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19>약물인가 마음인가

동아일보

입력 2017-10-27 03:00 수정 2017-10-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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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기원전 3세기에 최초의 정신병원이 설립되었다는 말도 있으나, 현대적인 정신건강의학과(신경정신과)가 생긴 지는 기껏해야 100여 년 전일 겁니다. 그전에는 ‘정신이 옳지 않은’ 사람들을 가족이 어떻게 했을까요? 밖에 나가면 자꾸 문제가 생기니 집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국가도 환자들을 모아서 가두어 놓는 정책을 썼습니다. 지금 바라보면 모두 인권 침해였다고 할 수 있으나 사실 그 외에 마땅한 치료방법이 없었습니다. 18세기 말 프랑스 파리 정신병원의 환자들을 쇠사슬에서 해방시킨 피넬의 행위는 혁신적이었지만 그도 병 자체를 고칠 수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병원은 치료보다는 수용 시설이었습니다. ‘정신병원’이라고 다 같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는 교외의 경치 좋은 곳에 잘 지어진 고급 병원에서 정신병으로 입원한 환자를 정신분석으로 치료했습니다. 항정신병약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때로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치료받은 환자는 아주 소수였습니다.

드디어 1950년대에 클로르프로마진이 나와 조현병(정신분열병) 환자에게 쓰였습니다. 뒤를 이어 양극성기분장애(조울병), 심한 우울증 환자들에게 줄 약들이 개발되면서 정신병원의 풍경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묶어놓고 가두어 놓던 환자들을 풀어놓았고 어느 정도 회복되면 집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신질환자들의 장기 병원 치료가 궁극적 목표인 사회복귀에 도움이 안 되고 인권 침해라는 주장이 미국 등에서 나오면서 환자들을 병원에서 풀려나게 한 일은 ‘지역사회 정신의학’의 공헌이었으나, 부작용으로 길거리나 공원을 헤매는 정신질환자들도 흔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들 대부분은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합니다. 한동안 세계 제약업계의 주요 화두는 정신질환 관련 신약물의 개발이었습니다. 항정신병약 항우울제 항불안제의 면면이 다양해지고, 약물의 작용은 좋아지고 부작용은 줄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약물 치료의 혜택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의 입원실과 외래는 환자들로 넘쳐날까요? 정신질환들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약물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증상 경감, 병의 진행이나 악화, 재발 방지에는 도움이 됩니다.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경험에 의하면 질환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결국 약이 계속 필요한 만성 환자가 늘어납니다. 물론 다른 진료과에도 만성 환자들이 있습니다만 그쪽에서는 화끈하게(?) 고치는 병들도 꽤 있습니다. 21세기의 정신약물학은 20세기 후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정신약물학의 발전과 더불어 ‘말로 하는 치료’는 밀려났습니다.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소수의 정신과 의사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정신의학은 ‘무심(無心) 정신의학’과 ‘무뇌(無腦) 정신의학’으로 분열되었습니다. ‘무심’은 뇌기능이나 약물에만 관심이 있는 ‘생물정신의학’이, ‘무뇌’는 마음에만 관심이 있는 ‘정신역동 정신의학’이 대표 선수입니다. 환자를 앞에 놓고 약을 처방할 것인가, 말로 하는 치료를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갈림길에서 현재 대세는 약물입니다. 그러던 대세가 이제 벅찬 기대와 희망의 전망대에서 내려와 정체기에 들어섰습니다.

약물 치료와 말 치료(이하 정신치료로 설명)는 성격이 아주 다릅니다.

우선 약물 치료를 살펴봅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를 처음 만나 진단 분류에 따라 병명을 진단하고 약물을 처방합니다. 환자는 약을 복용하고 약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의사를 만납니다. 의사는 환자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간단히 물어보고 다시 약을 처방합니다. 주로 약에 대한 반응과 부작용 여부에 따라 양을 조정, 다른 약을 추가, 새로운 약으로 변경하는 일을 합니다. 환자의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않습니다. 그러니 남의 삶에 머리 아프게 얽힐 일도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아주 많은 수의 환자 진료가 가능합니다.

정신 치료는 정말 다릅니다. 노동집약적입니다. 일정한 요일, 시각, 그리고 30분 또는 45분같이 시간을 정합니다. 환자와 의논해서 일주일에 1∼3번을 만납니다. 약물 치료를 병행할 수도 있으나 약 이야기는 뒷전이고 환자의 삶에 대해 듣습니다. 환자에게 의사는 들은 것을 풀어서 되돌려줍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간이지만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에 비해 전문성에서 목적과 과정이 다릅니다. 이 시간에 환자는 자신의 삶에서 꼬여있던 구석은 풀어내고 비어있던 구석은 채워나갑니다. 치료과정이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공유하는 일은 머리 아픕니다. 가슴도 아픕니다.

‘무심파’와 ‘무뇌파’의 분열은 의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자도 겪습니다. 이제 무심파와 무뇌파 사이의 갈등 관계는 종결되어야 합니다. 병명이 아닌 환자, 더 나아가 사람을 쳐다보는 정신의학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구원자로서의 약물의 위상은 이미 깨졌습니다. 말로 하는 치료만이 항상 최고라는 환상도 버려야 합니다. 조현병, 양극성기분장애, 심한 우울증 환자가 약 복용을 거부하고 정신치료만 받겠다고 나서면 말려야 합니다. 하지만 치료 후에도 삶의 고통을 스스로 극복하기가 어렵다면 마땅히 정신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한 가지 방법만으로 돕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존재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련의 제도와 내용도 달라져야 합니다. 한동안 밀려나 있었기에, 그리고 그동안 생물정신의학의 발전,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지대했기에 병명이 아닌 사람으로 환자를 파악하는 ‘진정한’ 의사의 양성에 소홀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러한 점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종사자들은 물론이고 국가와 사회도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의료경제적인 측면에서 좋은 치료가 합당한 대접을 받도록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자연히 나쁜 치료가 힘을 얻게 됩니다. 대한민국 정신질환자들에게 좋은 치료를 보장하는 중요한 일을 정치적인 힘이 없는 정신과 의사의 손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전에 제도적 규제와 행정지도가 아닌, 합리와 순리로 풀어야 합니다.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에도 투자가 필요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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