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걱정, 받을 기쁨 ‘얄궂은 세뱃돈’

박창규기자 , 차길호기자

입력 2017-01-27 03:00 수정 2017-01-3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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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밥상 얘기 나눠요]불황에 달라진 설 명절 ‘절값’ 풍경

 서울 광진구에 사는 김성운 씨(78)는 최근 며칠간 전기설비 관련 아르바이트를 했다. 설에 손주 4명에게 줄 세뱃돈을 벌기 위해서다. 김 씨는 “한 명당 5만 원씩 쥐여주려면 20만 원은 필요한데 불경기에 그런 돈을 어디서 구하겠느냐”고 말했다.

 교사 김모 씨(31·여)는 27일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오사카로 떠나기로 했다. 그는 “큰집에 가면 자꾸 ‘결혼은 언제 할 거냐’라고 물어 올해는 해외로 여행을 갈 생각이다.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안 줘도 되니 속도 편하다”고 말했다.

 불경기와 달라진 금융 환경이 설 연휴 세뱃돈 풍속까지 바꾸고 있다. 세뱃돈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빳빳한 신권 대신 상품권이나 ‘모바일 세뱃돈’도 등장했다.


○ 가벼운 지갑, 무거운 세뱃돈 부담

 26일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올 설날 경비로 1인당 평균 37만3000원(세뱃돈은 17만1000원)을 쓸 것으로 조사됐다. 이달 직장인 16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직장인의 설 경비는 지난해 진행한 같은 조사 결과(38만2000원)보다 9000원 줄었다. 빠듯한 경비에서 세뱃돈을 얼마나 나눠줘야 할지도 늘 고민거리다. 직장인들은 초등학생 이하 아이들에겐 1만 원, 중고교생 이상은 5만 원을 적정 세뱃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만 원권이 등장한 이후 세뱃돈 스트레스가 더 커졌다는 이들도 있다. 부산에 사는 주부 옥춘옥 씨(64)는 “초등학생 한 명당 1만 원짜리 두어 장이면 충분했는데 5만 원짜리가 나오면서 세뱃돈 금액이 확 올라버렸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만 원권 발행 잔액은 2008년 26조6999억 원을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화폐 발행 잔액은 한은이 시중에 공급한 화폐 중 거둬들인 돈을 빼고 시중에 남은 금액이다. 반면 2009년 처음 등장한 5만 원권은 매년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가족 구성원이 줄고 설 연휴에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늘면서 세배를 하러 온 가족들로 북적거리던 명절 분위기도 예전만 못하다. 설 연휴 전날인 26일부터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까지 닷새간 전국 14개 공항에서 하루 평균 11만535명이 출국할 것으로 예상됐다. 역대 최대 규모다. 삼촌 이모 등에게 넉넉한 세뱃돈을 기대하기 힘들어진 아이들의 고민도 커졌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세뱃돈 많이 받는 법’ ‘엄마에게 뺏기지 않는 법’ 등에 관한 질문이 다수 올라와 있다.


○ 신권 대신 ‘모바일 세뱃돈’으로

 최근에는 ‘빳빳한’ 신권 대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색다른 세뱃돈도 인기를 끌고 있다. 현금 없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간편하게 상품을 결제할 수 있는 모바일 상품권이나 기프티콘 같은 ‘모바일 세뱃돈’을 주는 식이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현성 씨(35)는 이번 설을 앞두고 조카 2명에게 장난감 선물과 함께 기프티콘을 보냈다. 그는 “현금을 주는 게 경제관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 같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로 대신했다”고 말했다.

 신권 수요가 줄다 보니 은행 창구도 예년보다 한산하다. KEB하나은행의 지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예년에는 신권을 바꾸려는 대기자들이 넘쳤지만 요즘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한은은 3년째 ‘신권 안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빳빳한 신권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담아 깨끗한 돈을 전달하자는 것이다. 시중은행들도 각양각색의 세뱃돈 봉투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한복 디자인을 차용한 세뱃돈 봉투를 제작했으며 KB국민은행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를 담은 봉투를 배포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중국 등 외국인 고객을 겨냥한 ‘훙바오(紅包·중국에서 세뱃돈을 넣는 붉은 봉투)’까지 준비했다.

박창규 kyu@donga.com·차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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