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붉은 옷 속에서 나누는 아름다운 시간… 화담숲

동아일보

입력 2017-10-25 03:00 수정 2017-10-3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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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를 숨겨주고 반딧불이를 키워준 발이봉 시냇물이 흘러드는 원앙연못. 금슬좋은 원앙이 짝지어 자맥질하는 연못의 수면도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더더욱 가을 빛이 화려하다. 화담숲 제공사진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어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오십시오

낙엽 빛깔 닮은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우리, 사랑의 첫 마음을
향기롭게 피워 올려요
쓴맛도 달게 변한
오랜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어도
함께 고마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 없이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화담숲에서도 단풍든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가재계곡의 절정기 광경. ‘약속의 다리’가 전망대역할을 한다.화담숲 제공사진
지난 주말, 화담숲을 산책하며 웅얼웅얼 읊조렸던 이해인 수녀의 시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이다. 그날 가을풍경은 이랬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몇 조각, 여직 상록이 대세를 이룬 숲 색…. 돋보인 건 초록일색 숲에서 반기를 들듯 빨간 잎으로 단장한 당단풍나무. 홀로 가을빛 추렴하며 고군분투 중이었다. 단풍과 낙엽, 패배와 사장(死藏)의 상징이자 침잠과 고요의 겨울에 대한 굴복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새 봄 새 순에서 돋은 인고의 결정체니까. 그걸 기억한다면 굳이 단풍들어 낙엽 되는 고사와 명멸에 애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순응과 지혜의 선견지명과 그 과단한 결정에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런 가을 숲에 대한 소회와 단상. 눈 밝고 생각 깊은 시인의 혜안이라면 더더욱 그윽하다. 단풍을 ‘쓴 맛도 달게 변한 오랜 사랑’이라 여기는 성찰의 심미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 가을 나의 몽매(蒙昧)는 더더욱 초라할 밖에. 그게 ‘나무도 시를 쓰고 노래를 한다’(정태현의 시집 제목)는 대목에 이르면 참담마저 금치 못할 정도가 된다. 하지만 그런 초라함도 잠시. 가을 화담숲은 또 다른 가르침으로 현신한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거기 담긴 뜻과 의미를 새기라는 고언이다. 어느 한 순간도 눈과 마음의 초점을 잃지 말라는 교훈이다. 소슬하게 언뜻 부는 가을바람 한 점까지도….

‘화담’(和談)은 ‘정답게 나누는 이야기와 그 모습’이다. 그렇게 이름 지어 숲은 경기도 광주시의 곤지암리조트와 나란한 발이봉(해발 482m) 아래 있다. 화담숲은 그 이름대로다. 자연과 사람이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공존과 교감의 공간이다. 그래서 숲을 정원처럼 만들 때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았다. 손댄 것이라면 사라진 걸 되돌리고 20개 테마의 정원을 들인 것뿐이다. 가재와 반딧불이 계곡, 분재원과 암석정원 등이 그 것이다. 그렇게 숲은 정원처럼 꾸며졌다. 자연과 정담을 나누며 유유자적 걸을 수 있는 5.2km의 데크 산책로를 통해. 그 길은 휠체어나 유모차도 어렵지 않게 오르내린다. 우리나라에 그런 곳, 여기뿐일 듯 하다.

화담숲은 산책하며 즐기도록 설계됐다. 그 출발점은 이끼원. 길은 여길 거쳐 ‘약속의 다리’ 건너 자작나무 숲과 탐매원을 지나 분재원으로 이어진다. 이후엔 내리막. 소나무정원 암석정원을 차례로 지나 출구 부근 추억의 정원으로 나아간다. 숲엔 벤치와 테이블이 곳곳에 있다. 그래서 언제든 편히 쉴 수 있다. 또 도중엔 분수와 연못도 있고 졸졸졸 시냇물 계곡도 건넌다. 이런 산책도 두 시간이면 끝. 그러니 절대로 서두를 일이 아니다. 산책은 여유다. 나무와 풀 하나하나를 살피고 하늘과 바람도 느끼며 숲 향기도 음미하자. 여유롭게 천천히 숲을 즐기라는 것이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조성하고 운영한다.

