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보고 이리 웃는 걸까’ 창 밖을 바라보는 두 여인, 미소의 정체는?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19-05-15 17:19 수정 2019-05-15 17:29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창가의 두 여자’
미소는 일종의 행복 바이러스다. 웃는 얼굴이 상대방을 미소 짓게 하듯, 그림 속 웃고 있는 두 여성 역시 관람객을 행복하게 만든다. 창틀에 기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여성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고, 옆에 서 있는 여성은 숄로 입을 가린 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고 있다. 이들은 대체 누구고, 뭘 보고 이리 웃는 걸까.
이 그림을 그린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는 17세기 스페인 세비야의 가장 성공한 화가였다. 그는 종교화로 큰 명성을 얻었지만 서민의 일상생활을 담은 풍속화도 여러 점 남겼다. 그중 거지 소년의 초상과 이 그림이 대표작이다. 화면 속 여성들은 스페인 상류층 소녀와 샤프롱(상류층 미혼 여성을 돌봐주던 여성)을 연상시킨다. 뒤로 물러나 웃음을 참고 있는 샤프롱과 달리 당찬 소녀는 창문 밖으로 환한 미소를 날리고 있다.
젊고 잘생긴 청년이 추파를 던지며 집 앞을 지나는 중일까.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청년이 동시에 찾아와 사랑 고백이라도 하는 걸까. 사실 이들이 누구인지 왜 웃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무리요가 17세기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미술을 조합해 이런 독특하고 매력적인 화면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화가는 빛을 받은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실내 배경을 완전히 어둡게 처리했는데, 이는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거장 카라바조의 영향이다. 창가 인물 구도는 스페인 미술에는 없던 것으로 네덜란드 풍속화에서 가져왔다. 그의 고객들 중엔 플랑드르(현 벨기에)에서 온 부유한 상인이 많았기에 고객을 위해 이런 풍속화를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소녀는 부유한 네덜란드 상인의 딸이었을까. 19세기에는 매춘부로 해석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화가가 만들어낸 상상 속 인물이란 주장도 있다. 아무려면 어떨까. 소녀의 미소는 힘든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잠시 웃게 만들지 않는가. 어쩌면 이들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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