수정 2018-02-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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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나라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장
요즘 패션은 자정이 되면 마법이 풀리며 사라져 버리는 신데렐라의 드레스 같다. 급변하는 패션 트렌드에서 옷 한 벌의 생명은 기껏 한철이다. 바야흐로 패션도 속도전이다. 의류매장 진열대에는 1, 2주마다 새로운 상품이 진열된다.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싸고 빠르게 제작한 뒤 높은 상품 회전율로 승부하는 ‘패스트 패션’이 주류가 된 지 오래다. 오래 입을 수 있고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수식어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그 대신 ‘지금 인기 폭발’ ‘요새 가장 핫한 신상’ 등 최신 유행을 강조하는 광고 문구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다. 많이 만들어 많이 팔고, 또 많이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오늘날의 패션 문화다.

한 해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옷이 약 1300억 벌이다. 오늘날 의류산업은 석유산업 다음가는 환경오염 산업 랭킹 2위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7000∼1만1000L의 물이 필요하다. 이는 한 사람이 샤워를 300번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영국 비영리단체인 폐기물자원 액션 프로그램(The Waste and Resources Action Programme)에 따르면 연간 110만 t의 옷이 버려지는데, 이 중 38%가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패스트 패션이 초래한 자원 낭비는 한마디로 기후변화 대응에 치명적이다.

패션 대국인 프랑스는 자국의 의류 브랜드와 협력해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환경표시를 개발하고 있다. 올해부터 제품에 부착할 환경표시에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물 소비량, 부영양화 관련 정보가 들어간다. 기업과 소비자가 멋지고 예쁜 옷에 가려진 환경영향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패스트 패션과 환경오염이 꼭 의류업계의 책임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시장은 소비자와 상호작용을 한다. 지금의 패션시장도 소비자의 취향과 선호도를 반영해 형성됐다. 유엔이 2015년 발표한 지속가능발전목표 17개 중 하나가 ‘책임 있는 소비와 생산’이다. 시장에 끌려다니기보다 스스로 주체적인 소비 철학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시장을 바꿀 수 있다.

옷은 섬유 소재와 생산 과정에 따른 처리 방법, 세탁 방법 등에 따라 기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 생산 과정에서 대기와 수질을 오염시키지 않고,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화학약품을 덜 쓰고, 원단의 내구성이 뛰어나면서 자주 세탁할 필요가 없는 옷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현명한 선택이다. 유럽연합(EU)은 ‘에코라벨’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선택을 돕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및 환경 인식이 높아지고 책임 있는 소비자가 늘 때 의류업계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일까. 최근 옷을 대여해주는 새로운 의류 서비스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09년 미국에서 창업한 패션 렌털 업체 ‘렌트 더 런웨이’가 대표적이다. 현재 회원 600만 명, 연매출 1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에도 매주 새로운 옷과 가방을 대여하는 업체가 여럿 있다. 앞으로 수선, 대여, 교환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유행을 좇아 패스트 패션에 편승하기보다 나는 어떤 소비를 하는 사람인지 소비자로서 아이덴티티를 규정해보면 어떨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양식의 문제다.

한빛나라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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