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정주영 나오길”…스타트업 요람으로 이어진 현대家의 창업 DNA
신동진 기자
입력 2019-04-25 17:04 수정 2019-04-25 21:22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창업지원센터 ‘마루180’ 개관 5주년 행사에 참석해 ‘꿈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을 강조했다. 아산나눔재단 제공
“지금까지 (기업 하기) 편안했던 시절은 거의 없었다. 환경에 연연하지 않고 희망을 꿈꾸는 제2, 제3의 정주영이 나오길 바란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25일 아버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일화를 소개하며 청년들에게 ‘창업가 정신’을 벼려 달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이날 장녀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가 이끄는 창업지원센터 ‘마루180’ 개관 5주년 행사에 참석해 ‘스타트업 요람’을 만든 이유에 대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우린 항상 위기라고 얘기하지만 아버지 세대는 나라가 없었고 전쟁이 있었다. 광복 당시 문맹률은 80%에 달했다. 요즘 위기의 뜻이 뭔지 다시 곱씹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강원도 시골 구장(현재의 이장) 집에만 들어왔던 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 ‘흙’의 주인공 허숭 변호사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막노동을 하면서 독학으로 변호사시험을 세 번이나 봤다”면서 꿈을 향한 끈질긴 도전을 당부했다.
정주영 회장
첫 출간(1997년) 이후 22년 만에 최근 영문본이 출간된 정 명예회장의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에는 그가 꿈꾸길 포기할 뻔한 막막했던 시절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소학교를 마치고 아버지 뜻에 따라 원치 않던 농사일을 하게 된 정 명예회장은 동네에 유일하게 배달되던 동아일보를 얻어 보며 미래를 꿈꿨다. 정 명예회장은 책에서 동아일보를 ‘바깥세상과 단절된 농촌에서 가졌던 유일한 숨구멍’이라고 적었다. 정 명예회장은 꿈을 찾아 가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뒤 네 번 만에 성공했다. 그의 첫 가출 시도도 청진항만 공사와 제철소 건설 현장에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동아일보 기사가 계기가 됐다.
정 이사장은 “아버지는 ‘경제는 돈이 아닌 사람의 힘으로 이뤄진다’ ‘자원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창의력은 무한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면서 “마루180처럼 청년 창업가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이 100개 더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마루180은 2014년 4월 문을 연 창업지원센터로 지금까지 5년간 182개 스타트업에 창업 공간을 지원했다. 장기 입주사 6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입주 기간 평균 투자 유치금액이 팀당 3억2000만 원에서 16억 원으로 약 5배로 증가했고 고용 인력 수는 평균 6명에서 13명으로 2배로 늘었다. 명함관리 애플리케이션 ‘리멤버’를 만든 드라마앤컴퍼니, 인공지능(AI) 의료영상 진단기업 루닛 등 유망 스타트업들이 마루180 출신이다.
아산나눔재단은 내년까지 마루180 인근에 ‘제2의 마루180’을 개관하고, 스타트업 수를 3배 이상 늘려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창업 지원 분야를 정보통신기술(ICT) 위주에서 비ICT 부문으로 확대하고 경력단절여성이나 북한이탈주민 등을 위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이다. 정남이 이사는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룰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창업가의 성공이 개인의 성취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성취로 이어질 수 있는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 문화가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페이 잇 포워드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 사이에 정착한 일종의 기부문화로, ‘기부 도움을 준 사람 대신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기부를 통해 갚는 정신’이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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