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맨주먹으로 매출 1조 기업 이룬 ‘망치 회장’

김상철전문기자

입력 2016-11-16 03:00 수정 2016-11-16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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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이 부산 용호만에 건축중인 초고층 주상복합 ‘W’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광복 후 귀국한 재일동포 가정에서 8남매(6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향 집은 경북 의성군 다인면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제때 졸업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눅 들지 않으려고 늘 자신 있게 행동했다.

 그의 부모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용이라고 가르쳤다. 거짓말을 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엄하게 꾸짖었다. 손해를 보더라도 가르침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믿을 수 있는 친구라는 얘기를 주위에서 들었다. 

 어린 시절 부모는 남아 있는 재산을 정리하러 간다며 일본으로 떠났다. 예정했던 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누나를 따라 대구를 거쳐 중2 때 부산에 정착했다. 또래보다 3년 늦게 동아고를 마쳤다. 모 대학에 합격했으나 학비가 없어 군에 입대했다.

 3년 뒤 제대해 바로 손위 형(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이 세운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일본에서 생활 기반을 잡은 부모로부터 일본에 건너와 대학을 다니라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에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유학을 준비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 터졌다. 범인 문세광이 일본에서 오는 배편에 권총을 숨겨 들여온 사실이 밝혀져 한일관계가 악화하는 바람에 일본 유학길이 막혔다.

 고향 선배가 큰 건설회사에서 일해 보라고 권했다. 일본 유학 문이 열릴 때까지 일할 생각으로 선배가 주선한 옥포기업에 취직했다. 배우는 게 재미있고 성취감도 있어 밤낮을 잊고 일했다. 동료보다 빨리 승진했다.

 우연히 합판이 없어 집짓기가 어렵다는 말을 형에게서 들었다. 1979년 성창기업을 찾아가 합판 대리점을 따냈다. 63빌딩을 비롯한 신축 건물에 합판을 공급해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일솜씨를 보고 경남 1위 건설업체인 신동양건설 사장이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장사에 만족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신동양건설 전무로 옮겼다. 신동양건설이 자금난을 겪다 1983년 부도를 냈다. 당시 부사장으로 회사의 연대보증인이었다. 집이 압류되고 TV, 냉장고는 물론이고 아이 책걸상에까지 빨간 딱지가 붙었다. 건설업은 경기를 많이 타고 망하면 제조업과 달리 먼지밖에 안 남는다는 것을 배웠다.

 1985년 주위의 도움을 받아 반도통운을 세웠다. 축협에서 사료 수송을 맡았다. 컨테이너 트럭을 주문해 운송 중 땅에 떨어지는 낙곡을 없애자 일감이 늘었다. 그때 지인이 싸게 나온 좋은 땅이 있다며 사 두면 돈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장을 둘러본 뒤 부산 해운대의 명소로 꼽히는 달맞이고개 일대 약 1000평을 사들였다. 건설회사 근무 경험을 살려 1987년 일신(一信)주택을 설립해 건설 사업에 나섰다. 부모가 강조한 신용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회사 이름에 담았다.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66) 이야기다.

 달맞이고개 땅에 빌라를 짓기로 하고 국내 빌라촌을 찾아다녔다. 구조와 조경 등을 보러 몰래 들어갔다가 경비원에게 붙잡혀 파출소에 끌려가기도 했다. 특1급인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 들어간 캐나다산 참나무를 비롯한 고급 자재를 구해 빌라를 지었다. 방송국이 ‘달맞이고개 초호화빌라 신축’ 뉴스를 내보냈다. 국세청의 조사를 받는 등 시련을 겪었지만 운도 따랐다. 입소문이 나면서 며칠 만에 100% 분양됐다.

 기세를 몰아 1989년 일신건설산업을 세워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부산 영도에 400여 채 규모의 아파트 건설을 시작으로 경남 창원, 진해, 울산 등에서 아파트를 지으며 기술력과 인지도를 쌓은 뒤 2006년 수도권에 ‘에일린의 뜰’ 브랜드로 진출했다.

 신동양건설 부도 때 전 재산을 날렸던 아픈 경험을 살려 망하지 않는 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부채비율 100%, 건설부문이 총매출의 40%를 넘으면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를 위해 2008년 건자재 1위 업체인 동서산업을 인수한 뒤 일신건설산업과 합병해 아이에스동서로 사명(社名)을 바꿨다. 이어 2010년 비데회사 삼홍테크, 2011년 건설장비와 사무기기 임대업체 한국렌탈, 2014년 영풍파일 중앙레이콘 중앙물산을 사들였다.

 권 회장은 자신이 지은 빌라나 아파트에서 산다. 건설 현장이나 모델하우스를 수시로 찾아 소비자 입장에서 보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바로 망치로 부숴 버린다. 이런 현장경영 덕에 지금까지 미분양을 낸 적이 없다.

 권 회장은 맨주먹으로 시작해 아이에스동서를 당대에 연매출 1조 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지속 성장하는 100년 기업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현장을 누비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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