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 2원에 낙찰 받게 해달라”
동아일보
입력 2014-02-06 03:00 수정 2014-02-06 03:00
부당거래 막으려는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제’… 대형병원 꼼수에 갈등 증폭
2년간 유예됐다 1월 재시행
설 연휴 며칠 전 제약사 영업 담당자 배모 씨는 한 대형병원 의약품 구매 담당자의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 직원이 “2월부터 ‘시장형 실거래가제’가 시작되니 약값 알아서 잘 낮춰 가져와라. 제품 목록에서 당신 회사 약을 뺄 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배 씨는 “대형병원에 절대적인 ‘을(乙)’일 수밖에 없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에게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며 “벌써부터 1원, 2원에 낙찰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압박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약을 싸게 사는 병원에 정부가 예산으로 차액을 보전해주는 이른바 ‘시장형 실거래가제’라는 약가(藥價) 제도가 2월부터 재시행됐다. 시행 초기부터 이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법적 문제까지 거론되면서 정부·병원과 제약업계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병원이 약을 싸게 사도록 유도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보전해 줘야 하는 약값을 아끼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 실제 거래가격을 파악하고 제약업체가 병원에 주던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겠다는 의도도 있다.
2010년 10월부터 16개월 동안 시행됐다가 갖가지 문제가 불거져 2년간 유예했던 제도가 이달부터 재시행되자 제약회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제약업계뿐만 아니라 일부 소비자단체와 시민단체도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자단체협의회, 보건의료노조 등은 “다수의 제약회사를 희생해 ‘갑(甲)’인 대형병원의 배만 불릴 뿐 건보 재정 절감 효과도 작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형 실거래가제가 시행됐던 16개월 동안 지급된 인센티브는 1966억 원으로 이 중 91.7%는 종합병원 이상 대형병원에 돌아갔다. 나머지는 중소병원과 약국이 받았다. 재정 절감액도 399억∼2146억 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추정치)으로 아낀 돈보다 오히려 인센티브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위법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최근 “시장형 실거래가제로 인한 병원-제약사 간 거래가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남용행위’와 ‘부당한 거래거절행위’에 해당돼 위법 소지가 높다”고 주장했다.
‘1원 낙찰’ 등 병원이 할인 폭을 정해 놓고 의약품 공급을 요구하는 등의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KRPIA 관계자는 “시장형 실거래가제로 인해 병원 등과 법적 공방으로까지 가지 않았으면 한다”며 “공정한 거래질서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계속 보건복지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제약사·의사·약사 등 관련 이익단체와 전문가들과 꾸린 ‘제도개선 협의체’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마지막 회의만 남겨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 협의체에 참석한 제약 관계자는 “정부·병원 측과 이견이 커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정부가 3대 비급여(상급병실료·선택진료비·간병비) 제도 개선으로 대형병원에 피해가 예상되자 이들을 달래기 위해 약가 제도를 밀어붙인다는 의혹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 제도의 과거 시행 결과는 시기가 짧아 효과 분석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건보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다. 복지부 관계자는 “3대 비급여 등을 거론하는 것은 음해”라며 “아직 확정된 것이 없으나 제도 취지에 맞춰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2년간 유예됐다 1월 재시행
설 연휴 며칠 전 제약사 영업 담당자 배모 씨는 한 대형병원 의약품 구매 담당자의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 직원이 “2월부터 ‘시장형 실거래가제’가 시작되니 약값 알아서 잘 낮춰 가져와라. 제품 목록에서 당신 회사 약을 뺄 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배 씨는 “대형병원에 절대적인 ‘을(乙)’일 수밖에 없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에게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며 “벌써부터 1원, 2원에 낙찰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압박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약을 싸게 사는 병원에 정부가 예산으로 차액을 보전해주는 이른바 ‘시장형 실거래가제’라는 약가(藥價) 제도가 2월부터 재시행됐다. 시행 초기부터 이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법적 문제까지 거론되면서 정부·병원과 제약업계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병원이 약을 싸게 사도록 유도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보전해 줘야 하는 약값을 아끼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 실제 거래가격을 파악하고 제약업체가 병원에 주던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겠다는 의도도 있다.
2010년 10월부터 16개월 동안 시행됐다가 갖가지 문제가 불거져 2년간 유예했던 제도가 이달부터 재시행되자 제약회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제약업계뿐만 아니라 일부 소비자단체와 시민단체도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자단체협의회, 보건의료노조 등은 “다수의 제약회사를 희생해 ‘갑(甲)’인 대형병원의 배만 불릴 뿐 건보 재정 절감 효과도 작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형 실거래가제가 시행됐던 16개월 동안 지급된 인센티브는 1966억 원으로 이 중 91.7%는 종합병원 이상 대형병원에 돌아갔다. 나머지는 중소병원과 약국이 받았다. 재정 절감액도 399억∼2146억 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추정치)으로 아낀 돈보다 오히려 인센티브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위법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최근 “시장형 실거래가제로 인한 병원-제약사 간 거래가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남용행위’와 ‘부당한 거래거절행위’에 해당돼 위법 소지가 높다”고 주장했다.
‘1원 낙찰’ 등 병원이 할인 폭을 정해 놓고 의약품 공급을 요구하는 등의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KRPIA 관계자는 “시장형 실거래가제로 인해 병원 등과 법적 공방으로까지 가지 않았으면 한다”며 “공정한 거래질서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계속 보건복지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제약사·의사·약사 등 관련 이익단체와 전문가들과 꾸린 ‘제도개선 협의체’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마지막 회의만 남겨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 협의체에 참석한 제약 관계자는 “정부·병원 측과 이견이 커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정부가 3대 비급여(상급병실료·선택진료비·간병비) 제도 개선으로 대형병원에 피해가 예상되자 이들을 달래기 위해 약가 제도를 밀어붙인다는 의혹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 제도의 과거 시행 결과는 시기가 짧아 효과 분석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건보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다. 복지부 관계자는 “3대 비급여 등을 거론하는 것은 음해”라며 “아직 확정된 것이 없으나 제도 취지에 맞춰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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