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진흡]인천국제공항공사의 추억

송진흡 산업부 차장

입력 2016-07-06 03:00 수정 2016-07-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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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흡 산업부 차장
1994년 6월 정부와 여당(민자당)은 당정회의를 열어 수도권 신공항(현 인천국제공항) 운영을 한국공항공단(현 한국공항공사)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공항 개항(2001년 3월 29일)을 2년여 앞둔 1999년 2월 ‘없던 일’이 됐다. 주무 부처인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공항 건설을 책임지던 신공항건설공단을 인천국제공항공사로 전환시켜 운영까지 맡기기로 한 것이다. 건교부는 “공항 건설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민간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주식회사형 공사 체제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당장 밥그릇을 빼앗기게 된 공항공단은 “공항 운영 노하우가 있는 공항공단을 공사로 바꾸면 인력이나 비용 측면에서 유리한데도 굳이 새로운 공사를 만드는 것은 퇴직 관료에게 자리를 주기 위한 꼼수”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산하기관인 공항공단이 ‘상전’인 건교부에 반기를 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2001년 3월 29일 공항 개항과 함께 운영권은 인천공항공사가 갖게 됐다. 이후 공항공단이 예상한 대로 인천공항공사에는 건교부 퇴직 관료들이 줄줄이 자리를 잡게 된다. 현직인 정일영 사장(7대)을 포함해 1∼7대 사장 가운데 4명이 건교부 출신이다. 부사장이나 본부장으로 온 건교부 관료도 적지 않았다. 건교부가 추진했던 민자 유치도 현재까지 이뤄진 게 없다.

최근 만난 항공업계 관계자가 ‘인천공항공사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얘기를 했다. 지난달 21일 영남권 신공항 건설 방안이 ‘김해공항 확장’으로 최종 결정된 후 ‘영토 확장’을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국토부 공무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사업 규모가 축소되면서 국토부는 내부 조직을 늘릴 여지가 줄어들었다. 기존 공항을 확장하는 만큼 새로운 공항공사를 세우는 것도 쉽지 않게 됐다. 그는 “국토부 일각에서는 ‘내년 대선에서 다시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항공업계에서는 과거 인천공항공사 설립 과정을 비춰볼 때 국토부가 ‘자리 만들기’를 위한 새로운 논리를 개발할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영남권 신공항 공약이 다시 나오면 국토부가 새로운 수요 예측 결과로 신공항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김해공항이 사실상 신공항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새로운 공항공사를 출범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상당수 국내 공항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은 경제보다는 정치 논리에 따라 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정치권 탓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 국토부의 영토 확장 야욕이 일조한 측면도 있다. 공항 수요 및 타당성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한 국내 공항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국토부에 대해 혈세 낭비의 주모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공모자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조직 이기주의를 위해 세금을 낭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적으로 보면 배임행위로 볼 수도 있다. 사실상 ‘범죄’라는 얘기다. 특히 경제기획원 예산실 근무 경력을 ‘훈장’처럼 여기는 강호인 장관이 이끄는 국토부가 그렇다면 더 큰 문제다. 강 장관이 재정경제부 종합정책과장 시절 사석에서 강조했던 “경제 논리로 접근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말을 국토부 공무원들에게 하고 싶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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