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청소-장보기도 틈새 벤처산업”

정지영기자

입력 2016-09-24 03:00:00 수정 2016-09-2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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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업종서 뛰는 청년들]손걸레질하고 세탁물 배달하는 CEO “우린 전문가”

최준용 에피세리 대표가 배달 자전거를 타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요즘 젊은 애들은 힘든 건 안 하려고 해.”

 어른들이 청년들을 바라보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전쟁의 아픔도, 배고픈 설움도 느낀 적이 없기에 편한 것만 찾고 독한 구석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고 번듯한 직장까지 버리면서 스스로 험한 미래에 몸을 던진 청춘도 있다. 청소와 세탁 등 이른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Dirty, Difficult, Dangerous) 분야에 창업이라는 도전장을 낸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또래가 선망하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산업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

  ‘3D 청춘 벤처’가 뜨고 있다. 최근 1, 2년 새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20, 30대가 뛰어들면서 기존 3D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단순히 3D 산업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수준이 아니다. 회사 운영방식을 혁신해 직업 자체의 인식까지 바꿔 놓고 있다. 3D 산업의 단점으로 여겨졌던 가격 및 서비스의 표준화 정책도 적극 도입했다.

 청춘 벤처의 출현으로 침체기를 걷던 관련 업계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근로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윈윈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1. 출근 전 고요한 오전 7시의 한 사무실. 회사 직원도 아닌데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사무실을 청소한다.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출근하기 전에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 입구 바닥에 깔린 매트부터 의자 바닥에 놓인 작은 때까지 꼼꼼히 청소한다. 사무실이 깨끗해질수록 청소장갑은 더욱 까매진다. 얼핏 깨끗해 보이는 곳까지 손이 안 가는 데가 없다. 남들은 출근하는 이른 아침이지만 이들은 벌써 일감을 마무리하고 다른 일터로 향한다.


#2.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역대 최악의 폭염 속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릴 정도다. 사람들이 연신 부채질을 하며 그늘 아래로 숨지만 어깨에 세탁물을 잔뜩 두르고 6층 빌라를 오르내리는 이들이 있다.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다. 지친 날씨에 시원한 아메리카노 커피라도 마시며 쉬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오늘까지 배달해야 할 물건이 많기 때문이다. 고객이 연락을 받지 않으면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응대한다. 고객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시간대에 다시 배달을 오기로 약속한다.

 벤처기업 홈마스터와 세탁특공대 직원들의 일상이다. 과거 이런 업종의 사람들을 ‘3D 근로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세탁물 배달과 청소를 전문가의 영역으로 변화시킨 ‘작은 혁명가’들이다. 10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해도 연봉은 그대로이고, 전문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고용은 불안정한 3D 산업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는 3D 전문가


 
천영진 다섯시삼십분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정상화 공동대표(왼쪽).
3D 청춘 벤처의 가장 큰 특징은 ‘자존감 고취’다. 이들은 자신과 직원들을 3D 근로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스스로와 직원들이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업체들은 직원들의 마인드 교육과 복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삿짐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섯시삼십분’도 단순 3D 업종이던 것을 새로운 전문 분야로 브랜딩하고 있다. 천영진 대표(33)에 따르면 오랫동안 이삿짐 서비스 업계에서 일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가장 힘든 점은 체력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다. 그래서 다섯시삼십분은 ‘짐맨’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직원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짐맨들은 단정한 복장에 회사 조끼를 입고 일을 한다. 의사가 가운을 입고, 군인이 군복을 입는 것처럼 짐맨도 유니폼을 입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사 전문가들은 짐맨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다섯시삼십분은 직원이 만족하고 당당해야 업무 만족도가 높아지고, 업무 만족도가 높아지면 고객 서비스 만족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수시로 불편한 점은 없는지, 회사 차원에서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등을 묻고 문제점을 해결해 나간다.

