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저커버그와 이해진은 ‘남탓’ 할 수 없다
박용 뉴욕 특파원
입력 2018-04-23 03:00 수정 2018-04-23 03:00
박용 뉴욕 특파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10일(현지 시간) 미국 상원 청문회에 처음 나와 고개부터 숙였다. 회원 8700만 명의 정보가 영국의 정치 컨설팅회사인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로 넘어간 걸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질책이 쏟아지자, 정장까지 차려입고 나와 “내 책임이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자도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고개를 숙였다. 네이버가 K리그 관계자의 청탁을 받고 기사 편집 순서를 바꿨다는 의원들의 질타에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반성했다.
성공한 두 인터넷 업계 CEO가 의회에 나와 머리를 조아린 건 우연이 아니다. 두 회사 모두 이용자를 끌어모은 뒤 광고로 돈을 버는 인터넷 플랫폼 회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을 많이 모을수록, 개인정보 이용의 족쇄가 헐거울수록 돈벌이가 쉬워지는 구조라는 점도 비슷하다.
페이스북은 회원만 22억 명. 이용자와 정보를 플랫폼에 묶어둘수록 수익이 극대화되는 폐쇄적 형태여서 축적된 콘텐츠와 개인 정보도 막대하다. 빈틈이 생기면 ‘소수가 다수의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 댓글 부대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영향력은 어른의 몸처럼 커졌는데, 관리 능력은 아이 옷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페이스북은 2016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특검 조사까지 받았다. 네이버는 허술한 댓글 관리로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연루된 ‘드루킹 댓글 부대’에 활동 무대를 제공했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성공한 CEO들의 사과가 울림을 주지 못하는 건 돈벌이의 근본 문제를 제대로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허점이 드러난 현재의 광고 기반 무료 모델을 폐기할 뜻은 없다고 강조했다. 네이버도 뉴스편집 시스템을 손보겠다고 했지만,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기사를 자신의 사이트에 옮겨놓고 순서를 배열하고 편집하는 뉴스편집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얘긴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뉴스나 댓글 부대는 개인정보 관리를 강화하거나 매크로(자동 입력 프로그램) 차단과 같은 관리적, 기술적 대책만으로는 막기 어렵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개인정보 수집을 최소화하고 정보에 대한 결정권을 이용자에게 최대한 돌려줘야 한다. 인터넷에 울타리를 치고 정보를 긁어모으는 ‘독점과 폐쇄’의 플랫폼을 ‘연결과 개방’의 모델로 바꿔 위험과 책임을 분산하는 대전환도 필요하다. 모두 사업 모델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일들이다.
선전선동가가 특정 기사의 네이버 주소를 알려주는 ‘좌표 찍기’를 하면 댓글 부대가 우르르 몰려가 댓글 순위를 조작하고 비판 여론을 윽박지르는 건 한국에서 유독 심하다. 구글이 각 언론사 뉴스사이트로 연결만 해주는 미국에선 보기 어렵다. 언론사의 수만큼 위험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온라인 유료화에 성공한 건 검색과 안내에 충실한 구글과의 역할 분담 덕을 본 측면이 있다.
저커버그와 이해진은 공교롭게도 의원들의 규제 공세에 대해선 “글로벌 사업자와 경쟁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규제를 부른 건 의회가 아니라 ‘자율규제’의 무기력함을 드러낸 창업자들의 번드르르한 사과다. 수익 모델의 근본 변화는 창업자가 아니면 하기 어렵다. 남 핑계 댈 일이 아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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