지난 주말의 화담숲 단풍은 영화예고편이라 할만했다. 그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음이다. 아마도 이번 주말(26¤29일)과 내주(30일∼11월5일)일 듯싶다. 그 즈음 산색은 단풍나무(당단풍 내장단풍 털단풍)와 더불어 노랗고 빨갛게 변한 활엽수로 인해 진정 가을빛을 띨 터이다. 그런 완연한 추색(秋色)의 화담숲, 생기발랄 초록일색의 봄여름과는 다르다. 그래서 걸음은 느려지고 사색은 깊어지며 정담은 따뜻해질 터. 그런 숲에서 산책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친우와는 교감을 넓히고 가족과 사랑은 더 애틋해진다.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단풍잎 사이로 펼쳐질 높고 파란 가을하늘에 눈길 주기다. 도시아파트 숲의 그것과 전연 다른 느낌일 것이다. 청명(淸明) 청징(淸澄) 청아(淸雅)한….

단풍나무는 화담숲 곳곳에 있다. 그래서 숲길을 산책하노라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거의 모든 단풍나무를 만난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즈음 화담숲에선 단풍나무에 이어 활엽수도 단풍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담숲 단풍축제’도 지난 21일 개막했다. 축제는 내주 절정을 찍고 11월 5일 마칠 예정. 단풍은 분재원의 몇몇 나무에도 들었다. 또 가을 숲엔 들꽃도 화들짝 폈다. 하얀 구절초와 노란 감국이 햇볕 따뜻한 곳곳에서 고아한 자태를 뽐낸다.

올가을 화담숲을 찾는다면 미리 알아둘 게 있다. 단풍시즌에 주말(토일)입장은 ‘100% 사전예약제’란 것이다. 즉 단풍주말엔 입장권을 현장에서 살 수 없다. 사전예약발권(전화 혹은 온라인)한 날짜와 시각에 입장해야 한다. 이건 숲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더불어 쾌적한 산책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치다. 사전예약발권은 주중에도 가능하다.

‘식당가’에서 부산 뒷고기 돼지국밥을 이렇듯 가마솥으로 끓여낸다. 화담숲 제공사진


화담숲 이용정보


주말 온라인 사전예약: 가을단풍시즌엔 필수(이외엔 선택). 홈페이지에 들어가 날짜 시간 인원을 지정해 예약결제하면 휴대전화로 예약확정문자를 보낸다. 화담숲 입구(혹은 곤지암리조트 내)의 자동발권기에 예약정보를 입력하면 입장권이 자동으로 지급된다. 입장료 1만원(어른).


음식물 반입불가: 화담숲에선 취식을 금한다. 가져온 음식은 리프트하차장 앞 텐트(식당)에서 미리 먹거나 로커에 보관 후 입장. 입구에서 가방검사를 통해 반입을 막고 있다.


화담숲 맛집: 원앙호수의 ‘한옥주막’과 출입구의 ‘식당가’ 두 곳. ▽한옥주막: 두부김치 해물파전 도토리묵을 막걸리와 함께 맛본다. ▽식당가: 야외엔 큐브스테이크를 내는 푸드트럭(2대), 실내에선 가마솥으로 끓여내는 ‘부산 뒷고기 돼지국밥’(8000원)과 충주단월막걸리(6000원) 판다


찾아가기: 중부고속도로 곤지암나들목에서 10분 거리. ◇대중교통: 버스는 곤지암터미널, 전철(경강선)은 곤지암역에서 하차. 터미널·역에서는 택시이용(10∼15분소요). ▽시내버스: 서울 강변역에서 1113-1, 잠실역 500-1, 삼성역 500-2 승차 ▽전철: 강남역(신분당선)∼판교역(경강선 환승)∼곤지암역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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