변영표 홈마스터 대표는 “청소 도우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키고 싶다”라며 웃어 보였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변영표 홈마스터 대표(27)는 지난해 7월 친형과 함께 홈클리닝 서비스 벤처를 차렸다. 어느새 월 매출 1억 원을 올리는 어엿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 후 늘어난 매출보다 더욱 기쁠 때는 아주머니들이 귤이나 음료수 등을 들고 찾아올 때라고 했다. 변 대표는 “아주머니들이 ‘나 같은 사람이 어디 가서 이렇게 돈 벌고 살겠나’ ‘좋은 일자리 줘서 정말로 고맙다’고 인사할 때마다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변 대표가 어릴 때 그의 부모도 청소 용역업을 했다. 가끔은 부모를 따라 청소를 도우러 나가기도 했다. 가끔 무시하는 듯 쳐다보거나 홀대하는 경비 아저씨들이 기분 나빴다. 그는 청소 도우미에 대한 이런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청소 도우미인 홈마스터의 시급은 1만2000원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시간당 7000원도 못 받는 업체가 허다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다. 최대 월 250만 원을 버는 홈마스터도 생겼다. 시급뿐만 아니라 업무 여건도 개선했다. 기존에는 청소 도우미가 물건을 파손했을 경우 당사자가 배상해야 했다. 하지만 홈마스터는 손해보험회사와 보험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청소하다 물건이 파손돼도 홈마스터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 직원은 “예전 같으면 얼굴을 붉히며 손님과 누구 잘못인지 따져야 했는데 그런 걱정이 없어져서 일하는 데 마음이 너무 편하다”면서 “여러 가지가 좋아지니까 자존감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이런 소문이 나면서 홈마스터 지원자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50대 이상이던 연령대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혁명


예상욱 세탁특공대 대표(가운데)와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유니폼과 세탁커버를 들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세탁특공대는 세탁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처다. 2015년 5월 동갑내기 친구인 예상욱 대표(29)와 남궁진아 대표(29·여)가 설립했다. 이전 직장에서 만난 그들은 ‘벤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라는 생각을 갖고 세탁업에 뛰어들었다. 주변에서 “벤처라면 좀 더 기술적으로 편하게 앉아서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만류하기도 했지만 두 대표는 단호했다. 신체적으로 힘든 일이라 하더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표준 가격을 정하는 것이었다. 기본 흰 셔츠 3000원, 반코트 8000원, 트렌치코트 1만 원, 겨울코트 1만2000원 등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지역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권장표준가격이 있지만 대부분의 세탁소에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에 대한 고객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것을 파악한 데서 시도한 일이다. 가격 표준화에 익일 배송, 꼼꼼한 서비스까지 입소문이 나면서 창업 1년 만에 세탁특공대의 월 매출은 1억 원 정도 규모로 성장했다.

 기자가 서울 강남구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평일이지만 고객이 맡긴 옷과 이불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요원’으로 불리는 직원들이 계속해 사무실로 세탁물을 받아 왔다. 세탁물을 분류해 사진을 찍어 옷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이 작업이 끝나면 세탁소로 보내진다. 미리 사진을 찍어두기 때문에 나중에 옷이 상해도 고객의 잘못인지, 세탁특공대의 잘못인지를 분명히 할 수 있다. 

박진우 헤이딜러 대표(왼쪽)와 직원들.
 중고차 견적 비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헤이딜러의 박진우 대표(26)는 음성적이고 신뢰도가 낮던 중고차 거래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공정한 경매 시스템 도입과 열린 정보를 통해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시키고 있다. 단순히 거래 시스템만 도입한 것이 아니다. 박 대표는 시장을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실제 중고차 딜러로 활동했다. 중고차 시장이 어느 업계 못지않은 3D 업종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는 “중고차 한 대를 팔기 위해 한 달을 뛰어다니고 고객에게 읍소하고, 또 다른 딜러에게 사기당할 뻔도 하면서 돈 주고도 못 살 소중한 것들을 배웠다”고 말했다.

 실제 헤이딜러를 이용한 고객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어느 곳이 더 싼지 알기 위해 여러 중고차 가게를 둘러볼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차가 있으면 경매에 참여하는 식으로 가격을 부르면 된다. 그 대신 자동차 안전에 대한 보증과 처리 과정에서 헤이딜러가 검증하기 때문에 믿고 구매할 수 있다. 김하영 씨(36)는 “여자 혼자서 중고차를 사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그런데 헤이딜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서 누구의 도움 없이도 중고차를 살 수 있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헤이딜러는 깐깐한 딜러 관리로 유명하다. 한번은 딜러 한 명이 회사에 찾아와 “부숴 버리겠다” “다 엎어 버리겠다”는 식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고객에게 낮은 서비스 평가를 받은 딜러에 대한 책임을 물어 헤이딜러 자격을 박탈한 데 대한 분풀이를 한 것이다. 박 대표는 “이런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중고차 시장의 투명도를 높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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