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지우기-언론과의 전쟁… 트럼프 첫발부터 ‘마이웨이’

황인찬기자 , 이승헌특파원

입력 2017-01-23 03:00 수정 2017-03-2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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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트럼프 시대]취임식 끝나자마자 강공 모드

 프랭크 시내트라가 묵직하게 불렀던 명곡 ‘마이 웨이(My way)’가 재즈 가수 에린 보헴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통해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20일(현지 시간) 정오 취임 선서를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이날 오후 9시 반 워싱턴 월터 E 워싱턴컨벤션센터에 마련된 축하 무도회에서 취임 후 첫 댄스에 나섰다.

 이들은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움직였고, 때때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노래 중간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 부부와 트럼프의 자녀들까지 무대에 올라 함께 춤을 추며 파티 분위기를 띄웠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트럼프는 취임 후 첫 댄스 선곡으로 자신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누가 뭐래도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20일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 트럼프 대통령은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며 ‘트럼프 시대’의 출발을 알렸다. 역대 대통령들은 보통 취임 연설에서 대선 상대 후보를 언급했지만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이어진 오찬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장관이 참석한다는 얘기를 듣고 영광스러웠다”고 소개하며 기립박수를 이끌었다. 트럼프가 “나는 이들 두 사람에게 많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치켜세우자 클린턴 전 장관도 자리에서 일어나 “고맙다”며 감사를 표했다. CNN은 클린턴 측근의 말을 인용해 “클린턴은 정말 (취임식에) 가기 싫었지만, 전직 대통령 부인으로서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오찬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의사당 앞에서 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이어 펜실베이니아가를 걸으며 백악관까지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대통령 전용 차량인 ‘비스트’를 타고 가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유한 트럼프인터내셔널호텔 부근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약 3분 동안 걸으며 환영 인파를 맞았다. 이어 오후 7시부터 시작된 3곳의 축하 무도회에 참석해 ‘마이 웨이’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등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하지만 ‘달콤한 트럼프’는 여기까지였다.

 이날 밤 백악관 집무실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들여 만든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에 들어가는 예산 부담을 줄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취임 첫날부터 ‘오바마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취임 이튿날인 21일에는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트럼프는 중앙정보국(CIA)을 방문한 자리에서 갑자기 “난 지금 언론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언론인들은 가장 부정직한 인간 부류 중 하나”라며 “언론들은 내가 (러시아 해킹 건으로) 정보기관과 불편하다고 하는데 이는 정반대다. 그래서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날 취임식 인파 관련 보도에 대해 “내가 취임사를 했을 때는 꽉 찼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 뉴스를 보니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텅 빈 화면을 내보냈다. 50만 명은 넘었는데, 내가 취임사를 하려니까 비까지 그쳤는데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일부 언론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흉상을 치웠다고 보도한 데 대해서도 “아니 거기 그대로 있는데, 내가 킹 목사를 얼마나 존경하는데 이런 보도를 하다니 얼마나 부정직한 언론이냐”고 질타했다.

  ‘트럼프의 입’인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한술 더 떴다. 이날 오후 첫 공식 브리핑에서 몇 가지 사실을 들이대며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트럼프 취임식 날 워싱턴 지하철 이용객은 42만 명으로 이는 4년 전 오바마 취임식 때의 31만7000명보다 월등히 많다”며 “언론이 고의로 (참가자 수를 줄이는) 거짓 보도를 했고 이런 시도는 무책임하고 부주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워싱턴 지하철 당국의 자료를 인용해 트럼프 취임식 날 지하철 이용자 수는 57만1000명으로 4년 전 오바마 취임식 때(78만2000명)보다 적다고 반박했다.

 열변을 토한 스파이서 대변인은 첫날부터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브리핑룸을 나가버렸다. 뉴욕타임스는 너무 황당한 주장이라고 비판했고, NBC방송은 “뭐라고 이 상황을 표현할 형용사를 못 찾겠다”며 어이없어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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