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하정민]당신도 영혼까지 털릴 수 있다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입력 2018-09-05 03:00 수정 2018-09-10 17:58
제작 디지털뉴스팀 조소현 인턴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지난달 말 소위 ‘필라테스 뚱땡이’ 사건이 온라인을 달궜다. 서울 모처에서 필라테스 학원을 공동 운영하던 원장 A 씨는 오랜 고객을 ‘뚱땡이’로 칭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잘못 보내 폐업했다. 피해자가 사건 발생 및 진행 과정을 낱낱이 중계하는 동안 A 씨는 여론의 혹독한 비판과 마주하다 사실상 밥줄이 끊겼다. 고객 비하도 모자라 초기 대처도 치졸했던 A 씨. ‘고등학생인 회원님이 귀여워서 그랬다’ 운운하는 첫 사과에서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리꾼이 A 씨 비난에 앞장서고 피해자가 일방적 지지와 동정을 받은 이유다.
사건은 피해자의 마지막 글 2개로 일종의 반전을 맞았다. 이미 남은 수강료를 환불받았고 A 씨와 동업자 B 씨의 거듭된 사과도 있었지만 그는 기존에 현금으로 낸 수강료를 현금영수증 미발행 건으로 탈세 신고하며 “화나는 마음에 국세청에 알렸다”고 밝혔다. “나로 인해 불의의 피해를 입은 동업자 B 씨가 다른 곳에서라도 강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는 A 씨의 호소에도 “도움 줄 부분이 없다”고 거절했다.
이 사건이 채선당 임신부 폭행, 240번 버스운전사, 평창 겨울올림픽 팀추월 왕따 등 온라인 여론재판 논란에 휩싸인 과거 사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피해자는 본인도 혜택을 본 현금 할인을 고의 신고한 데다 자신을 ‘뚱땡이’로 칭한 증거가 없는 B 씨의 생계가 위협받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방조했다. ‘당사자 간 합의로 끝날 일을 온라인에 널리 알려 특정인을 망신 주는 일종의 디지털 자경단(Digital vigilantes)처럼 행동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자 여론도 ‘피해자가 지나쳤다’ ‘원인 제공자가 잘못’으로 엇갈린다.
아무리 비난받을 행위를 했더라도 수사와 처벌은 국가기관의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인터넷이 사적 제재 및 보복 도구로 쓰이는데도 우리 모두는 너무도 무심하고 때로는 이에 가담한다. 헤어진 연인에게 앙심을 품고 과거사를 시시콜콜 까발리거나 사내 불륜 같은 자극적 소재의 주인공이 된 일반인 신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포하는 일이 얼마나 빈번하게 이뤄지는가. 대중이 흥밋거리 정도로 이를 지인과 공유하고 퍼 나르는 동안 한 인간의 인권은 처참히 유린된다.
지금도 검색 한 번에 쌍둥이 딸의 성적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는 숙명여고 교무부장 이름, ‘캠리 차주’가 사는 인천 아파트와 그의 미용실 이름, 필라테스 사건의 업소명과 위치, 이해관계자의 이름도 찾을 수 있다.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파악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들에게 돌을 던지는 익명의 대중도 여전하다. 누구도 그들에게 특정인을 재판하고 처벌할 권리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의 일방적 주장으로만 진행되는 여론재판이 정당한지, 여론재판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실제 잘못보다 훨씬 큰 피해를 보지는 않는지, 여론재판을 사적 제재 및 보복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개인 또는 집단이 온라인에서 자의적으로 특정인을 응징하는 것을 묵과하는 동안 우리 모두는 그 ‘디지털 린칭(Digital lynching)’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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