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들부터 코트까지 ‘파격’… 마음은 이미 크루즈 갑판 위에

손가인기자

입력 2018-06-29 03:00 수정 2018-06-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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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컬렉션

곧 출항할 크루즈 여객선을 미술관 안에 그대로 옮겨온 샤넬의 ‘2018·19 크루즈 컬렉션’ 런웨이.
크루즈를 타고 떠나는 여름 휴가

프랑스 파리의 유서 깊은 건축물인 미술관 ‘그랑 팔레(Grand Palais)’에 ‘샤넬’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여름 별장 ‘라 파우자(La Pausa)’의 이름을 딴 대형 크루즈 여객선이 정박했다. 여행객들은 커다란 라운드 선글라스를 쓰고 트위드, 코튼, 시퀸 소재의 흰 타이츠와 베레모를 썼다. 허리가 살짝 드러나는 가벼운 옷차림, 눈부신 흰색으로 가득한 의상, 햇빛을 머금은 파스텔 색상은 다가올 휴가의 느낌을 물씬 느끼게 했다.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샤넬의 ‘2018·19 크루즈 컬렉션’ 런웨이는 곧 출항할 크루즈 여객선이 바라보이는 터미널을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보트나 상어 이빨 모양의 프린팅, 파도와 둥근 창문에서 얻은 모티프, 바닷물에 비친 햇살처럼 반짝이는 시퀸 자수를 보면 마음은 이미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크루즈 갑판 위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왼쪽부터 루이 비통, 구찌, 샤넬, 프라다, 보테가 베네타의 크루즈·리조트 컬렉션. 각 사 제공
‘더 뉴 고딕(Gothic)’

‘구찌’는 이번 ‘2019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지난달 프랑스 아를에서 공개된 이번 컬렉션에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새로운 고딕 스타일의 의상들을 선보였다. 크루즈 쇼가 진행된 알리스캉(Alyscamps)은 4세기부터 유명인들의 안식처로 사용된 고대 로마의 공동묘지이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이끼로 뒤덮인 고대 무덤을 배경으로 세워진 런웨이는 촛불로 장식돼 신비롭고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구찌의 이번 컬렉션은 15세기 수도승과 추기경이 묻힌 납골당과 화려한 장식의 제의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날 크루즈 쇼에는 전설적인 팝 가수 엘턴 존과 유명 래퍼이자 프로듀서 겸 뮤직비디오 감독인 에이셉 라키,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세어셔 로넌 등 헐리우드 스타와 K팝 그룹 엑소(EXO)의 멤버 카이 등이 참석했다. 이번 패션쇼의 초대장은 전보(電報) 형태로 전달돼 특별함을 더했다.


응답하라 1990

지난달 열린 ‘프라다’의 ‘2019 리조트 컬렉션’은 매우 이례적으로 이탈리아 밀라노가 아닌 미국 뉴욕의 프라다 본사에서 진행됐다. 프라다가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1990년대로 돌아간 복고 스타일. 골반에 걸쳐 입는 미니스커트와 화려한 무늬, 오버사이즈 룩 등이 어우러져 1990년대의 상징적인 모티프들을 그대로 차용했다. 탱크톱과 긴 스커트, 커다란 벨트를 매치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과감한 시도를 즐겨 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파격적인 디자인이다. 런웨이를 거니는 모델들이 쓴 거대한 패딩 트래퍼 모자는 로맨틱한 긴 하의와 어우러져 재미를 더했다. 폴로 티셔츠 등 최근 패션계가 열광하는 ‘스포티즘’ 요소도 가미됐다.

자연스러운 주름이 돋보이는 막스마라의 백.
단조로운 색채에서 뽑아낸 고급스러움

‘2019 리조트 컬렉션’에서 보여준 막스마라의 내공은 대단했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무채색에 최상급 소재를 사용해 미니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새로운 ‘럭셔리’를 창조해냈다.

이번 컬렉션은 이탈리아 밀라노와 로마 등지에서 작업했던 알베르토 부리, 루초 폰타나, 피에로 만초니, 가스토네 노벨리, 사이 톰블리, 야니스 쿠넬리스, 피에르 파올로 칼촐라리, 조반니 안셀모 등 초기 전위파 작가들 작품에서 보이는 대담함에서 강한 영감을 받은 모던한 의상들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소재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던 초기 전위파 작가들처럼 막스마라는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색상에서 독보적인 디자인을 뽑아냈다. 크림색, 아연백색, 아이언 그레이, 황마색, 미드나이트 블루 등 기본적인 색과 조반니 안셀모의 ‘토르시오네(Torsione)’에서 영감을 받은 물결 모양의 매듭과 꼬임이 간결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다.

구명튜브에서 영감을 받은 샤넬의 백.
의복은 자유로운 형식의 예술 작품

루이비통의 ‘2019 크루즈 컬렉션’은 프랑스 생폴드방스의 ‘마그 재단 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번 컬렉션은 스페인 출신의 거장인 호안 미로(Joan Miro)의 조각 사이사이로 펼쳐졌다. 미로처럼 설계된 정원 공간은 마치 루이비통의 독창적인 디자인의 일부인 듯 잘 어우러졌다.

루이비통은 이번 컬렉션을 통해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겸 패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그레이스 코딩턴(Grace Coddington)과 협업했다. 동물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매력적인 고양이 스케치로 잘 알려진 코딩턴은 이번 루이비통 컬렉션에서도 동물을 아끼는 마음을 표현했다. 루이비통은 이번 컬렉션에서 의복은 자유로운 형식의 예술 작품이자 강렬한 표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매우 다른 요소들이 조우해 특별한 그림이 완성되듯, 과거 100년 간의 쿠튀르를 참고해 현재와 조화를 이루도록 만든 컬렉션은 또 하나의 예술이 됐다.


비현실적인 반전

보테가 베네타는 세 가지 차별화된 그룹으로 이번 ‘2019 크루즈 컬렉션’을 꾸몄다. 여성용 컬렉션에서는 딥 오렌지, 메리골드 옐로, 바카라 로즈 등 풍부하고 강렬한 색상을 사용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너처인 더블 캐시미어와 더블 울에는 스포티한 분위기를 가미했다. 풍성한 라운드 스커트는 두툼한 니트, 크롭 재킷과 매치했다.

물에 반사된 햇살처럼 반짝이는 샤넬의 아쿠아 시퀸 자수.
두 번째 그룹에서는 보다 드라마틱한 파스텔 컬러를 선보였다. 의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층 기분을 밝게 만들어준다. 마지막 그룹의 모든 제품에는 프린팅과 패턴을 넣었다. 멀리서 보면 사냥개의 이빨같은 ‘하운드 투스 패턴’이나 ‘월페이퍼 프린트’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점들로 이뤄져 있는 점이 매력이다.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너처인 ‘비현실적인 반전’을 표현한 것. 추상적인 애니멀 프린팅의 펌프스는 어떤 옷에도 감각적으로 매칭할 수 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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