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한은, 코로나19 사태에 신중
이건혁 기자
입력 2020-02-27 17:32 수정 2020-02-27 17:39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뉴스1
“1분기(1~3월)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있다.”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통위원들은 전원 마스크를 착용한 채 회의장에 입장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마스크를 쓴 채 의사봉을 잡았다. 회의 이후에는 기자간담회를 위해 기자실을 찾는 대신 유튜브용 중계 카메라 앞에 섰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 직접 나서 금리 결정 배경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해온 것과는 사뭇 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바꾼 회의장 분위기만큼이나 한은이 전망하는 올해 한국 경제의 현실은 엄중했다.
● 1분기 성장률 -0.4%에도 못 미칠 수도
특히 코로나19 사태 충격이 집중될 1분기에 대한 전망은 암울했다. 이환석 한은 조사국장은 “1분기 성장률이 2019년 1분기(-0.4%)에 못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분기 -0.4% 성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4분기(-3.2%) 이후 10년 3개월만의 최저치였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정부의 대규모 지출 덕에 예상보다 높은 1.2% 성장을 했던 만큼 올해 1분기 성장률 둔화는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소비, 수출, 투자 등이 급격히 위축됐고 정부가 재정을 당장 투입하기 쉽지 않아 성장률이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은은 당초 상반기(1~6월) 민간소비부문 성장률을 전년 동기 대비 1.9%로 봤으나 이날 1.1%로 크게 낮췄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4.9%에서 4.7%로, 상품수출 증가율은 2.2%에서 1.9%로 기존 전망치보다 낮춰 잡았다.
이에 한은이 새로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지난해 11월 내놓았던 2.3%보다 낮은 2.1%로 하향 조정됐다. 이 총재는 간담회에서 “경제전망은 3월 중 정점에 이르고 이후 진정될 것이란 전제 아래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연간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타격을 받게 된다고 본 것이다. 다만 상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과 달리 하반기(7~12월) 성장률 전망치는 2.2%에서 2.6%로 0.4%포인트 상향했다. 사태가 진정되면 그동안 억눌려있던 소비 등이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한은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기관 상당수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보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가 각각 1.9%, 1.6%로 내다봤고, 최악의 경우 0%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신중한 한은…금리도 제자리
한은 내에서도 이 같은 우려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총재는 “코로나19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 다른 감염병 사태보다 충격이 크리라 생각한다. 코로나19 전개 상황에 따라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한은의 전망치에 대한 파장을 고려해 신중한 스탠스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은이 민간 기관들처럼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라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기는 어렵고 일단 지켜보자는 쪽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은의 신중한 태도는 기준금리 결정에도 반영됐다. 이달 중순을 기점으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자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들 것이란 기대가 확산됐다. 하지만 한은 금통위는 추가 금리 인하의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대신 이 총재는 “현 단계에서는 취약 부문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미시적 대책이 (금리 인하보다) 효과적”이라고 해 사실상 정부 재정 집행과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한은의 결정에 시장 참여자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상승하던 코스피는 한은이 금리 동결을 선택하자 하락세로 전환하며 전날보다 1.05% 하락한 2,054.89로 거래를 마쳤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금리동결은 인하 시점을 4월로 미룬 것에 불과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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